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학폭 피해학생을 성추행범으로 몰려했다 [視리즈]

김다린 기자 2024. 5. 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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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➊
11명 동급생 장애학생 폭행
사건 그 後 아물지 않은 상처
학폭위 통해 사건 마무리됐지만
피해학생 父 학교 상대 고소
학폭위 넘기지 말란 식 회유
무고하게 성추행범으로 몰기도
학폭위 해법 될 수 없는 현실
지난해 8월 일산 지역 초등학교에서 집단폭행 사건이 벌어졌지만, 아직 사건의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지난해 8월, 고양시 일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같은 반 친구 11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미디어에서 보도하면서 제법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더스쿠프도 당시 피해학생의 아버지 A씨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다뤘습니다. [※참고: 더스쿠프 통권 582호 커버스토리 기사 "대박이에요 어머니…" 일산 지역 초교 학폭사건과 담임의 눈가림]

# 그로부터 반년가량이 흐른 지금, 집단폭행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습니다. 학폭위가 열린 결과, 가해학생 일부는 징계조치를, 피해학생인 A씨의 아들은 보호조치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피해학생도 새로 진학한 학급에서 등하교를 하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도 당시 피해학생의 아버지 A씨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육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A씨의 아들을 '피해학생'이 아닌 '부적응 학생'으로 취급했습니다. 집단으로 맞고도 폭행 가해자가 될 뻔했고, 심지어 성추행범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 A씨는 학교가 원만히 해결하길 바랐지만, 문제를 덮기에 바빴던 학교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법정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A씨에겐 길고 가혹한 '학폭위 이후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비극은 왜 일어난 걸까요? 더스쿠프가 일산 학폭 사건에 다시 한번 펜을 집어넣었습니다.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 첫번째 편입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들이 쉬쉬하면서 대충 넘어가거나 은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흔히 '학폭위'라고 불리는 이 기구는 2004년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이하 학폭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초엔 각 학교에 설치했지만, 지난해 말 관할이 교육부 산하기관인 교육지원청으로 바뀌었습니다. 학폭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그 위상이 올라간 겁니다.

학폭위는 참 많은 일을 합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학교장은 학폭위 소집을 요청합니다. 이때부턴 사건을 학폭위가 담당합니다. 10~50명의 학폭위 위원들이 사건을 조사해 가해학생은 징계조치를, 피해학생에겐 보호조치를 결정합니다.

다만, 학폭위는 학폭 사건이 벌어져야 가동한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기구가 아닙니다. 고학년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A씨는 안타깝게도 '비非일상'에서 벌어진 '비정상적인 일'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의 일이었습니다. A씨의 일상이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일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동급생 11명이 학생 1명을 집단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의 피해자가 A씨의 아들 B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일산 모 초등학교 집단폭행'으로 일컬어진 이 사건은 지난해 여름 신문과 방송에서도 조명을 받았고, 최근까지도 매스컴을 타며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했습니다. 더스쿠프도 기사를 통해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당시 11명의 학생은 B군에게 신경외과 2주, 정형외과 2주 진단이 나오는 상해를 입혔습니다.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는데, 문제는 B군이 이전부터 투렛증후군(Tourette syndromeㆍ일명 틱 장애)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폭행의 트라우마 탓일까요. 안타깝게도 B군의 증상은 사건 이후 악화했고,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로부터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A씨는 당초 학폭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학폭위가 열리면 진실이 가려지고 B군은 치유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폭위 조사 결과는 지난해 11월에 드러났습니다. 11명 중 9명이 징계 등의 조치를 받았고, B군은 보호 조치를 받았습니다. 당시 폭행에 가담했던 학생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도 받았습니다. B군은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등하교도 무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A씨가 기대했던 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학폭위가 끝난 지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A씨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학폭위의 처리 절차와 결과가 미덥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B군이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학교와 A씨의 불편한 관계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A씨는 당시 담임교사와 교장과 교감, 괴롭힘 주모자의 부모, 사건을 수사했던 사법경찰관 등을 상대로 '법적 영역'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입니다. 대체 이 사건은 어디서부터 엉킨 걸까요.

■ 학교의 중상모략 = A씨가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건 사건을 처리하는 학교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학교는 사건을 학폭위에 넘기는 걸 마뜩잖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중상모략이 등장했죠.

이쯤에서 지난해 여름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까요. A씨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B군의 옷은 찢어졌고, 상처도 있었습니다. A씨는 사안이 비교적 명확한 만큼 학교가 중재해 금세 끝날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석연찮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B군이 '맞기만 한 게 아니라 때렸다' '맞았더라도 맞을 만해서 맞았을 것'이란 식이었죠. 처음 사건을 A씨 아내에게 알린 담임교사의 전화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사실관계를 정반대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B군이 맞은 게 아니라 여러 학생을 동시에 때렸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녹취록을 보시죠. "지금 대박이에요, 정말로. 근데 제일 세게 맞은 애가 제가 봤을 때는 옆 반에 ○○거든요.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사과하셔야 할 거 같아요."

학교의 최고 책임자인 교감과 교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A씨는 말했습니다. "폭행 사건 당시 아들에게 아무런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아내가 교육청 신문고에 민원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왜 허위 사실을 올리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사건을 외부에 드러내 확산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학폭위의 권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학교폭력 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교감의 행동은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쌍방폭행으로 '맞폭(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되레 신고하는 것)'이 걸릴 수 있으니 웬만하면 학폭위를 소집하지 말라는 취지로 만류했습니다. 차라리 "B군이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B군의 투렛증후군 증상으로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점도 거론했습니다. 이 내용이 담긴 A씨 아내와 교감의 통화 녹취록을 들어보시죠.

A씨 아내 : "지난번 통화했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학폭을 제기하게 되면 쌍방으로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교감 : "그거는 팩트잖아요."
A씨 아내 : "그러면 우리가 전학을 가야 하나요? 지금 아무것도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감 : "아니, (B군 때문에) 학습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그 나이에 밟아야 하는 정상적인 성장을 못 하고 있는 거잖아요."

더 충격적인 건 학교 측이 피해학생 B군을 아예 '범죄자'로 내몰았다는 점입니다. 집단폭행 사건이 벌어진 이튿날, 교감은 A씨 아내에게 느닷없이 '성추행' 얘길 꺼냈습니다. 아들 B군이 학급 학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6월 몇몇 학생이 B군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일을 보고했고, 학교 측이 이를 파악하고 있으니 집단폭행 사건을 학폭위에 넘기면 이 문제가 함께 불거질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A씨 아내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B군이 그런 일을 벌였다면 진작 문제가 됐을 텐데, 왜 폭행 사건이 터진 직후에 이런 말을 한건 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쌍방 폭행' '학습권 침해'를 운운하던 것과 같은 논리로 사건을 학폭위에 넘기지 말란 겁박으로만 이해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 측의 전략은 순순히 먹히는 듯했습니다. 학부모 사이에서 "B군이 평소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까 맞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니까요. 반전은 사건의 전말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면서였습니다. A씨에게 사과하는 가해학생 부모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학폭위가 열렸고, 집단폭행 사건은 언급했듯 '가해학생 일부 징계 조치, B군 보호조치'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터지는 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끝내기 위해 녹취록을 정리하고 있던 A씨는 교감의 '성추행 발언'을 들었습니다. 학폭위가 열리기 전 A씨의 아내가 들었던 그 발언이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A씨는 지난 4월 면담을 신청하고 교감실을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감은 B군의 같은 반 여학생 5명의 이름을 꺼냈습니다. 이들이 함께 교감실로 찾아와 "B군이 몸을 일부러 만졌다"고 상담했다는 겁니다.

A씨는 직접 거론된 학생의 5명의 부모와 직접 통화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었고, 언급된 5명의 사이가 좋지도 않아 교감실을 함께 찾았을 리 만무했을 거란 겁니다. "또 학생들을 이용하는 거냐"며 분노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학생이면 으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편견을 이용한 교활한 '입막음' 전략이었던 겁니다.

사실 학폭 사건이 벌어지면 상당수 학교에서 '축소'를 시도합니다. 학교 측이 그만큼 사건 처리에 미온적이란 겁니다. 학폭위는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 소관입니다. 학폭위 결과에 따라 각종 소송과 행정심판으로 이어지면 학교 측은 더 큰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학폭을 가급적 기피하려는 이유죠. 많은 학폭 사건이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한 학생들의 장난쯤으로 치부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특히 학교가 이런 중상모략을 짤 수 있었던 건 B군이 학교 내에서도 '약자'인 학생, 그중에서도 위협에 노출되기 쉬운 '장애 학생'이란 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A씨는 학폭위 조치가 다 완료됐음에도 사법 공방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이 얘긴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후' 두번째 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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