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내부 결속 유도…스포츠의 통치학

KBS 2024. 5. 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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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야외 스포츠 즐기는 분들 많으시죠?

북한도 대중체육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는데요.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체육활동을 즐기는 반면 북한은 국가가 주도해 주민 참여를 독려한다는 겁니다.

북한 주민이라면 한 가지 이상의 체육 종목을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각종 경기대회에도 참가해야 합니다.

'체육열풍' '체육 강국건설' 등의 구호까지 내걸고 체육 선진국 대열 진입을 목표하고 있는 북한.

북한은 왜 이렇게 스포츠에 진심인 것일까요?

<클로즈업 북한>에서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정확하게 굴러간 공에 볼링핀이 쓰러지자 환호성이 터집니다.

볼링핀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는데요.

조금 서툴더라도 체육활동 그 자체가 즐거운 모습입니다.

[평양볼링관 이용객 : "손녀가 자꾸 오자 그래서 따라왔는데 나도 오늘 이 볼링관에서 청춘을 되찾자는 겁니다."]

[평양볼링관 이용객 : "저는 체육 종목들 가운데도 볼링하고 정구를 제일 좋아합니다. 볼링을 한번 하면 온몸이 거뜬해지고 기분이 얼마나 상쾌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생활 체육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한 삶을 도모하는 것은 남과 북 모두 마찬가지.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민들의 체육 활동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지정한 대중 체육활동을 단체로 모여서 하고, 한 가지 이상의 체육 종목을 습득하게끔 한 겁니다.

[김성남/초급직맹위원장 : "공장에서는 명절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직장 작업반별로 축구, 배구, 탁구를 비롯한 다양한 체육 경기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집단 체육 활동을 통해 체력을 향상 시키려는 목적도 있지만 주된 역할은 주민 결속 강화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조선중앙TV /5월 12일 : "여가시간을 이용해서 진행되는 경기들을 통해서 조직력과 단결력을 더욱 강화하고 집단 안에 혁명적 낭만과 열정이 차 넘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의 대중 체육활동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더욱 강조되고 있는데요.

조선체육대학을 나와 체육 과외교사로 일했다는 탈북민은 지금은 체육 실력이 곧 스펙이 되는 시대라고 전합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김정은이 체육을 엄청나게 좋아해요. 그래서 간부가 되려 해도 체육 표준이 있어야 해요. 체육을 만약에 못하잖아요. 그럼 배워서라도 따라가야 하거든요. 군대에 나가면 배구 등의 많은 경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도 대항 경기를 하면 간부들이 참가해야 해요. 거기서 등수를 내고 거기에 맞게 올라가는 게 있어요. 그래서 체육을 많이 중시해요."]

실제 북한에선 분야별로 다양한 체육 경기를 개최하고 경쟁을 부추기기도 하는데요.

중앙기관 관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김광철/직총중앙위원회 부원 : "중앙기관일꾼 체육경기대회-2024는 총 6개 종목으로 진행하는데 이번 경기대회는 성, 중앙기관 정무원들이 대중 체육활동을 활발히 벌려오는 과정에 연마한 높은 체육 기술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해서 어느 팀이 이기겠는가 하는 전망에 대해서 좀처럼 가늠하기 힘듭니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기념해 열린 내각과 국방성 직원들 간 체육경기엔 김정은 위원장과 딸 주애가 참관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학생들도 체육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데요.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특히 평양(김일성)종합대학이랑 김책공대 학생들이 저한테 많이 배웠어요. 배구, 탁구, 농구도 배워서 내가 물어봤거든요. 너희는 체육 하나만 배우면 되지 왜 이것저것 다 배우냐니까 지금 사회에선 체육을 못하면 축에 못 낀다는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이 숙제를 안 내주고 체육 과목을 한가지씩 무조건 배워오라고 했대요. 그 정도로 체육을 알아주거든요."]

비단 대학생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등학생에 해당되는 고급중학교 학생들도 체육 경기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박성욱/중구역 창광고급중학교 : "오늘 우리 동무들과 함께 배구 경기에 선수로 참가해서 경기담도 많이 키웠고 체력을 더 튼튼하게 단련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체육활동을 일상적으로 꾸준히 해서 다방면적인 지식을 소유한 강성조선의 역군으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김정은 시대 강조되고 있는 대중 체육활동에는 정치적 전략이 깔려 있다고 지적합니다.

끊임없는 집단 체육을 통해 협력과 경쟁의 경제 활동을 독려한다는 겁니다.

[허정필/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 "김정은 시대 들어와서 노력한 사람들, 고생한 사람들을 위한 체육 경기대회가 매우 많아요. 예를 들자면 보건 체육 관련해서 체육 경기대회가 있고 공업 관련해서 공업 체육 경기대회가 있고 그리고 그런 체육 경기를 통해서 지역 간에 같이 협력해서 잘 지내 그 매개체는 바로 체육이야 국가에서 크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밑에서 너희들끼리 여러 가지 교류 협력하면서 계속 정보도 교류하고 너희들끼리 자생적으로 잘해라. 큰 타이틀 정도는 우리가 국가에서 지원해 줄게 그런 형식이 과거와 달리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골프, 승마, 스키와 같은 고급 스포츠 종목을 자주 소개하는데 여기에도 대중 체육의 질적 성장 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김은애/려명골프여행사 부원 : "우리 여행사에서는 해마다 골프애호가들과 함께 여기 평양골프장에 자주 찾아오곤 합니다."]

북한 매체는 자국의 골프 애호가들이 평양 골프장을 찾는다고 전하지만 실제론 해외 관광객 유치용 홍보 영상이란 겁니다.

[허정필/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 "철저히 체육 관광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내 체육 스포츠의 질적 성장으로 보기엔 어렵고요. 저도 다양한 북한 이탈주민과 인터뷰해보면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진 돈주도 그런 스포츠는 접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철저히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해서 그 사람들이 관광도 하고 스포츠도 하고 그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서 영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입니다."]

마식령 스키장도 북한이 대중 체육의 보급소로 선전하는 곳인데요.

칠순이 넘은 할머니도 이곳에서 10년 째 스키를 즐기고 있다고 전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할머니. 설마 이 대아봉 정상에서 내려가려고 생각하셨습니까?"]

["네, 오전에 한번 타봤는데 한번 해보겠습니다."]

["춤추면서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장한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스키장을 찾는 건 극히 일부 주민이라는 게 탈북민의 증언입니다.

[최은지/2023년 10월 탈북/가명/음성변조 : "마식령 스키장 이런 데는 돈이 많아야 들어가는 거죠. 생활 수준이 어지간히 중에서 상으로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죠."]

올해 초 러시아 인플루언서인 '빅토리야 크리보쉐예바'가 마식령 스키장을 이용하고 극찬했던 점도 북한의 체육 관광화 전략에 힘이 실리는 부분입니다.

[빅토리야 크리보쉐예바 : "당신은 가장 높은 지점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북한은 대중체육과 함께 엘리트 체육도 강조합니다.

얼마 전 2024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북한 U-17 여자 축구 선수들.

북한 당국은 이들의 귀국에 맞춰 공항에서부터 대대적인 환영식을 열었습니다.

[전일청/북한 여자 축구 선수 : "팀 안의 모든 선수, 감독 동지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경기장을 달렸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한마음으로 안아온 우승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4년 만에 새로운 체육 기록영화를 제작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제8차 노동당대회에서 체육 선진국 대열 진입을 목표로 제시한 만큼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물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종합순위 10위에 오르는 등 눈에 띄는 성과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성적과는 반대로 북한 선수단의 국제적 품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일례로 북한 선수들은 국제 경기에 나갈 때 입을 단체복조차 지원받을 수 없는데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본격화된 대북제재에서 스포츠 장비도 사치품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허정필/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 : "(국제 스포츠 기업이) 일정 부분 투자 비용을 주는 거죠. 투자 비용을 받아서 운동선수들에게 좋은 기자재를 사준다든지 재투자를 해주는 거죠. 제재가 심하지 않을 때는 FILA에서도 후원을 해줬고 중국 체육 스포츠 브랜드도 후원을 해줬었고 후원을 꾸준히 해줬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대북 제재 때문에 아무런 스폰서가 붙지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실제 북한 선수들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국제대회에서 자국 상표 옷을 입기 시작했는데요.

코로나19 이후 첫 올림픽 무대 복귀인 파리올림픽 역시 국제 기업들의 후원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체육을 통해 주민 자력갱생을 도모하고 관광객 유치와 국제 위상 제고까지 꾀하고 있는 북한.

정치, 전략으로 활용되는 북한의 체육은 공정과 존중, 평화와 친선을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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