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주부’ 향한 존중 담고 싶었다 <주부 육성중> 임현

한겨레21 2024. 5. 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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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임현① 가장 가깝지만 가장 잘 모르는 ‘엄마’
임현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흔히 ‘이야기를 쓴다’고 하면 슈퍼히어로가 세상을 구하고, 광활한 미지의 대륙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를 떠올린다. 도시 규모 이하로는 이야기의 매력이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폼’이 안 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거대한 세계의 일원이고 싶은 욕망, 좀더 정확히는 그 한가운데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도 밥은 먹고 살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돌봄에 대해 꽤 소홀한 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살림’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도 그렇다. 이야기 중에서도 ‘주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 보이고,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어렵다고 느낀다. 그런 이야기를 오래도록 고민하고, 웹툰으로 만들어 연재한 작가가 있다. <플랫다이어리>와 <주부 육성중>을 쓰고 그려낸 임현 작가다.

회사 그만두고 그림 학원행 

요즘 ‘웹툰 작가가 된다’고 하면 전문적인 교육부터 떠올리는데, 작가님은 어떠셨나요?

“원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한 기업의 영업팀과 본부 내근직을 맡아 일했어요. 당시 인기작이던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에서 많은 위로를 얻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죠. 사실 회사 생활을 그렇게 잘하지 못해 그만두게 됐어요. 뭘 하지? 싶었는데 회사 일을 잘할 자신은 없고, 웹툰을 재미있게 봤으니 만화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렇게 두어 달 그림을 배워야겠다 싶어, 집에서 구체 그리기 같은 걸 했는데 서양화를 전공한 친누나가 ‘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 연필로 선을 그려주더라고요. 그러면서 ‘너, 정신 차리고 학원 가서 제대로 배워’라고 했죠.”

보통 다른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도전만화에 올리면 5화 정도까지는 지인들이 지인 아닌 척 ‘와~ 너무 재밌어요’ 하는 댓글을 달아주거든요.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진짜 독자님 몇 명이 있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 계속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보고 있다는 감상을 남긴다는 게 자각이 되더라고요. 독자를 처음 만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20화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제가 어떤 만화를 그리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 시점이 오는데, 독자분들이 알려주세요. ‘너는 이런 만화를 그리고 있고 나는 이런 점이 좋아’라고 말이죠. 일종의 선생님한테 받는 피드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게 진짜 독자들의 감상이잖아요. 웹툰 독자분들의 선한 마음이 저에겐 크게 남았던 것 같아요. 25화 정도 아마추어 연재를 하고 나서, 그렇게 데뷔작 <플랫다이어리>를 연재하게 됐죠.”

임현 작가의 <주부 육성중> 중 한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회사를 다닐 때와 가장 다른 것은 아무래도 ‘근태관리’일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다른 작가님들과 교류가 많지는 않아서 ‘웹툰 작가는 이렇다!’까지는 아니겠지만, 회사를 다녀봤잖아요. 회사에서 오래 다니신 50살이 넘어간 선배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근태’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웹툰 작가도 주간 마감을 하는 직업이고, 기고를 하는 직업이니 당연히 근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오래 다니기 위한 근태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독자들의 기대와 눈높이를 계속해서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 몸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너무 불가능한 높이의 선을 긋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몸을 늘이기 위해 스트레칭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사용하고 기술을 익혀야 하고요. 가동 범위를 넓히기 위한 운동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하루 한 번 산책을 포함한 운동을 하고, 절대 밤샘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특히 작가에겐 정신건강이 중요하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친구들을 불러서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도 ‘번아웃’의 ‘번’(Burn)은 아니어도 ‘아웃’(Out)은 오는 것 같더라고요. 자꾸 꼬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때 저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함께 사는 동반자의 도움이 굉장히 컸습니다.”

할머니를 꼭 그리는 마음

<플랫다이어리> 1화에 등장하는 할머니. 임현 작가는 60∼70대 어머님들의 방식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작품마다 할머니 캐릭터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제공

그래서 <주부 육성중>에서 ‘할머니’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걸까요? 왠지 계속 거기에 계실 것만 같은 분들.

“사실 저도 주부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4~5년 정도 된 주부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 예전에는 집집마다 전승돼 내려오던 주부의 삶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집안은 워낙 내밀한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집과 완전히 달라도 내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기도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난 것 같아요. 이제는 뭔가 집안에 문제가 있으면 인터넷에 물어보고, 자연스럽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따라가고, 심지어 집안에 있는 주부가 알려주는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 달랐는데, 요즘은 브랜드를 따지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감각? 지금 40~50대 된 분들이 부모 세대라고 하면, 그 윗세대인 60~70대 분들이 전승의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품을 할 때 ‘반드시 할머니 캐릭터를 넣자’고 생각했어요. 이 삶의 방식이 이상한 게 아니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 달라진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저희 어머니께서도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배워둘걸’하고 말씀하셨거든요.”

 <주부 육성중> 주인공 육성중이 아내를 위해서 살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아내에게 고백하는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주부 육성중>에서는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주부의 일이라고 하면 쓸고 닦고 요리하는 일 같은 기능적인 면이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가사 노동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을 챙기는 등 엄청나게 많고 넓은 영역을 관리하는 일이 주부의 일이잖아요. 주부가 돼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풀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주부 육성중>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저희 어머니를 생각하면서부터였어요. 아버지라는 존재는 제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거든요. 아버지라는 사람의 좋은 면, 나쁜 면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이해하게 됐는데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노력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했더니 서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빠의 서사는 넘쳐났고, 거기에 대입해보면 아빠의 이야기는 이해가 되는데 엄마라는 사람을 다루는 서사는 되게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요. 저희 어머니가 전업주부셨는데, 전업주부 중에서도 대단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전셋집에 살았는데, 그때 ‘이 집은 전업주부가 일 안 한다’고 할까봐 매일 아침 대문을 닦으셨어요. ‘내일 되면 더러워질 건데 왜 닦지?’ 싶을 수 있는데 그냥 저희 어머니는 그런 분이었던 거죠. 이후 과일 장사를 하실 때도 먹고 버리거나 떨어진 과일 때문에 금방 더러워질 가게 앞길을 매일 아침 청소해서 깔끔하게 만들고, 그걸 매일 하셨어요. 저는 이게 ‘프로 주부’가 아니면 뭐냐, 라는 생각을 했고, 작품을 쓰기 전에 ‘엄마에 대해 이해하고 그 이해의 시간을 작품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돌봄을 견디고 오랫동안 하고 계신 분들에 대한 존중을 담고 싶었달까요.” (계속)

이재민 웹툰평론가·만화문화연구소장

◆ <플랫다이어리> <주부 육성중> 임현 작가 인터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

5년차 주부 작가, 살림 그리는 낭만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52.html

 작품 목록

<플랫다이어리>2019년 3월3일~2020년 2월9일 네이버웹툰 연재. 해시태그(#)를 붙여 남이 보는 일기를 쓰는 시대, 나를 잃어버릴까 무서웠던 ‘나’의 시선으로 담아낸 샵(#) 대신 플랫(♭)이 붙은 일기장 같은 만화.

<주부 육성중>2022년 4월12일~2023년 10월10일 네이버웹툰 연재. 집안을 가꾸고 돌보는 일을 배워나가는 소방관 육성중씨가 ‘주부’로서 살아가는 삶을 자각하게 되는 이야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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