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폐암의 주범 ‘요리 매연’…‘맞통풍 환기’가 최고의 대응책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24. 5. 25. 11: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담배도 안 피우는데…억울한 비흡연 폐암 여성 한 해 1만 명
간접흡연보다 무서운 ‘요리 매연’ 탓에 폐암 위험 3배 증가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국내 폐암 환자 10명 중 3~4명은 여성이다. 폐암의 주요 원인으로 흡연이 꼽히지만 여성 폐암 환자의 90%는 담배를 피운 경험이 없다. 비흡연 여성 폐암의 가장 큰 원인은 '요리 매연(cooking fume)'이다. 요리할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은 비흡연자에게도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 가정, 학교와 요양병원 급식소 등에서 요리할 때 필수 조건으로 환기를 강조한다. 환기의 핵심은 '맞통풍 환기'다.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폐암 여성 수는 약 1만 명이다. 이는 한 해 발생하는 폐암 환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체 폐암 환자 중 여성 비율은 2000년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09년 28%에서 2020년 32%로 높아졌다. 그런데 여성 폐암 환자의 대부분은 비흡연자다. 서울시보라매병원 호흡기내과 연구팀이 2022년 진행한 연구에서 여성 폐암 환자의 94%는 비흡연자로 나타났다. 또 2003~15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은 여성 환자의 93%는 비흡연자였다. 여성 폐암 환자 10명 중 9명은 흡연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폐암에 걸린 것이다. 

ⓒ뉴시스

이처럼 흡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서 발생한 폐암, 즉 비흡연 여성 폐암이 꾸준히 증가하는 이유는 요리 매연(또는 조리흄)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요리 매연은 음식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와 유해물질을 통칭한다. 대한폐암학회가 2017~18년 국내 10개 대학병원에서 비흡연 여성 폐암을 조사했더니 주방에서 시야가 흐릴 정도의 요리 매연이 발생할 때 폐암 위험은 약 2.7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름을 사용한 요리를 주 4회 이상 할 경우의 폐암 위험은 약 3.7배나 상승했다. 

또 폐암 위험이 2년 이상 간접흡연을 한 사람은 약 1.6배, 폐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약 3.5배, 암 병력이 있는 사람은 약 3배 높았다. 폐암 위험이 큰 직업군으로는 용접공, 도장공, 광부, 석면·고무·중금속 등을 다루는 사람 등이다. 결론적으로 요리 매연의 폐암 위험성은 간접흡연보다 크고 특정 직업군 또는 암 병력의 위험성과 맞먹는다. 폐암 위험이 큰 직업군이나 암 병력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 대다수 비흡연 여성 폐암의 주요 원인은 요리 매연인 것이다. 

나쁜 실내 공기는 실외보다 더 위험

비흡연 여성 폐암이 증가하는 현상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중국·미국·유럽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기름을 이용한 요리를 즐기는 중국과 대만에 비흡연 여성 폐암이 많다. 대만도 그 원인을 찾는 연구를 진행한 결과 웍(중국식 프라이팬)으로 요리하는 사람의 폐암 발병률이 높았다.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 가운데는 음식을 조리할 때 식용유가 뜨거워질 때까지 기다린 사람이 많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요리 매연에는 미세먼지·폼알데하이드·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일산화탄소·이산화질소·블랙카본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물질이 폐에 축적되면 산소 교환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기침이나 가래 같은 호흡기 문제가 생긴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져 염증이 생기기 쉽고 만성 폐질환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특히 폼알데하이드·휘발성유기화합물·일산화탄소 등은 그 자체가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기름을 사용해 어류나 육류를 굽거나 튀길 때 발암물질이 많이 발생한다. 

육류나 기름뿐만 아니라 음식을 조리하는 자체에서도 유해물질이 나온다. 가스레인지로 요리하면 혼잡한 거리의 자동차 배기가스보다 최대 100배 위험한 물질에 노출된다는 미국 퍼듀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PNAS 넥서스)에 게재된 바 있다.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이거나 샌드위치를 구울 때 방출된 에어로졸 입자가 사람의 폐에 들러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요리 매연이 쌓인 실내는 실외보다 건강에 나쁜 환경이 된다. 중국 장시재경대학 연구팀은 2021년 오염된 실내 공기는 오히려 실외 공기보다 건강에 해롭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요리 매연에서 발암성 독성을 확인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요리 매연 등으로 오염된 실내 공기로 인해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추산한다. 사망 원인을 보면 폐렴·심장병·만성폐쇄성폐질환(COPD)·뇌졸중·폐암 등 치명적인 질환이다. 

요리 매연에 단기적으로 노출되면 두통·기침·메스꺼움·천식 발작뿐만 아니라 눈·코·목에 자극이 생긴다. 비흡연 여성 폐암에서 증상이 없는 경우가 약 18%로 흡연 여성 폐암의 2배에 이른다. 장기적으로 노출된 경우에는 신경계·간·신장의 손상뿐만 아니라 암까지 발생한다. 오염된 실내 공기에 자주 노출된 아이는 폐렴 위험이 거의 2배 높아진다.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도 잠재적인 위험이 있다. 엄마가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많이 노출되면 아이 출생 시 체중 미달, 신체발달 미숙, 면역 저하 등과 같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1년 교육 당국에 급식실의 공기질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가정·학교·요양병원·사무실 환기 권고

요리 매연을 가장 확실히 줄이는 방법은 환기다. 실내에 쌓인 유해물질을 외부로 배출하는 것이다. 춥거나 덥다는 등의 이유로 환기 대신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는 가정이 많다. 그러나 공기청정기는 냄새를 중화할지는 몰라도 요리 매연 자체를 제거하거나 배출하지는 못한다.

환기의 핵심은 '맞통풍 환기'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배포한 주요 집단시설에서의 '슬기로운 환기 수칙'을 통해 실내 전면과 후면의 창문과 출입문 모두 열어 맞바람이 치는 통풍 환기를 권고했다. 그러면서 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오염물질(PM2.5) 농도가 매우 나쁜 실내에서 환기를 하지 않으면 20분이 지나도 그 농도가 거의 낮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쪽 창문만 열고 환기하면 15분 만에 그 농도가 절반가량 낮아졌고 맞통풍 환기를 하면 5분 만에 거의 해소됐다. 

이런 자연 환기법에 인공 환기법을 추가하면 더 효과적이다. 환기의 방법은 자연 환기와 인공 환기가 있다. 자연 환기는 창문이나 출입문을 열어 실내외 공기가 순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인공 환기는 후드 같은 환기 장치를 가동해 오염된 실내 공기를 외부로 강제 배출하는 방식이다. 가정에서는 실내 공기의 오염물질을 배출하기 위해 설치된 후드를 사용할 수 있다. 기억할 부분은 맞통풍 자연 환기를 한 상태에서 후드를 요리 시작 몇 분 전부터 가동해 요리를 마친 후 15분까지 작동 상태로 놔둔다는 점이다. 후드 작동 속도는 다소 시끄럽더라도 최고 속도로 설정하는 것이 좋다. 효과적인 인공 환기를 위해 후드의 필터를 정기적으로 세척 또는 교환해야 한다.

환기는 요리 매연을 배출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예방에도 큰 효과를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요양병원·사무실에서 평소 2시간마다 10분 이상의 환기를 권고한다. 학교에서 인공 환기 장치를 상시 가동하고 쉬는 시간 10분간 자연 환기를 병행하면 병원균의 공기 전파 위험도가 10% 이하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요양병원에서도 인공 환기 장치를 상시 가동하고 2시간마다 10분 이상 자연 환기를 병행할 때 공기 전파 위험도는 30% 미만으로 감소한다. 일반 사무실에서는 인공 환기 장치를 상시 가동하고 수시로 자연 환기를 병행해야 한다. 특히 회의 시간을 짧게 할수록 공기 전파 위험도가 떨어진다. 환기 없이 2시간 회의할 경우 공기 전파 위험도가 100%라면 자연 환기와 인공 환기를 하면서 1시간 회의할 때는 그 위험도가 20% 미만으로 낮아진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이번에 개정된 환기 수칙으로 주요 집단 발생 시설에서의 안전한 실내 환기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돌연변이 폐암에는 표적치료제가 효과적

이처럼 정부 기관이 실내 환기를 강조하는 배경에는 매년 증가하는 비흡연 여성 폐암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도 있다. 최근 비흡연 여성 폐암은 남성과 다른 점이 발견됐다. 서양권에서는 10~15%밖에 안 되는 종양 유전자(EGFR) 돌연변이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등 동양권 비흡연 여성 폐암의 40~50%에서 확인된 것이다.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이 돌연변이는 가족력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생기며 그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 폐암은 표적치료제가 효과적이다. EGFR 표적치료제는 2000년 초 개발된 후 1~3세대까지 상용화됐다. 코로나19 치료제로 잘 알려진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와 유한양행의 렉라자가 대표적인 EGFR 표적치료제다. 

무엇보다 비흡연 여성 폐암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계영 건국대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은 '비흡연 여성 폐암' 자료를 통해 "대표적인 여성 암인 유방암은 조기 검진에 대한 인식이 넓어져 5년 생존율이 90%를 넘는다. 자궁경부암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폐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 완치율은 30%에 불과하다. 게다가 적절한 환기와 같은 개인적인 노력이나 사회적 계몽은 물론, 비흡연 여성 폐암에 대한 보건의료 정책과 예방 관리 지침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