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여사 활동, 외유라고 하면 인도 모욕…정말 창피한 일”

김찬호 기자 2024. 5.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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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회고록 대담자 최종건 교수 인터뷰
지난 5월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진열돼 있다./연합뉴스

[주간경향] ‘암묵지’라는 말이 있다.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됐지만, 문서나 증언 등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지식을 의미한다. 암묵지는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지만, 특히 많이 발견되는 곳은 ‘정부’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소수 인원이 5년 간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을 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힘들게 쌓은 지식이 사라져 버리는 식이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6년 동안 20차례 행정부가 수립됐다. 독재로 인해 행정부가 고스란히 연장된 적도 있었고, 여야가 정권을 번갈아 잡으며 통째로 교체되는 예도 있었다. 그런데 시기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주요 국면에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당시 무엇을 고려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별도로 기록하고, 공개를 명령하지 않는 한 그렇다. 특히 정상 외교 영역은 거의 다 암묵지다.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제대로 의사 표현은 했는지’, ‘협상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등은 대통령 본인만 안다.

이를 일종의 ‘미덕’으로 만든 것은 일부 언론이다. 퇴임한 대통령, 정부가 하는 말은 덮어놓고 ‘정치 개입’, ‘사후 정당화’로 단정한다. 역대 대통령들 역시 과실이 드러날 수 있어서, 정치적 논란이 생길 수 있어서 ‘쉬쉬’했다. 드러내 놓고 “우리 정부의 아쉬움, 한계는 이 부분이었다”고 말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기조가 보편적인 상황에서 지난 5월 18일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출간됐다.

책은 총 655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지난 5년간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며 느낀 아쉬움, 깨달음, 외교전략 제언 등으로 채웠다. 기존 정치권의 회고록과는 문법부터 다르다. “하노이 노딜 직후 (북한과) 번개회담을 제안해보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가 상황을 파악을 제대로 못 해서 실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문 전 대통령이 책에서 담담하게 밝힌 후회다. “그때 이런 전략을 썼다면 어땠을까, 외국 정상과 협상을 한다면 이런 부분은 유의해야 한다”는 식의 조언들도 있다. 정상 외교를 경험한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유독 주목받는 것은 655쪽 중 한 페이지(509쪽)에 딱 네 줄 언급된 영부인의 인도 방문 전말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23일 사설에서 “김 여사 외유 의혹을 다시 떠올린 건 회고록을 낸 문 전 대통령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나머지 654쪽을 채우고 있는 대통령만 알 수 있던 정보에 대한 평가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과의 대담을 책으로 정리한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난 5월 22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 임기 60개월 중 58개월을 함께하며 평화군비통제비서관, 평화기획비서관, 외교부 1차관을 지냈다. 책이 정쟁 대상이 된 상황에 관해 묻자 그는 “문재인 정부를 정당화하자고 낸 책이 아니다. 사실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서 공개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암묵지를 명시지(명시적 지식)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위한 마지막 의무를 기억하고 있었던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을 정리한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5월 22일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변방에서 중심으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첫 회고록이다. 언제,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회고록은 2023년 5월부터 구상한 것이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대통령과 ‘이야기(대담)’를 나누는 형태로 구성하기로 하고, 대담자로 내가 결정됐다. 책 기획 단계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회고록이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이에 평소라면 대통령께 하기 어려운 질문을 가감 없이 넣었다. 또 발언 하나하나를 객관적 자료로 확인해 사실관계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없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이 책은 기획단계부터 언제까지 마감해야 한다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꼬박 1년이 걸려서야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첫 회고록이 ‘외교안보’ 분야가 된 것은 왜인가. 기획의도가 궁금하다.

“외교안보 분야로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었기 때문이다. 집권한 2017년은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국면을 7개월 만인 2018년에 전환했고, 2019년에 다시 좌절을 맛봤다. 이런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후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책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다자외교, 지역외교, 보훈, 국방, 한·일관계까지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며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상황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서가에 꽂아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기록물로 남기려는 의도다. 그래서 후회하는 점, 아쉬운 점까지 대통령에게 세세하게 물었다. 문재인 정부가 마주했던 한계를 솔직하게 밝히고 ‘절치부심’하자는 의미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인가.

“제목은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가 변방에서 중심이 되는 과정을 상세히 밝혀 국민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바람, 자부심을 담았다. 내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국민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 외교안보 문제로 자존심 상해하는 부분들이 있지 않나. 이를 치유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것 같다. 지금의 외교안보 상황을 보라. 과거에 비해 무엇이 더 나아졌나.”

-책에서는 한국 외교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닌 ‘피플파워’ 덕분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어떤 의미인가.

“문재인 정부 시작을 2017년 5월부터라고 생각하는데 외교 측면에선 그 두 달여 전의 일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정권에 항의하는 촛불시위가 있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보궐선거가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두고 ‘탄핵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더라. 대통령 탄핵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상외교가 공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대통령에 따르면 ‘막상 국제무대에 나가보니 외국 정상들이 먼저 다가와 당선 축하와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칭찬하는 말을 쏟아내더라. 그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외교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대담에서도 문 전 대통령은 외교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들 덕을 봤다. 이런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 성과는 국민이 만든 ‘피플파워’ 덕분이라고 한 것이다.”

2021년 6월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다. 정확히 무엇을 추진한 것인가.

“쉽게 설명하면 ‘편중하지 말고, 골고루 하자’는 것이다. 균형외교의 반대어는 편중외교이고, 유사어는 다변화 외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미동맹 중요하다. 우리 외교안보의 근간이다.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도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과만 외교하면 우리가 마주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나. 그렇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중국, 러시아와도 외교 해야 한다. 거기에 국익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은 정치적으로 한·중관계가 사드 문제로 최악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한·미, 한·일 교역을 합친 것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경제가 중국에 편중돼 있으니 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한 ‘신남방 정책’을 추진해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했다. 동시에 경제적·자원적 잠재력을 두루 갖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하는 ‘신북방 정책’도 추진했다. 중동도 마찬가지다.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와 협력을 확대했고, 그 과실이 현재 윤석열 정부 성과로 돌아오는 중이다. 외교는 말 그대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다. 다양한 국가와 관계를 맺어 최대한의 국익을 확보하자는 것이 ‘균형외교’였다.”

“대북정책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9·19 군사합의라는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핀을 만들지 않았나.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균형외교’ 하면 미·중 사이 균형부터 떠올린다. 미국과 멀어지고 중국과 밀착하기 위해 ‘저자세’, ‘굴욕’ 외교를 했다는 것인데.

“친한 사람과만 교제하는 것을 사교라고 한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외교는 사교와는 다르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국가와도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것이 외교다. 문재인 정부 때도 중국이 ‘너무한다’라고 느껴지고, 행보가 불편할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중국과 대화하지 말고 강력하게 반발하겠다’고 하나. 대한민국 경제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과 대립하자’는 말이 시원하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데 경색된 한·중관계로 피해를 볼 중국에 진출한 기업, 교민들은 어떻게 하나. 그들은 우리 국민 아닌가. 다시 2017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 당시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한·미, 한·일 무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많았지만 우리가 흑자를 보고 있었다. 객관적 수치를 무시하고, 중국과는 이제 대화하지 않겠다고 했어야 했나. 근원적으로 중국과의 갈등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말하고 제대로 된 설득도 없이 갑자기 배치해버린 것이 시작 아닌가.”

-대중국 외교에서 ‘성과가 없었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만큼 당시 중국이 한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하고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톈안먼 망루에까지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돌변해서 사드를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국민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지만, 중국 역시 인민들에게 한국의 돌변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 측 관료가 고충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훼방을 놓지 않았다. 한·미가 밀접하게 공조하고 북한도 미국과 대화하고 싶더라도 중국이 발 벗고 나서 가로막았다면 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한·중 간 외교협의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중국 당국에 전달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를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고 평가절하 할 수 있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7년 12월 1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 한 현지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 중 하나인 유탸오와 더우장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이후 해당 장면은 ‘혼밥 논란’을 낳았다. 연합뉴스

-아직도 언론,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 방중 기간 발생한 ‘혼밥 논란’을 굴욕으로 언급한다. 이는 어떻게 된 것인가.

“당시 우리 정부의 주요 고민 중 하나가 중국 인민들 사이에까지 퍼진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었다. 중국 정부가 아닌 중국 인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외교를 통해 이러한 분위기를 완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 전략 중 하나가 ‘한국 대통령이 북경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아침을 먹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아무 식당에나 갑자기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보나. 어느 식당을, 몇 시에 방문할 것인지까지 전부 전략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외교 전략, 목적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비판부터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방문한 식당은 그 후 ‘문재인 대통령 아침 세트’를 판매하고, 대통령이 앉은 좌석도 따로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인상 깊은 행보였다는 의미다. 이를 국내에서 ‘혼밥 논란’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출간 전까지 이에 대해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다. 외교적 목표가 있었고, 이를 위해 개인적 모욕은 기꺼이 감수한 것이다. 역으로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 순방에서 상대국 정상, 주요 인사와의 만남은 주로 오찬(점심식사), 만찬(저녁식사)을 통해서 한다. 일반적으로 조찬은 참모들과 회의 겸 함께 드시거나 혼자 드실 때도 있다. 그러면 여태껏 주요국을 방문해 조찬을 혼자 드신 대통령들은 다 ‘혼밥’이라고 비판받아야 하나. 윤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조찬을 누구와 드셨나. 이를 부각하고, 비판해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고 싶어하는 의도를 알기 때문에 이 장단에 춤을 추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혼밥 논란을 만든 그들에게 창피한 것은 알라고 말하고 싶다. 또 이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미워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 대한민국 외교까지 비하하고, 미워하지는 말라고 전하고 싶다.”

문 전 대통령은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혼밥 논란을 두고 “외교는 상대 국가와 그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것 보다 대중적인 시장을 찾아간다든지 또는 서민들의 식당을 방문해서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행보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고 답했다.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은 우리 정부가 인도 측 요청에 최고의 예우를 한 것이었다. 이것을 외유라고 하면 김 여사에게 초청장을 보낸 모디 총리는 뭐가 되나.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모디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확인하겠다. 책에서 언급된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두고 외유성이란 의혹 제기가 있다.

“외교 방식,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난거리만 찾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사실관계를 나눠서 명확히 설명하겠다. 첫째, 외교 영역에서 영부인, 즉 국가 정상의 배우자는 정상에 준하는 외교의전을 받는다. 둘째, 한 국가 정상의 방문을 요청할 때는 정상을 지목해 처음부터 제안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상대국 정상의 스케줄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보안 문제가 있다. 또 바로 거절할 경우 외교적으로 서로 난감해지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보통 ‘고위층’ 혹은 ‘최고위층’이 방문해주길 바란다라는 식의 외교적 용어를 사용한다. 이상의 배경지식으로 인도 문제를 보자.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국빈 방문했다. 이때 인도 정부가 민속 무용단을 초청해 공연을 했는데 그 내용이 가락국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후 설화를 소재로 한 것이었다. 당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허황후 기념공원 조성계획을 말하면서 문 대통령이나 최고위층의 방문을 요청했다. 이때 이미 대통령 방문이 어렵다면, 고위급 방문에 관한 상호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후 11월, 실제로 기념공원이 개장했고 그때 인도 정부에서 외교 프로토콜에 맞게 ‘High Level Delegation’, 즉 ‘고위층’을 보내 달라고 재차 요청해온다. 우리 인도대사관은 그러한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은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방문이 어려웠다. 문제는 모디 총리로부터 7월에 초청을 받은 바가 있고, 그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 우리도 외교적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인도 측에 비공식적으로 여사가 참석하면 어떻겠냐는 의사를 물었다. 여사를 맞을 수 있는 준비가 되는지에 대한 실무수준의 의사 타진이었다. 보고를 받은 인도총리실에서 ‘고맙다’며 바로 모디 총리 명의로 실제 초청장을 보내왔고, 외교경로를 통해 최상의 의전을 하겠다는 의사도 전해왔다. 원래 외교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외교적 용어 및 협의 프로토콜을 모르다 보니, 마치 여사가 인도를 방문하고 싶었던 것처럼 왜곡해서 논란을 만들고 있다. 인도 정부가 김 여사를 초청했다는 것은 일정만 봐도 금방 드러난다. 모디 총리가 30분간 여사를 접견했고, 실제 행사장에도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했다. 또 트위터(현재 X)에 이틀 연속으로 세 건의 글을 올려 한국, 인도 간 문화적·정신적 교류를 이야기하고 ‘중요한 행사에 한국 영부인이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이러한 활동을 외유라고 하면 인도를 모욕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쪽에서는 고위층이 왜 꼭 김 여사냐고 할 수 있지 않나.

“당시 주인도 한국대사가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도 측이 자꾸 고위층 방문을 요청한다. 그래서 도종환 장관,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참석해 달라고 편지도 썼다’고 말했다. 결국 도 장관은 참석하기로 했지만, 강 장관은 참석이 어려웠다. 총리 역시 국내 정치 일정으로 참석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여사의 인도 방문은 우리 정부가 인도 측 요청에 최고의 예우를 한 것이었다. 이것을 외유라고 하면 김 여사에게 초청장을 보낸 모디 총리는 뭐가 되나. 이런 외교적 결례까지 무릅쓰고 논란을 만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를 정쟁화하는 사람들이 국익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외교가에서 정상과 동일한 의전을 받는 영부인이 참석한 행사를 한국에서 외유라고 하면, 앞으로 어떤 나라가 자국 문화행사에 영부인을 초청하겠나. ‘한국 영부인을 초청하면, 한국에선 놀러 간 것으로 생각한다. 행사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니 초청하지 말자’고 하지 않겠나. 정말 창피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두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다양한 지역외교를 하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반미’라는 인식도 있다. 실제로 미국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나.

“5년 간 참모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정상들의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상대국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라여야 하고, 지도자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아야 했다. 만약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상들 사이에서도 의례적인 대화만 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가의 지도자가 자국 내 평판까지 좋으면 각국 정상이 서로 다가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부분은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 심지어 시진핑 중국 주석까지 문 전 대통령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몇몇 나라 정상은 문 전 대통령에게 단 3분만 시간을 내달라는 예도 있었다. 한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곧 자신들의 순방 성과가 되는 상황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 측에서 퇴임을 앞둔 우리 정부에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다가 한국에 갈 계획인데 문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시점은 이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시점이었다. 실제로 2022년 5월 21일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 통화를 했다. 양국 정상 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미국 현직 대통령이 퇴임한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겠나. 2021년 5월 21일 문재인, 바이든 대통령이 만난 정상회담도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에서 포괄동맹으로 발전한 역사적 회담으로 회자된다.”

-미국과 군사적 측면에서 협력이 약화돼 안보위기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어떤가.

“위기가 정말 있기를 바라면서 하는 주장 아닌가. 몇 가지 객관적 데이터가 있다. 첫째는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전쟁 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 단 1년 만에 북·미 정상을 회담장으로 이끄는 등 평화 국면으로 전환했다. 둘째는 예산이다. 역대 정부 중 문재인 정부처럼 국방예산을 연평균 6.8% 늘리고, 집중적으로 투자한 정부가 있었나. 심지어 복지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지지층 비판을 감수하면서 국방력 강화에 집중했다. 미사일 지침 해제도 마찬가지다. 역대 보수 정부가 안보를 외쳤지만, 그 어떤 정부도 미국에 의해 제한이 걸려 있는 미사일 지침 해제에 나서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이후 한국은 언제든 원하는 사거리, 탄두 중량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북한과 대화는 하되,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부 기조가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안보가 악화했나.”

-대일외교는 어떤가. 한·일관계의 단절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첫째로 일본과 발생한 갈등은 결국, 과거사 문제였다. 특히 강제동원 문제 관련해서는 대법원판결이 있었다. 그렇다면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무시하고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해야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둘째로 우리 정부는 꺼져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불씨를 살리려고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회동을 판문점에서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일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규제를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외교역량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애걸복걸해야 했나. 한 가지 반드시 짚고 싶은 사실은 일본이 수출규제 등의 압박을 공식화하기 전에 문 전 대통령 지시로 한국 기업에 수출규제 품목 등에 대한 알림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나도 처음 알게 됐다. 2018년 12월, 당시 노영민 주중대사가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금지를 검토한다고 보고했고, 2019년 2월에는 당시 문정인 특보가 일본을 방문한 뒤 돌아와 자민당 고위인사에 들었다며 같은 보고를 한다. 이에 대통령이 지시해 우리 기업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대비케 했다. 또 정부 차원에서도 3대 품목 현황을 점검하고 대체수입처도 알아보고 있었다. 대통령이 하루에 받는 정보 보고 양이 엄청나다. 이중 소위 말해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 국정운영 실력이다. 적어도 일본의 수출규제 압박을 극복하는 데는 정책 결정자의 역량이 작동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을 뒤집었다. 차라리 문재인 정부에서 풀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

“일본은 근린국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한국만 일방적으로 굽혀야 하는 것이라면 대체 어떤 한·일 간의 미래를 바라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서럽고 굴욕적인 역사를 다시 반복해야 하는가.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도쿄를 여러 번 찾아가 협상하자고 했다. 일본 측이 거부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만든 한·일관계를 원했다면 우리도 금방 해낼 수 있었다. 대통령과 대담을 진행하며 ‘왜 일본에는 강경하셨느냐’ 물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이 강하게 ‘일본에 강력하게 대응한 것이 아니다’고 답했다. 우리는 원칙대로 한 것이다.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미래를 핑계로 언제까지 피해 생존자를 무시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관계에서 문재인 정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문재인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을 정리한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 5월 22일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 연구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은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럼에도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성과는 분명히 있었다. 9·19 군사합의라는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핀을 만들지 않았나. 북한 군부를 회담장으로 데려와 포괄적인 합의를 했다. 무엇을 양보하겠다는 합의도 아니었다. 비무장지대에 너무 촘촘하게 붙어 있으면 전쟁 위험이 증가하니 조금씩 떨어져 있자는 합의였다. 이를 운용적 군비통제라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없어진 것이다.”

-비핵화 측면에선 분명한 성과가 없지 않나.

“문 전 대통령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정상에 올라가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대 정부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정상 바로 밑 고지에까지는 도달했다. 미국과 북한을 중재해 두 번의 정상회담(싱가포르 회담·하노이 회담)과 한 번의 회동(2019년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정상 회동)을 만들었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번개 회담(2018년 5월 26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 응하기도 했다. ‘왜 최종 결과를 못 만들었냐’고 추궁하기보다 ‘그때 어떤 방식으로 중재를 했느냐’를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다음에는 정상까지 올라갈 것 아닌가.”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를 국제사회에 요청했다는 의혹 제기도 있었다.

“그런 적 없다. 가짜뉴스다.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재 해제를 요청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심지어 문 전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도 제재 해제를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은 제재를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을 정도다. 문 전 대통령은 제재를 우회하거나 비공식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국민에게 알려진 범위를 벗어난 대북 접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을 보면, 남북관계를 잘 관리해도 북·미관계에 따라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과 대화해야 하는 것은 왜인가.

“사실,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봤을 땐 가장 편하다. 국민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고 야당이나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을 일도 없다. 외교관계에 있어서도 미국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세대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지 않나. 대학에 복직하고 ‘동북아 국제안보론’, ‘한반도 비핵화’ 수업을 한다. 정말 미안한 것이 내가 학생 때 배운 내용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 분단 후 70년이 넘도록 한반도 상황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세대는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끊겨 사실상 동북아시아의 섬인 대한민국에서 성장했다. 인천공항을 국경으로 알고 한반도 북부로는 갈 수 없다고 믿고 살았다. 적어도 다음 세대는 우리와 달리 기차를 타고 한반도 남부부터 유럽까지 오가며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끔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한도 북·미관계가 어렵다고 남북관계까지 단절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남북 간 협력을 확장해 나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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