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⑨ 서민음식 국수 명품 반열에 올린 '강식품'

김형우 2024. 5. 2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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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 이으며 소면 제조 '한 우물'…미국·호주 등 판로 확대
'수연소면' 기술 익혀 日 역수출…최우국 대표 "장인정신으로 승부"

[※ 편집자 주 =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 곳곳에서 수출 일꾼으로 우뚝 선 충북의 강소기업들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포기를 모르는 도전정신이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연합뉴스는 경영·기술 혁신과 사회적 책임감으로 충북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강소기업을 소개하는 기사 10편을 격주로 송고합니다.]

(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충북 음성에 있는 강식품의 소면은 'VIP 국수'로 불린다.

최우국 대표와 최아영 팀장 [김형우 촬영]

대기업과 금융계 등이 매년 명절 전 중요 고객들을 위해 이 업체가 생산한 소면을 구입, 선물로 돌린다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서 '귀빈들이 먹는 국수'라는 별칭이 생긴 것.

국내 모 대기업 창업주가 강식품의 국수를 먹고 크게 감탄했다는 일화는 업계에 두루 회자한다.

강식품은 직원 23명에 연매출은 30억원 정도의 중소기업이지만, 창업 이후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수연소면'만을 고수하며 서민음식인 국수를 명품 반열에 올려놨다.

이 기업의 힘은 '장인정신'에서 나온다.

강희탁 회장 [강식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창업주인 강희탁 회장이 소면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제조법을 배워온 과정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해군 첩보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양손을 잃은 강 회장.

그는 여섯 딸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성공은 쉽사리 그의 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견문을 넓히려고 찾은 일본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1970년 일본의 한 수연소면 공장에서 생산하는 탄탄한 면발에 매료됐다.

강 회장의 사위인 최우국 대표는 "손(手)으로 늘였다(延)는 의미의 수연소면은 고대 동아시아의 전통 면인데, 이때 당시 일본만 이 소면을 만들고 있었다"며 "이에 매료된 장인이 현지에서 1년간 제조기술을 배워와 강식품이 긴 여정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수를 끼고 제조 과정을 꼼꼼히 배우는 강 회장의 열의에 감복한 일본인들은 수연소면 제조비법을 꼼꼼히 알려줬다.

강식품의 생산공정 [강식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강 회장은 1975년 강식품의 전신인 '대화실업'을 경남 양산에 차려 제품을 생산했고, 품질을 인정받아 소면의 본고장인 일본으로 전량 역수출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1986년 충북 음성으로 둥지를 확장 이전했다.

현재 기업 경영을 맡고 있는 최 대표가 국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맘때다.

최 대표는 "동아대에서 국제무역을 공부했고, 국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지금의 아내(강 회장의 넷째딸)와 교제하면서 장인에게 잘 보이고자 외국바이어 통역을 도운 게 인연이 돼 국수와 인생을 함께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 회장에게 최 대표는 사위보다 제자에 가까웠다.

10년 이상 장인과 동고동락하며 반죽부터 압축, 숙성 등 12단계에 걸친 모든 공정을 익혔다.

최 대표는 "면 한계치의 탄력을 끌어내기 위해 당겨서 늘이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며 "핵심은 자연 발효 숙성인데 적정한 실내 온도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강식품의 생산공정 [강식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장인을 따라 생산현장을 둘러보느라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2002년 강 회장을 대신해 본격적으로 기업을 이끈 최 대표는 강 식품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수연소면을 고급화한 브랜드 '면가원'을 개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내실 다지기에도 힘썼다.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수성이 높아지는 시장 추세를 읽고 2010년 국내 건면류 최초로 식품안전관리인증(해썹·HACCP)을 받기도 했다.

명품을 찾는 충성 고객들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강식품은 미국과 호주, 유럽, 중국에 매년 10만달러 상당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최 대표의 딸인 아영씨가 2011년부터 팀장으로 가세하면서 3대가 국수 만드는 일에 힘쓰고 있다.

최 팀장은 "크면서 매일 국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크면 당연히 가업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국수 공장 딸이 다른 곳을 갈 수 있겠느냐"고 미소를 지었다.

최 대표는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정성을 담아 좋은 품질의 국수를 만든다는 원칙은 변함없다"며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업의 명맥을 묵묵히 이으면서 소비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제품 생산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vodca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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