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북·러 군사 협력’ 꺼리자 푸틴 ‘깜짝 방북’도 무산

모종혁 중국 통신원 2024. 5. 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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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원하던 무기·탄약 지원 안 돼…양국 교역 90% 루블화·위안화 결제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5월16일 오전 4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중국 베이징에 안착했다.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찾은 푸틴은 이례적으로 새벽에 도착해 당일 아침부터 밤까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이어갔다. 중국 매체는 두 정상이 12시간 이상 함께 지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푸틴은 다른 나라 정상과의 회담에서 '지각' 행각을 벌여 악명이 높았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4시간15분을,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1시간50분, 심지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도 45분을 기다려야 했다. 

5월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UPI 연합

'지각 대장' 푸틴, 취임 직후 시진핑부터 찾아

이런 푸틴의 행보는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상대방 정상을 기다리게 하면서 협상의 우위를 점하는 전략이다. 이는 자국민에게는 '스트롱맨'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협상이 실패할 때 발생할 손실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푸틴은 이번 방중에선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했다. 전례 없는 새벽 방문을 감행했고 1박2일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5월7일 러시아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중국을 찾은 푸틴의 의도와 목적은 명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속되는 서방의 경제 제재를 이겨내고 러시아의 안정과 발전을 계속 도모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푸틴은 이번 방중에 내각의 경제 분야 최고위 각료들뿐만 아니라 국영기업과 민영기업의 CEO를 망라한 러시아 경제·산업계 인사들과 함께했다. 특히 급증하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결제하는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 총재와 국영은행 CEO까지 대동했다.

2021년 양국의 무역액은 1468억 달러였다. 러시아에 중국은 최대 무역국이었으나 중국의 전체 무역 상대국에서 러시아는 9위였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이전부터 러시아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중국 수출이 많이 증가하면서 2022년에는 8위로 올라섰다. 2023년 양국 무역액은 전년보다 26.3% 증가한 2401억 달러에 달했다. 전 세계적인 수요 부진으로 인해 중국의 전체 무역액이 5% 감소한 상황에서 아주 이례적인 성과였다. 중국 세관총서가 발표한 통계에 더욱 구체적인 수치가 담겨있다.

2023년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1109억 달러로 전년보다 46.9%나 급증했다. 수입은 1291억 달러로 12.7% 늘어났다. 중국의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자동차 덕분이다. 중국이 전년보다 5배나 많은 80여만 대의 자동차를 러시아에 수출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중국은 전년보다 57.9%나 급증한 491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해 사상 최초로 세계 자동차 수출 1위 국가가 됐다. 그런데 그중 20%를 러시아가 수입하면서 가장 큰 공을 세웠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고질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줄였고, 러시아를 전체 무역 상대국에서 7위로 끌어올렸다.

양국 무역이 급성장한 이유는 거래 과정의 중국 위안화나 러시아 루블화 결제에 있다. 전쟁 이후 서방은 은행의 국제 자금 이동망인 스위프트에서 러시아를 축출했다. 하지만 중·러는 무역에서 위안화나 루블화 결제에 합의했다. 그에 따라 중국은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위안화로 구매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유럽을 대체하는 에너지 수출처를 확보했다. 러시아는 벌어들인 위안화로 중국 자동차를 사들였다. 그 덕분에 러시아인들은 서방의 제재로 수입이 봉쇄된 자동차를 중국산으로 바꿔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물론 두 나라의 위안화 및 루블화 결제가 마냥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지난 2월에는 중국 은행들이 러시아에서 위안화를 받지 않도록 조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5월16일 푸틴은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양국 교역의 90%가 미국 달러화가 아닌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로 결제됐다"고 밝힐 정도로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이번에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와 국영은행 CEO를 대동한 핵심 이유는 무역 거래의 결제에서 남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푸틴이 방중에 공들인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경제에선 '밀착', , 안보에선 '밀당'

5월16일 밤 발표된 중·러 공동성명에는 공동의 적으로 떠오른 미국을 성토하는 내용이 듬뿍 담겼다. 미국의 글로벌·우주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과 고정밀 비핵무기 능력 강화, 나토의 핵 공유와 동맹국들에 대한 확장 억제력 제공,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에 대한 미사일 제공 계획 등을 두루 문제 삼았다. 또 이를 겨냥해 양국의 군사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실었다. 공동성명에 "양국은 군사적 상호 신뢰와 협조를 한층 심화하고, 연합훈련 활동 규모를 확대해 해상·공중 합동 순찰을 정기적으로 조직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5월17일엔 하얼빈으로 이동해 하얼빈공업대학에서 연설했다. 하얼빈공대는 1950년대부터 중국 방위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대학 연구의 예산 절반을 국방 분야에 쏟고, 졸업생의 30%는 국방 부문에서 일한다. 2020년 미국은 하얼빈공대가 미사일 개발에 미국 기술을 이용하려 했다며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흥미롭게도 중국 언론은 푸틴의 방중 내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추어 소식을 전했다. 또 푸틴의 노골적인 구애 활동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가십성 보도에 치중했다. 실제 푸틴이 방중에서 얻은 의미 있는 성과는 별로 없었다. 비록 공동성명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받아냈지만, 주어가 '중국'이 아닌 '러시아'가 되는 이상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원했던 무기나 탄약에 대한 지원은 담기지 못했다. 전쟁에서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푸틴에게는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미묘한 긴장감을 드러났다. 물론 공동성명에는 "미국 및 그 동맹국이 군사 영역에서 위협 행동과 북한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 있는 무장충돌 도발로 한반도 형세에 긴장이 격화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위협·제재·탄압 수단을 버리기를 촉구한다"며 북한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 제기됐던 '깜짝 방북' 없이 푸틴은 곧장 귀국했다. 하얼빈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740km로 멀지 않다. 이에 대해 5월19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이 시진핑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푸틴은 지난해 9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의 방북 초청에 화답했기에 이번에 평양에 갈 여지는 충분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최근 움직임은 중국에 그리 달가운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핵 개발을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전부터 러시아에 북한을 포함한 삼자 동맹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기에 이런 현실을 잘 아는 북한은 향후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몸값을 높이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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