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한겨레 2024. 5. 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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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도서전을 만드는 일을 한 지 벌써 8년이 되었는데도 매년 더 좋은 행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을 늦추긴 어렵다.

"한 겹이 나이 한 살입니다. 실체가 없는데요. 그런 겁니다. 게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그런 게 인생입니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우리의 선택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거기다 지구는 전쟁, 기아, 바이러스, 기후변화, 불황 등으로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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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이 삶을 다시 한번

서울국제도서전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도서전을 만드는 일을 한 지 벌써 8년이 되었는데도 매년 더 좋은 행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을 늦추긴 어렵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바짝 힘을 낸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라 모두 함께 하룻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모두 젊고 문화적 소비도 왕성한 친구들이라 9명이 빼곡하게 탄 차 안이 즐겁다. 음악 좀 듣는 친구의 전화기에 블루투스로 연결해 차 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고 떠났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가 무언지 귀동냥도 한다.

키 크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귀여운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가 인기가 높다. ‘선재 업고 튀어’. 다음주면 종방이다. 솔은 자신과 얽혀 죽음을 당하는 남자 친구, 선재를 살리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비틀고 다른 결말을 유도한다. 솔이 과거로 반복해서 돌아가서 미래를 이렇게도 바꾸고 저렇게도 바꾸어 보지만 인과의 연결이 복잡해서 원하는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애가 탄다. ‘솔선’ 커플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데, 어떤 방법을 써도 선재의 죽음을 피하기 어려우니. 솔은 극단의 방법을 쓰기로 결심한다. 선재를 처음부터 만나지 않도록 과거를 바꾸고, 인연을 아예 끊어버린다. 시청자 게시판은 난리다.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모두 잃은 선재를 용납하기 어려운 거다. 솔의 선택을 두고 찬반이 갈린다.

같은 질문에 대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원하면 ‘이 삶을 다시 한번’이 볼만하다. 맨몸에서 다시 시작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보려고 벌거벗은 인물을 표지에 두었다. 옷이 필요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집도 필요하고, 다 갖췄으면 친구도 있어야지. 의상 디자이너, 봉제공장 직원, 농부, 어부, 소를 키우는 사람, 요리사, 조선소도 지어야지, 사료는 어디서 구할까? 그릇은 가마에서 구우면 되나? 촘촘하게 연결된 연결을 다 끊고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서 다시 사는 삶은 ‘선재 업고 튀어’처럼 운명을 중심으로 빙빙 돌기보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확률이 훨씬 높다.

그래서, ‘이 삶을 다시 한번’에 실린 ‘짜릿한’ 단편들은 인생의 선택의 계기들을 한 페이지에, 때로는 네댓 페이지에 가득 담고 있다. 양계장에 다녀와서 한동안 닭고기도 꺼렸던 아이는 이제 스테이크도 씩씩하게 먹는다. 바쁜 엄마 등에 계속 업혀 있고 싶어서 자는 체를 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잘린 날 만난 길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하기도 한다. 폐업하기로 한 날 만난 강아지와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서른다섯 살에 죽는다는 고백을 한 친구와 결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에이즈 환우인 이성 친구와 사귀면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들 속에서 늘 다른 선택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다른 선택은 인생을 바꿀까? 작가가 보기에 인생은 양파 같다. “한 겹이 나이 한 살입니다. 실체가 없는데요. 그런 겁니다. 게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아요. 그런 게 인생입니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우리의 선택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거기다 지구는 전쟁, 기아, 바이러스, 기후변화, 불황 등으로 대책이 없다. 2003년에 깨어났어야 할 아톰도 골치가 아파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성황이다. 예매가 작년의 두배이니, 힘을 낼 수밖에 없다.

주일우│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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