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카페의 한숨... 원인은 8500km 떨어진 홍해에 있다

김병권 기자 2024. 5. 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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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서울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생두를 로스팅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서초구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A(36)씨는 최근 블렌딩 원두에 필요한 생두 약 300kg을 급하게 사들였다. 작년에 수확된 생두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A씨가 갓 수확한 커피 생두를 기다리지 않고, 작년 입고된 생두를 산 이유는 가격이 비싸질 것을 걱정해서다. 생두 거래의 수단이 되는 달러 환율이 최근 고공행진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년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해 물류 대란’ 때문에, 주요 커피 생산국인 에티오피아의 생두 수출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닷길이 막히면 도매업체는 운임이 몇 배는 비싼 항공편으로 생두를 들여와야 한다. 8500km 떨어진 홍해와 1만1000km 거리에 있는 뉴욕에서의 상황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로스터리 카페 사장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A씨는 “마음 같아서는 300kg보다 생두를 더 구매해두고 싶은데, 그러면 이번 달 지출이 너무 많아져서 여력이 되는 선에서 샀다”며 “다른 카페에 납품하는 블렌딩 원두는 금액을 1kg에 1000원만 올려도 저항이 커서 최대한 가격을 동결하고 싶었지만, 새로 들어올 스페셜티(고급 커피) 블렌딩용 생두는 가격이 많이 오를 것 같아서 가격이 합리적인 인도, 과테말라, 니카라과 생두를 미리 들여놨다”고 했다.

◇이상 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에 지난달부터 급등한 ‘뉴욕 커피 지수’

뉴욕 커피 지수(커피 선물 지수)는 커머셜(일반 커피) 생두와 스페셜티 블렌딩 생두 가격의 기준점이 되는 지표다. 이 수치가 생두 계약이 주로 이뤄지는 4~5월을 앞두고 급등했다. 지난달부터 이 지수는 200을 꾸준히 상회하고 있다. 이 수치는 작년 10월 한때 146.05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최근 1.5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 수치가 200을 가리킨다는 것은 커머셜 커피의 파운드당 가격이 2달러라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1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서 커피 원두 수입 물가는 지난달 대비 14.6% 상승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6.7% 올랐다.

커피 업계에선 이 같은 뉴욕 커피 지수 급등에 ‘전 세계적 이상 기후에 따른 커피 생산량 감소’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 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브라질은 작년 냉해 피해로 커피 생산량이 급감했고,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엘니뇨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생두 생산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커피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했다. 브라질 커피수출협회(CECAFE)에 따르면 올해 1∼2월 대(對)중국 커피 수출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배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수출량도 작년에 비해 각각 37%, 87% 늘었다. 이상 기후로 생두 수확량은 줄었는데, 커피 수요는 계속 늘어나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내려올 기미 없는 원달러 환율까지...

생두 거래의 수단이 되는 달러 환율도 최근 꾸준히 1300원대 중후반을 기록하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원달러 환율이 한때 장중 1400원을 넘었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 결정이 늦어지는 것이 이유로 거론된다.

지난달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환율.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한때 장중 1400원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이 같은 악재에 커피 생두를 수입하는 업체에서는 “생두 구입 비용이 작년보다 늘어날 것 같다”는 우려가 터져나온다. 한 생두 수입업체 관계자는 “커피 선물 지수와 환율이 급등한 게 4월 들어서인데, 우리는 그 전에 생두 계약을 대부분 마쳐서 커피 선물지수 상승에 따른 영향은 거의 없다”면서도 “생두 대금 지급이 5월 이후로 계속되는데, 그때도 고환율 기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블렌딩에 많이 사용되는 브라질 생두의 경우, 작년보다 10~15% 정도 추가로 비용 지불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작년 연말부터 이어지는 ‘홍해 물류 대란’도 복병

여기에 작년 연말에 시작된 예멘 후티 반군과 미국⋅영국 연합군의 전쟁이 홍해에서 계속 이어지면서 에티오피아의 커피를 수입하는 업체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 생산량이 세계 5위권인 대표적인 커피 강국이다. 내륙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인접 국가인 지부티의 항구로 커피를 보내 뱃길로 수출하는데, 홍해에서의 소요 사태로 인해 현지 물류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생두 업체는 운송료가 몇 배는 비싼 항공으로 커피를 수입하기도 한다.

지난 1월(현지시각) 홍해에서 '번영의 수호자 작전'을 수행 중인 영국 구축함 HMS 다이아몬드호의 모습. /연합뉴스

생두 수입사 ‘커피미업’은 이번 달에 배로 들여오기로 했던 에티오피아 생두 2톤가량을 전부 항공으로 받기로 했다. 작년 연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홍해에서의 전쟁 때문에 물류 사정이 안 좋아 배로 물건을 받으려면 날이 뜨거운 지부티 항구에 커피가 최소 한 달은 묶여있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커피미업 대표 김동완(47)씨는 “생두가 뜨거운 곳에 오래 노출돼 있으면 변질이 될 우려가 있어 항공으로 물건을 들여오기로 했다”며 “이러면 배로 수입을 할 때보다 물류비가 4~5배는 더 드는데, 이는 생두 판매가에 반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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