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로 한탕 노린다”…갱단 표적된 ‘황금 액체’ [퇴근후 부엌]

2024. 5. 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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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달리3]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썰도 한 술 떠 드립니다.

올리브 나무는 인류가 최초로 대량 재배한 과수입니다. 열매에서 짠 기름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기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구약성서에도 등장합니다.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한 만큼 인류의 식탁을 바꾼 식재료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올리브유는 지난 1년간 식용유 중 가격이 제일 많이 뛰었습니다. 살인적인 더위로 스페인에서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식물성 기름 가격 추이. [Business analytiq 홈페이지 캡처]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올리브유 가격은 1㎏당 1.9달러였지만 이달에는 2.8달러로 값이 두 배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황금 액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습니다. 마트에 가보면 올리브유는 카놀라유, 포도씨유 등 다른 기름에 비해서도 곱절은 비싸 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치킨 가격까지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올리브유로 치킨을 튀긴다는 치킨 프랜차이즈 BBQ도 두 손 두 발을 들고 치킨 가격을 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퇴근 후 부엌에서는 지난 편 버터에 이어 인류의 역사를 바꾼 기름 올리브유에 대해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올리브유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와 이를 활용한 레시피도 알려드립니다.

[재료 썰]

황금빛 태양이 내려앉은 케크로피아(현 아테네). 도시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시민들은 각자의 일을 멈추고 바위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생 도시국가 아티카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올림포스 최고의 신들이 경합을 벌이는 날이었다. 제우스의 형이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정의와 지혜의 여신이자 제우스의 가장 아끼는 딸인 아테나의 대결. 큰아버지와 조카, 세기의 경쟁이라고 후대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챗GPT 달리3]

포세이돈이 먼저 나섰다. 그가 거대한 삼지창을 치켜들자 아크로폴리스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너희에게 선사할 선물은 바다의 힘이며, 이는 이곳을 가장 강력한 도시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지창이 바위를 갈랐고 푸른 물줄기가 솟구쳤다. 포세이돈의 신마(神馬)들이 물줄기에서 태어났다. 그 장관에 시민들이 탄성을 질렀다.


아테나의 차례였다. 그가 땅에 씨앗 하나를 던지자 아름드리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아테나 여신의 신목(神木) 올리브나무였다. 그는 “내가 선사하는 것은 영속적인 평화와 번영이다. 이 나무가 이 도시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외쳤다.

프랑스 화가 르네 앙투안 우아스가 그린 아테나와 포세이돈의의 분쟁 (1689년)

신들의 선물 사이에서 시민들은 고민했다. 이내 승부는 판가름 났다. 포세이돈이 선물한 샘은 소금기 때문에 마실 수 없었다. 시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열매를 맺고 기름을 짤 수 있는 올리브나무를 택했다.

그리스 아테네 에렉테이온 신전으로 포세이돈과 아테나에게 봉헌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아테네 최초의 왕 케크롭스 왕은 정중히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모시고 도시 이름을 아테네로 정했다. 포세이돈은 분노와 실망으로 자리를 떴지만 아테네는 그날부터 더욱 번영했다. 그 나무는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한 번 잘렸으나 같은 날 2큐빗(약 1m) 다시 자라났다. 도시와 함께 올리브 나무도 세대를 이어 번성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올리브 나무에 얽힌 신화를 재구성했습니다. 신화를 방증하듯 아테네에 있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에게 봉헌된 에렉테이온 신전 뜰에는 아직까지 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에렉테이온 신전 뜰에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리브나무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아끼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올리브나무에서 수확한 올리브 열매에서 짜낸 올리브유를 수출하고 그 대가로 밀을 수입해 먹었다고 합니다. 만약 올리브유가 없었다면 고대 그리스는 문명을 꽃피울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단 그리스인들뿐 아니라 성경과 코란에서도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유를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올리브나무 가지는 비둘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입니다. 대홍수 이후, 방주를 타고 피난했던 노아는 육지를 찾기 위해 세 차례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세 번째 비둘기가 올리브나무 가지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는 신의 분노가 풀렸음을 뜻했다고 합니다. 또 출애굽기에는 신이 모세에게 향료와 올리브 기름으로 성유(聖油)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신은 그 성유로 제사상과 제기에 광을 내되, 몸치장 같은 다른 용도로 쓴다면 그런 사람은 족보에서 이름이 빠질 것이라는 계시를 내립니다.

올리브 나무. [123rf]
인류의 터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타들어간다

신이 내린 선물이자 인류의 터전과 미래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가 21세기 들어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후위기 때문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웬만한 고온과 가뭄도 잘 견뎌냅니다. 문제는 기온이 너무 가혹한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것입니다. 올리브유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에서는 이상 기후로 올리브 수확이 급감했습니다.

스페인은 지난해 4월부터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로 몸살을 앓았고 12월에도 낮 기온이 30도가 넘는 이상고온을 겪었습니다. 올리브 나무의 열매를 보기 위에서는 겨울에 0~10도 사이를 유지하며 2개월간 휴면기를 가져야 하지만 지난 겨울은 너무 뜨거웠던 탓에 작황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국제올리브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생산량은 240만t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수확량보다 적고 전 세계 수요인 약 300만t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올리브가 귀해지자 울리브유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올리브유를 터는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갱단까지 연루됐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리브열매와 올리브오일 [123rf]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올리브 오일은 현재 미국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가장 많이 훔쳐가는 물품입니다. 슈퍼마켓에서는 도난 방지를 위해 5ℓ짜리 대형 올리브 오일 병을 묶어 선반에 자물쇠로 잠그기 시작했으며, 다른 매장에서는 직원이 제거해야 하는 보안 태그를 다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올리브 오일 문화권인 지중해 인근 국가들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산지인 스페인에서는 수확기인 9월부터 올리브 나무를 통째로 베어가 열매를 털어가는 일들이 속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절도가 생계형 범죄가 아닌 갱단까지 연루된 사건이라고 보고됐습니다. 슈퍼마켓 실태조사를 실시한 보안회사 STC는 절도 사건이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조직적인 갱단이 주도했다고 밝혔습니다.

‘황금’ 올리브유 대신, 어떤 기름 써야 할까

소비자들과 요식업자들은 올리브유 줄이기 및 대체재 찾기에 나섰습니다. 올리브유는 푸릇푸릇한 향미가 뛰어나 드레싱으로 사용할 경우 대체할 기름이 많지 않습니다. 발연점이 높고 향미도 좋은 아보카도 오일이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코코넛 오일을 사용해도 되지만 올리브유의 향미를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스페인식 문어샐러드 뽈뽀. 신주희 기자

퇴근 후 부엌에서는 올리브오일과 문어가 들어간 스페인 요리 ‘뽈뽀’와 올리브유를 적게 쓰는 요리 방법을 소개합니다.

▶재료 : 데친 문어 400g, 방울 토마토 2줌, 감자 2알, 올리브유 1t, 현미유 3T, 소금 2꼬집, 후추, 레몬 1/2개

1. 문어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준 뒤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잘라줍니다. 방울토마토와 감자도 같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2. 그릇에 감자를 담고 랩을 씌운 뒤 6분간 전자레인지에 돌립니다.

3. 현미유 세 큰술에 올리브유를 조금 섞고 소금, 후추로 더해 드레싱을 만듭니다.

4. 문어, 삶은 감자, 토마토를 담고 드레싱을 섞은 뒤 레몬즙을 뿌려줍니다.

데친 문어를 사용한다면 불이 필요 없어 만들기도 쉽습니다. 샐러리와 파프리카 가루를 넣으면 한층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미유(왼쪽)과 압착 올리브유(오른쪽). 현미유는 색깔이 옅으며 청주와 유사한 향을 지니고 있다. 신주희 기자

이번 요리의 핵심은 현미유입니다. 미강유로도 알려져 있는 현미유는 쌀겨로 만든 식물성 기름입니다. 올리브와 영양학적으로 견줘도 뒤지지 않습니다. 현미유는 올리브유처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올레인산이 풍부합니다. 포도씨유, 카놀라유보다도 영양 성분이 우수한 편이죠.

요리 활용도도 높습니다. 발연점이 높아 올리브유와 달리 굽거나 튀길 때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향이 진하지는 않지만 옅은 청주 향이나 샐러드 드레싱에도 잘 어울립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입니다. 소비자가격 500㎖에 약 7000원대로 같은 용량에 약 14000원에 달하는 올리브유보다 저렴하죠. 올리브유와 현미유를 섞어서 사용하면 적은 올리브유로도 요리에 어울리는 맛을 낼 수 있습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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