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의 도살자가 죽었다"…이란 국민들의 '냉소' 이유는? [스프]

김혜영 기자 2024. 5.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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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빽]


아래 사진은 현지시각 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은 구름 인파가 몰렸습니다.


바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등 헬기 사고 사망자들을 추모하려는 이란 국민들인데, 운구 행렬을 따르며 눈물을 흘리거나 관에 손을 뻗어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장례식은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집전했습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ㅣ이란 최고 지도자
(희생자들은 이제) 마호멧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알라는 위대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2인자인 나임 카셈, 후티 반군 대변인인 모함메드 압둘살람 등 이란 '대리 세력'의 대표단들도 직접 조의를 표했습니다.
(왼쪽부터)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2인자 나임 카셈, 후티 반군 대변인 모함메드 압둘살람


이란 정부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된 지난 20일부터 닷새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이런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 정작 SNS에서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을 축하하는, 정반대 분위기의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란 국민들은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사고 원인인 '헬리콥터'를 신나게 외치며 노래 부르는가 하면, 축배를 들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2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이란은 행복하다(Iran is happy)"라는 해시태그로 많은 글과 영상들이 게재되고 있고, 보다 못한 이란 사법부 관리들이 '대통령의 사망을 축하하는 이들은 누구든지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대체 라이시 대통령이 어떤 인물이었길래, 이란 국민들이 대대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서 이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테헤란의 도살자'에게 사연 많은 이란 국민들

이런 현상은 라이시 대통령의 화려한 이력 뒤에 늘 따라붙는 꼬리표, 즉 '테헤란의 도살자'라는 별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40여 년 전부터 반체제 인사를 숙청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해 온 걸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즉, 그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한 분노가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 속에서도 공공연하게 표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20대 중반에 수도 테헤란을 관할하는 검찰청 차장검사에 올랐고, 이후 검사장, 검찰총장을 거쳐 사법부 수장까지 출세 가도를 달려온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탄탄대로의 과정에서 반정부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처형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그는 1988년 당시 반체제 인사들을 즉결 심판, 처형하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는데, 당시 한 법정에서만 5천여 명이 처형됐다는 추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모아멘 구다ㅣ한국외대 교수
라이시 대통령은 이슬람 공화국에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어떤 개혁이나 시위, 집회든 매우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악명 높은 평판을 가졌습니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이후엔 전국적으로 번진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그가 정부군의 총격 대응을 지시해 무고한 시민들 최소 551명이 숨졌고, 인권단체 추산 약 6만 명이 구금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최근 SNS 영상에서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을 축하한 이들 중에는 실제 이 히잡 시위에 참가했다가 한쪽 팔을 다친 여성도, 또 히잡 시위에서 정부군 총격에 어머니를 잃은 두 딸도 있었습니다.

히잡 시위에 참가했다가 한쪽 팔 다친 오른쪽 여성

히잡 시위에서 정부군 총격에 어머니를 잃은 두 딸.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을 축하하고 있다.
장지향ㅣ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대부분의 젊은 여성이 주도하고 같은 또래의 남성들도 열심히 동조하는 시위였는데 당시 대통령이었던 라이시가 강경하게 진압을 하라고 얘기를 했었고... 인권 탄압의 상징이죠, 이란에서. 온건 개혁파 출신이 대통령이 되거나 했을 때는 그렇게 심하게 단속을 하지 않았었거든요.

라이시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려 했던 전임 대통령과는 달리, 서방과 대놓고 척을 진 강경파였습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후티 등 자신들의 '대리 세력'인, 이슬람 무장 단체들을 적극 지원하면서 중동의 긴장 수위도 높여왔습니다. 지난달엔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을 공격해 혁명수비대원들을 사살했다며, 드론과 미사일 수백 발로 사상 처음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했습니다.

'유력 후계자'의 빈자리, 누가 와도 새롭지 않다?

사실 그의 사망이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은 건, 그가 대통령이어서라기보다는, 이란의 권력 서열 1위인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유력한 후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란은 신정일치 국가로서 최고 지도자가 서열 1위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대통령이 임기 4년에 한 번 연임이 가능한 행정 수반인 데 반해,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종신직이자 정치, 종교를 아우르는 절대적인 권력자이기 때문에 국정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란에선 6월 28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인데, 이 대선 후보 심사를 관장하는 조직인 헌법수호위원회마저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의 입김을 크게 받는 구조입니다. 그렇다 보니, 대선 후보로 뽑힐 인물이 누가 되든지 간에, 이란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강경한 대내외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지향ㅣ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지금 이란의 강경파들인 지배 연합이 컨트롤하고 있는 헌법수호위원회에서 후보자들의 자격 심사를 하죠. 그래서 대부분 온건 개혁파는 이 후보 심사 단계에서 다 떨어져요. (이란 입장에서는) '큰 사탄'인 미국, '작은 사탄'인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서, 특히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고 거기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그 주변에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계속 지원하고 육성할 거라는 정책은 변함이 없을 거예요.
모아멘 구다ㅣ한국외대 교수
법적으로 공화주의 국가이지만, 이란에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12명의 위원들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임명하거나 심사합니다. 그리고 이들 위원은 국가 수호자(최고 지도자)가 뽑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모든 카드는 최고 지도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원칙주의자이고 강경주의자이며, 여전히 라이시 대통령처럼 이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을, 강경파가 될 사람을 뽑고 싶어 합니다.

공화국 최고 지도자, 대놓고 '세습'하기 어려운 이유

일각에서는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가 3대 최고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저희에게 자문해 준 중동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2대 세습이라는 것이, '부패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웠다'는 이란의 국가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모즈타바가 아야톨라라는 최고 단계의 이슬람 법학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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