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안 먹어유”… 시골마을에 드리운 식품사막화

윤교근 2024. 5. 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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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가두 무거워서 먹을 거 못 사와유”

지난 22일 충북 괴산군의 한 마을 어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3명의 할머니를 만났다. “반찬은 어떻게 해 드시냐?”고 묻자 유모(93) 할머니는 “애들이 사서 오면 그것대로 먹고 아니면 집에 있는 거 먹으면 된다”라며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장모(90) 할머니는 “행정구역은 괴산군인데 거리가 가까운 (음성군) 읍성읍 장에서 다녀온다”며 “시내버스 타고 장에 가서 무거운 것을 사서 가지고 올 수도 없다”고 전했다. 또 “애초부터 우리 마을에는 가게 없었다”며 “차량으로 다니는 장사꾼도 몇 해 전부터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충북 괴산군의회 김주성 의원. 괴산군의회 제공
◆농촌지역 ‘식품 사막’ 확산

식재료 등 식료품을 구하기 힘든 지역 또는 사회 문제를 ‘식품 사막’이라 부른다.

중소도시만 해도 편의점 등 식료품점이 곳곳에 있으나 시골 마을은 그렇지 못한 곳이 많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농림어업총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 행정리 3만 7563곳 가운데 식료품 소매점이 하나도 없는 마을이 2만 769곳이라고 발표했다.

전국 행정리의 식품 사막화 비율이 73.5%에 달한다.

특히 괴산군은 전체 279곳 행정리 가운데 247곳 마을에서 식료품을 살 만한 점포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88.5%로 전국 비율보다 10%를 넘어선 수치다.

괴산군의회 제329회 임시회 기간인 24일 김주성 군의원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식품 사막 대책을 촉구했다.

그는 “식품 사막 발생 원인으로 농촌지역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식료품 상점의 운영이 어려워진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농촌지역 저소득 주민들은 안전한 식품과 균형 있는 영양소 섭취를 위한 신선식품 구매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식료품은 기존에 불충분의 문제로 제한해 충분한 양의 생산과 공급 체계 중심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식료품 접근성이 강조되고 있다.

자가용이 늘고 대중교통이 줄면서 농어촌 어르신들의 식품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농촌지역 인구가 급격히 줄고 고령화 등으로 시골 마을은 대중교통 운행이 감소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부르면 달려간다”는 콜버스로 불편을 덜어주고 있다.

여기에 온라인 소비도 농촌지역 식품 사막화를 부추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온라인으로 소비가 늘면서 농촌 식료품점의 경영은 악화한다.

인구 밀도 낮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인구 소멸 지역의 농촌은 이런 현상이 심화할 전망이다.

김 의원은 “신선한 식품을 구하기 어려운 주민들은 심각한 영양 불균형과 건강 악화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며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활 불편은 고령 주민들의 사회적 고립을 더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골에서는 텃밭에서 상추나 파 등 일상에서 주로 먹는 식재료를 구한다.

고령층이 텃밭을 가꾸는 일도 쉽지 않고 다양한 채소를 재배할 수 없고 과일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충북 괴산군의회에서 제329회 임시회가 열리고 있다. 괴산군의회 제공
◆식품 사막은 건강 등 사회적 비용 초래

이런 신선식품 접근성은 공중보건의 문제로도 꼽힌다.

신선식품 접근성이 낮아지면 보관이 쉬운 가공식품 등 영양이 부족한 고열량 식품 소비가 는다.

이는 비만이나 심혈관질환, 2형 당뇨병 등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하고 식량 불안이 높은 고연령 저소득 가구의 건강은 더 나빠지는 등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미국의 경우 거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반경 800m 이내에서 식품 소매점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을 식품 사막으로 규정한다.

미국 농무부는 식료품 사막 거주 주민을 위한 영양 관리 프로그램을 신행하고 신규 식품점 창업자에게 세금을 지원하는 등 정부에서 다양한 방안을 실행한다.

또 일본은 거주지 500m 이내에 상점이 없는 노인을 ‘장보기 약자’ 또는 ‘쇼핑 난민’으로 정의한다.

경기 포천시와 전북 정읍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식료품 트럭으로 이동형 상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식품 사막은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한 농촌 주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정부와 괴산군은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식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고 고령인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괴산=윤교근 기자 sege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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