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팬텀②]'하늘의 도깨비' 소련 군용기 쫓고 北 간첩선 격침 일조

박응진 기자 2024. 5.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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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체인저' 단번에 北 공군력 압도…팬텀 위용에 北 항공기 못떠
최대 무장량 7.3톤 달하고 '뽀빠이 미사일' 오차범위는 1m 이내
AGM-142 팝아이(Popeye) 공대지미사일이 F-4E '팬텀' 전투기에서 발사되고 있는 모습. (공군 제공) 2024.4.18/뉴스1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1969년 국내에 처음 도입돼 '하늘의 도깨비'로 불린 F-4D '팬텀'(Phantom)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였다. F-4D의 도입으로 우리 공군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면서 단번에 북한의 공군력을 압도하게 됐다.

F-4는 7.3톤에 달하는 강력한 무장 능력과 고성능 레이더 및 항법장치 등을 갖춘 다목적·전천후 항공기로, 1994년 KF-16 전투기가 전력화되기 전까지 우리 공군을 대표하는 주력 전투기로서 다양한 작전에 투입됐다.

북한 공군은 1966년부터 마하 2급의 미그-21 피시베드 전투기를 도입했으며, 1969년 4월 15일 동해상에서 주일 미 해군 정찰기 EC-121M을 격추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주한 미 공군의 전력개편용 F-4D를 우리 공군에 먼저 공급하게 됐다.

이후 북한 공군은 단기간에 미그-21 전투기를 대규모로 확보하기가 여의치 않자, 1972년부터 1978년까지 중국산 미그-19인 J(젠)-6 전투기 170대를 도입해 우리 공군 전력에 대응했다. 1985~86년 옛 소련이 도입한 미그-23 56대도 팬텀 대응용 전투기였다.

우리 공군의 도입 당시 팬텀은 지금의 F-35 스텔스 전투기와 비견될 수 있는 미국 첨단 항공 기술의 집약체였다. 전장 19.17m, 기폭 11.76m인 F-4는 최대 속도 마하 2.27(시속 2803㎞)과 최대 항속거리 3180㎞를 자랑한다.

팬텀은 우리나라에선 하늘의 도깨비로 불렸다. 기체의 수평 꼬리 날개 사이로 2개의 엔진이 내뿜는 붉은 화염이 도깨비 얼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이 공포의 대상으로 여길 만큼 무장능력이 막강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1998년 2월 17일 F-4D '팬텀' 전투기가 동해 상공에 출연한 러시아 IL-20 정찰기를 식별해 차단하는 모습. (공군 제공) 2024.5.12/뉴스1

전천후 전폭기인 팬텀은 F-15 전투기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복좌형(2인승) 전투기였다. 레이더 미사일을 운용하기 위해 무기통제사로 불린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개량형인 F-4E엔 기체 내장형 기관포가 장착되고, 성능이 향상된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비, 개량된 엔진 등이 적용됐다. 또한, 일부 기체는 일명 '뽀빠이 미사일'로 불리는 공대지미사일 AGM-142 '팝아이'(Pop-eye)를 장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되면서 F-4D를 넘어서는 임무수행능력을 발휘했다.

F-4E는 AGM-142 뿐만 아니라 AGM-65D '매버릭', MK-82 500파운드 공대지폭탄 등 우리 공군이 사용하는 20개의 탄종을 장착할 수 있다. MK-82의 경우 최대 24발을 장착할 수 있다.

F-4E의 대표적 무장인 AGM-142는 2002년 우리 공군에 처음 도입됐다. AGM-84H 슬램이알(SLAM-ER) 공대지미사일이 2007년 실전 배치되기 전까진 원거리에서 북한 평양의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무기였다. 우리 공군에서 AGM-142를 발사할 수 있는 전투기는 F-4E가 유일하다. AGM-142가 뽀빠이 미사일로 불리는 건 영어 철자가 똑같기 때문이다.

AGM-142는 사거리는 100㎞, 오차범위는 1m 이내라, 특히 북한 지도부가 두려워하는 미사일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표적으로부터 5㎞ 떨어진 지점부턴 조종사가 직접 미사일의 방향을 조절해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 1.6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는 폭파력도 가졌다.

팬텀이 뜨면 그 위용에 짓눌려 북한이 아예 항공기를 띄우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팬텀이 한반도에선 '게임 체인저'였던 셈이다.

지난 1983년 2월 25일 공군 F-4E '팬텀' 전투기가 서해 연평도 상공을 통해 귀순한 MiG-19기를 안전하게 유도하는 모습. (공군 제공) 2024.5.12/뉴스1

F-4E는 지난 4월 서해 직도사격장에서 AGM-142의 마지막 실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팬텀은 냉전시대에 동해안에서 TU-16 폭격기(1983년)를, TU-95 폭격기와 핵잠수함(1984년) 등 우리 영공·영해를 침범한 구(舊) 소련 전력을 식별·차단하며 활약했다. 냉전시대 이후인 1998년에도 우리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IL-20 정찰기에 대한 전술조치를 실시했다.

팬텀은 동해뿐만 아니라 서해에서도 뛰어난 작전 수행능력을 보여줬다. 1971년 소흑산도(현재 가거도)에 출현한 간첩선을 격침하는 작전에 F-5 전투기 및 해군 전력과 함께 투입됐고, 1983년엔 북한 이웅평 대위가 미그-19를 몰고 서해 연평도 상공으로 귀순했을 때 퇴로차단과 초계비행 임무를 통해 귀순 유도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1985년 부산 대간첩선 작전에도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이후 팬텀은 공군 주력 전투기 자리를 (K)F-16에, '대북 게임 체인저'란 칭호는 F-35A에 각각 물려줬다.

한편, 현재 F-16을 운용하며 우리 공군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미 제8전투비행단은 1960년대엔 태국에 주둔하며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다. 당시 로빈 울즈 대령이 이끈 미 8비의 팬텀은 미그-21을 수없이 격추시켜 '미그기 킬러'로 불렸다.

이처럼 입증된 실전능력은 팬텀이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 기종이 된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1990년대 초 보잉에 합병)가 개발한 팬텀은 1981년까지 총 5200여 대가 생산됐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독일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수출됐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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