잔잔한 인도영화, 판을 뒤집었다… 칸영화제 평점 1위 오른 이 작품 [2024 칸영화제]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5. 2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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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칸영화제] 파이알 카파디아 감독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
프랑스 칸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자 지금 이 순간 세계인이 열광하는 시네마의 준거점입니다. 제77회 칸영화제 현지에서 칸 황금종려상 후보인 ‘경쟁 부문(In Competition)’ 진출작과 관련한 소식을 밀도 있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서정시에 가까운 인도영화 한 편이 칸영화제의 마지막 선택을 좌우할 마지막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파이알 카파디아 감독의 경쟁 부문 진출작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All We Imagine As Light)’입니다.

이 영화는 제77호 칸영화제에 참석한 현지 외신기자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영화전문매체 스크린데일리 평점에서 최고점인 3.3점(4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25일 오전 9시 현재 시각 기준,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와 함께 3.3점 최고점).

24일(현지시각) 드뷔시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은 인간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를 심도 있게 모색하는 수작이었습니다.

영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은 룸메이트 프랍하(왼쪽)과 아누의 삶을 따라갑니다. 두 사람은 간호사로 각자의 사정을 품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칸영화제 웹사이트]
영화 속 배경은 인도 뭄바이, 간호사 프랍하의 열차 출근길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화는 여성전문병원에서 일하는 프랍하와 그의 룸메이트 아누를 따라갑니다.

뭄바이는 인도 사람들에게 ‘꿈의 도시’이자 동시에 ‘절망의 땅’입니다.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기에 모두가 선망하는 땅이지만, 매일 땀냄새 나는 노동과 거리의 오물과 감정의 쓰레기가 뒤섞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만의 사정이 있습니다.

프랍하는 결혼 직후 독일로 떠나버린 남편이 있습니다. 중매결혼이었는데, 떠난 뒤에 연락 한번 없었지요. 간호사 프랍하에겐 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그녀를 위해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들 정도로 다정합니다. 하지만 프랍하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아닌, 어떤 미지의 것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살아가지요. 그렇다고 남편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을 연출한 파이알 카파디아 감독(가운데)와 아누 역의 카니 쿠스루티(왼쪽)과 프랍하 역의 디뱌 프랍하(오른쪽). [로이터·연합뉴스]
아누 역시 말 못 할 사정을 지닌 여성입니다. 그녀는 힌두교도임에도 무슬림 남성과 사랑에 빠진 상태입니다. 두 사람은 몸을 숨길 곳이 없어 길거리의 건물 구석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남들 눈을 피해 손을 잡기도 합니다.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사랑, 이 사실이 발각되면 단지 직장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도시 뭄바이에서의 삶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지요. 영화는 이처럼 각자의 현실 속에서 마음에 뭔가를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과정에서 룸메이트인 프랍하는 아누의 비밀을 지켜주려 하고, 아누는 병원을 찾아온 세 아이의 엄마(겨우 24세임에도)에게 피임약을 무심하게 무료로 건네주기도 합니다.

도시의 소음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은 결국 해안가를 찾게 됩니다. 뭄바이를 떠나서 말이지요. 영화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이 영화는 인간의 보편적인 공감을 움켜쥐는 결말에 이릅니다.

영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은 간호사 프랍하의 기자 출퇴근 장면이 다수 나옵니다. 뭄바이는 꿈의 도시이자, 동시에 떠날 수 없는 절망의 도시입니다. [칸영화제 웹사이트]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품은 ‘각자의 빛’일 겁니다.

인간이 상상하는 마음 속의 빛이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구축합니다. 꿈은 곧 그 사람의 인생 결말부의 예고편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그 빛은 절대적이지 못하고 상대적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 위의 태양은 절대적이지만, 우리 마음 속에 품은 빛(꿈)은 전부 상대적이란 의미이지요.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든 지켜야 하는 밀애이든, 그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가르키는 방향을 우리는 따라갑니다. 영화는 바로 이 점을 발견합니다.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의 제작진과 출연진. 가운데 웃고 있는 여성이 파이알 카파디아 감독입니다. 영화는 서정적인데, 오히려 레드카펫 위의 배우들 모습이 발리우드에 가까워 보이는 점이 흥미로운 사진입니다. [AFP·연합뉴스]
흔히 인도영화라고 하면 춤추고 노래하는 흥겨운 발리우드를 상상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잔잔해서 서정시에 가깝습니다.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자기 내면의 빛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과연 개봉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잔잔하지만, 꼭 그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영국 가디언과 BBC 등은 “황금종려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바로 파이알 카파디아가 될 것”로 예상했습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인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은, 황금종려상에 다가갈 수 있을까요. 25일(현지시각) 결과가 발표됩니다.

23일(현지시각) 칸영화제 드뷔시 극장에서 관람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빛’의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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