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지키다 이젠 아이 지키는 '배움터지킴이' [강승우의 땀터뷰]

강승우 2024. 5. 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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⓶두 번째 사연의 주인공 한길수씨
‘땀터뷰’는 우리 동네 소시민들이 흘리는 땀방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그들 일상 속으로 들어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입니다. 모두 공감하는 재미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언제나 푸근하게 볼 수 있는 옆집 아저씨, 단골가게 이모 같은 사람들이 사연의 주인공들입니다. 주인공이 되고픈 분들은 주저 말고 연락주세요. 고민은 기사만 늦출 뿐입니다. [편집자주]
 
◆땀터뷰 들어가기 전…프롤로그
 
기자 왈 “고맙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
 
땀터뷰의 첫 번째 사연이었던 ‘우리 동네 구두닦이 아저씨’ 이야기가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기사를 보고 연락한 이들 모두가 “재밌게 잘 봤다”, “구두닦이 아저씨가 정말 멋지다”며 기자와 구두닦이 아저씨를 응원했습니다.
 
독자들의 이런 사랑과 칭찬은 기자도 춤을 추게 합니다 >.<v. 큰 힘이 됐습니다. 혹시나 아직 구두닦이 아저씨 사연을 못 보신 분들은 뒤로 가기 눌러서 꼭 보고 오세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503509047)
 
과분한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가수 싸이도 그랬다지요. ‘강남스타일’로 초대박을 치고 난 뒤 새 앨범을 만들기가 겁이 난다고…지금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기사를 써서 독자들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고 싶어 또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은 우리 동네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을 책임지는 배움터지킴이 한길수(70)씨입니다.
 
독자들께 이실직고하자면 이번 사연도 제 사심(私心) 같은 사심(思心)이 가득합니다.
 
궁금하시죠? 그럼 오늘도 제 이야기 속으로 한번 빠져보실까요?
 
창원 용남초등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하는 한길수씨가 등교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죄송합니다.” 그는 언론사 인터뷰 보다 아이들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와 인사를 나누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짧은 순간에 내 마음 속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성난 바다 마냥 요동치고 있었다.

당연히 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설득했다. 설득해야만 했다.

지난 몇 년을 우리 아이 등교할 때마다 쭉 지켜보면서 이 어르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엔 항상 그가 있었다. 그리곤 “안녕하세요~여러분” 하며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나한테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르신의 인사를 받은 손주 같은 아이들은 이내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숙이며 씩씩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용~”하고 대답한다.

인심 후한 시골 동네에서나 볼법한 광경을 우리 동네에서 매일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지.

창원 용남초등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하는 한길수씨가 등교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배움터지킴이 할아버지, 인자함과 온화함 뒤에 대반전

삼고초려 끝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데 일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로 놀라웠다. 깊게 패인 주름에 온화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는 그가 예전에는 직업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미소에 속아 ‘전직 교사일 게 분명하다’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집에 누가 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선택한 길이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병이 아닌 장교가 되기로 결심하고 육군 3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77년(기자 태어나기 전) 소위로 임관한 그는 보안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천성을 숨길 수가 없는 게 군 복무 중에도 틈만 나면 봉사활동도 해왔다.

“이웃과 함께 하는 공존의 삶”이 자신의 인생철학이라고 목에 핏대를 높이며 말했다.

군인의 길을 계속 가기엔 현실적인 벽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결국 소령으로 20년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은 그는 군생활 특기를 살려 한 대기업의 보안관리 업무를 맡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수시로 복지시설을 찾아가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공허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 공허함의 정체도 궁금했다.

오랜 시간 생각을 정리한 끝에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됐다.

그는 만학도로 대학에 들어가 나이 오십이 됐을 무렵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을 동시에 땄다.

적지 않은 나이에 쉽지 않은 공부를 왜 했냐는 질문에 그는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이번에도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창원 용남초등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하는 한길수씨가 학교 정문에 있는 배움터지킴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배움터지킴이 하며 아이들 섬기는 마음 배워

회사를 퇴직하면서 편한 노년 생활을 즐길 줄 알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학교 배움터지킴이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는 “유레카”라고 외쳤다.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던 것이다.

처음 배움터지킴이를 했던 학교와 집은 차를 타고 가도 30분 정도 거리로 꽤 먼 곳이었다.

초반에는 힘들면 중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이게 웬 일? 피곤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기운이 펄펄 넘쳤다.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이쯤 되니 물리적 거리는 그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반년, 1년…그렇게 배움터지킴이로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7년이나 흘렀다.

배움터지킴이로 하는 일이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할 때 차가 오는지 살펴주고, 인사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며 청소하기, 시간 날 때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기, 툭 터놓고 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차가 오는지 (관심을 가지며) 살펴주고, (반갑게 먼저) 인사하고, (우리 집 마당 쓸 듯) 동네 한 바퀴 돌며 청소하기, (사랑하는 손주랑 놀 듯)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그에게도 잠깐의 시련이 닥쳤는데, 교육 정책이 바뀌면서 더는 이 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른 일을 구하자니 이미 아이들과 오래도록 나눈 교감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마침 지금 학교(용남초)에서 배움터지킴이를 구했고, 7년의 경험을 살린 덕분에 배움터지킴이를 계속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 배움터지킴이 10년차다. 예나 지금이나 배움터지킴이로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전에 없던 낙이 생겼다고 한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 쓴 감사 편지를 건네준다는 것이었다.

창원 용남초등학교에서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하는 한길수씨가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에 아이들로부터 받은 감사 편지.
올해도 꽤나 받았다며 서랍 속에 모아 놓은 아이들 편지를 수삽하게 꺼내며 자랑했다.

그 중에는 이미 성인으로 훌쩍 큰 친구들이 옛 생각이 나 고마워하며 쓴 편지도 있었다.

“비결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바로 아이들을 섬기는 마음입니다…” 라고.

이 말을 듣고 나니 왜 그가 항상 아이들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했는지, 살갑게 안부를 물었는지, 따듯한 관심을 줬는지 알 것 같았다.

내년이면 이 학교에서 그의 배움터지킴이 역할도 끝이 난다. 어쩌면 배움터지킴이를 영영 그만 둘 수도, 아니면 다른 학교에서 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가 더는 이 할아버지를 못 보는 게 아쉽지만 다른 아이들이 몸소 실천하는 할아버지의 배려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빠가 배움터지킴이 할아버지 기사를 쓴다고 하니 우리 아이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오늘은 우리 아이 인사로 끝을 맺어야겠다.

“배움터지킴이 할아버지, 항상 우리들 안전을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창원=글·사진 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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