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하지 말고 당장, 반응 말고 대응, 치료 전에 관리

한겨레 2024. 5. 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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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현명한 삶의 자세
포기·절망하지 말고 차근차근
즉자적 감정 통제, 침착하게
‘좋은 습관’ 잠재적 불행 방지
내 삶의 ‘버팀목’ 쌓아가기
미국의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위키피디아

안녕하세요, 여러분. 조민진입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더니 미국 과학 전문기자 룰루 밀러가 쓴 논픽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과학 분야 베스트 코너에서 여전히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출간 2년이 넘은 책인데 말이죠. 베스트셀러 꼬리표를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미 읽은 책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으면 왠지 뿌듯합니다. ‘그래, 나도 읽어봤다니깐…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다고!’ 하는 차원에서요.

생물분류학자 조던의 물고기 표본

데이비드 스타 조던. 저자인 밀러를 제쳐 둔다면 이 책 속 주인공입니다.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에세이에서 밀러는 자신이 파고든 조던의 삶을 풀어놨습니다. 조던은 미국 스탠퍼드대 초대 총장이었고, 생물분류학자였고, 세상의 수많은 물고기를 발견했으며,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기 위한 우생학을 신봉했습니다. 밀러는 조던이 살았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요. 인물을 탐구하는 전기류를 좋아하는 제게 사실상 조던의 평전이기도 한 이 책은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삶의 어떤 방식과 그 연유를 꿰뚫는 저자의 통찰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고요. 네, 이 책은 삶의 자세에 관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밀러는 조던에게서 빛과 그늘을 함께 보았죠. 사는 태도를 배우려 했던 사람에게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밀러는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사는 동안 한번쯤은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요? 이번 글에선 삶을 대하는 자세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유용한 ‘애티튜드’(태도)에 대해서요. 마침 최근 몇 해 동안 많은 분이 애독한 책 속에도 제가 찾은 해답 중 일부가 들어 있는 듯해 이렇게 꺼내 봤습니다.

실용적으로 도움 되는 자세로 퍼뜩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먼저 ‘이미 늦었는데 말고 지금이라도’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진리 같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을 떠올려 볼까요? 내내 놀다가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던 다급한 순간을요. 비슷한 처지라도 정신력 강한 친구는 ‘지금이라도’ 할 일을 합니다. 시험 직전 쉬는 시간까지 하나라도 더 공부해서 하나라도 더 맞히지요.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는 대신 지금이라도 한다는 자세는 희망을 줍니다. 늦었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틀렸어도 다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하지요.

밀러가 일종의 동경을 품고 조던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이유도 그에게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였습니다. 조던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30년 연구 노력이 거의 수포가 된 지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단번에 내동댕이쳐진 수천 마리 물고기 표본과 흩어진 이름표들 앞에서 조던은 바늘을 들었습니다. 이젠 유리단지에 표본과 이름표를 넣어두는 대신 아예 물고기 피부에 이름을 꿰매 붙여서 같은 불상사를 대비하겠단 거였지요. 아무튼 조던은 충격적인 불행 앞에서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겁니다. 운다고 해결될 일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조던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는 일에선 ‘지금이라도’ 정신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밀러가 한때의 우상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죠. 조던은 다윈의 진화론을 수긍하면서도 자의적 믿음과 질서를 위해 끝까지 우생학을 밀어붙였습니다. 잘못된 신념과 습관 따위는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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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도로 현명하게 살 것인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잉글랜드 대 아르헨티나)에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맨 오른쪽)이 레드카드를 받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그럼 두번째 자세를 꼽아볼까요? ‘반응 말고 대응’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번번이 반응하는 사람과 대응하는 사람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줄 아느냐, 아니냐의 차이 같습니다.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대응해야 할 때 반응함으로써 낭패를 보는 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터무니없는 주문을 받았다 칩시다. “그걸 어떻게 해요?”, “말도 안 돼요!” 등으로 즉각적으로 부정적이고 싫은 감정을 내보이는 사람은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일단 수긍하고, 왜 안 되는지 검토한 이유를 들고 다시 상사를 찾아가 설명하는 사람은 ‘대응하는 사람’입니다. 조직에선 결국 누가 신뢰받을까요? 답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저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체득했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축구 스타죠, 데이비드 베컴에 관한 4부작 다큐멘터리(‘베컴’, 넷플릭스)를 재밌게 봤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에서 베컴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한 일이 담겼더군요. 잉글랜드가 탈락했고 베컴은 패배의 주범으로 몰렸습니다. 당시 베컴과 물리적 신경전을 벌였던 아르헨티나 선수 디에고 시메오네는 인터뷰에서 “(베컴이) 살짝 건드린 수준인데 제가 연기를 좀 했어요. 베컴이 세게 찬 것처럼 넘어졌죠”라고 털어놨습니다. 베컴의 반응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성가시게 굴었던 거였습니다. 베컴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더라면 이후 모진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았을 테지요. 대응보다 반응이 앞서면 종종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두 사람, 조던과 베컴의 이름이 모두 ‘데이비드’네요!

마지막으로는 ‘치료 전에 관리’를 꼽겠습니다. 이 대목에선 작은 차이가 결국 큰 차이로 이어짐을 알아채는 게 중요합니다. 꾸준함이 포인트고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지요. 미리 관리하고 예방하지 않으면 나중에 치료하고 수습해야 할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건강 문제에 한정할 얘기만은 아닙니다. 옷 관리를 예로 들어볼까요? 깨끗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필요할 때 세탁을 미루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세탁물을 방치하면 찌든 때가 드니까요. 원상 복구하려면 결국 더 큰 노력과 비용이 들거나 아예 회복이 어려운 경우도 생깁니다. 운동하는 습관, 소식하는 습관, 양치하는 습관, 정리하는 습관처럼 작지만 좋은 습관들로 평소에 관리하면 혹시 모를 잠재적 불행을 막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적은 노력을 꾸준하게! 생각보다 효용이 크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자세를 고민해 보는 일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의 태도를 결정할 자유만은 내게 있으니까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끝까지 읽으신다면 저자인 밀러가 오랜 혼돈 끝에 얻은 ‘삶의 자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류라는 범주를 부숴버린 책 제목도 결국 거기서 비롯됐더라고요. 좋은 자세가 우리의 일상을 빛내주길 기원해 봅니다.

조민진│작가 신문·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작가나 강사로 불립니다. 꿈꾸며 노력하는 여러분께 말과 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 유튜브(‘조민진의 웨이투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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