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초상화’는 왜 이제야 선대와 나란히 걸렸나? [뒷北뉴스]

유호윤 2024. 5.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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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북한 관련 소식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는 [뒷北뉴스]를 연재합니다. 한주 가장 화제가 됐던 북한 관련 소식을 '앞면'이 아닌 '뒷면', 즉 이면까지 들여다 봄으로써 북한발 보도의 숨은 의도를 짚고, 쏟아지는 북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 "장군님 초상을 어떻게 비에 젖게 놔둬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습니다. 북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응원단은 다양한 응원 도구와 화려한 율동으로 선수단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기가 아닌 북한 응원단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들었는데, 전체 경기장 입장권 예매율은 30%대였지만 북한팀 경기는 거의 매진됐습니다.

대회가 한창이던 2003년 8월 28일, 특이한 사건 하나가 벌어졌습니다.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에서 응원을 마치고 대구로 돌아가던 북한 응원단원들이 다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격양된 표정의 단원들은 차에서 내려 도로를 내달렸고, 한 현수막 앞에 멈춰 섰습니다. 한 지역 단체가 북한 선수단 격려를 위해 걸어 놓은 현수막이었는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한쪽에 있었습니다.

2003년 8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현장 인근


2003년 8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현장 인근


단원들은 서둘러 현수막을 내렸는데 그 이유가 황당했습니다. 현수막 사진 속 '장군님'이 찌그려져 있다는 거였습니다. 또 어제오늘 비가 왔는데 '장군님' 사진을 비에 젖게 내버려 뒀냐며 울먹이며 항의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북한 응원단을 같은 동포로 반겼던 남한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2003년 8월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현장 인근


해당 사건은 김씨 일가 초상(肖像)이 북한에서 어떤 의미인지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북한은 체제 유지의 기반인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수십년간 다방면으로 진행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김씨 일가 초상을 공공기관은 물론 가가 호호 걸어두고 주민들에게 수시로 우러러보도록 한 것입니다. 이 같은 행태는 1960년대 각 가정에 '김일성 초상화'를 보급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북한의 초상화 관리 규정은 매우 엄격합니다. 빛이 잘 드는 벽면에 사람 키보다 높게 거는 게 원칙입니다. 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깨끗한 천으로 청소해야 합니다. 이렇게 김씨 일가 초상을 신성시하다 보니 홍수가 나거나 집에 불이 났을 때 목숨을 바쳐 초상화를 구했다는 '광신적 행동'이 북한에선 '영웅적 일화'로 칭송받기도 합니다.

■ 선대 옆에 나란히 걸린 '김정은 초상화' … 김정일보다 훨씬 늦어

김씨 일가 초상 배치에 최근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준공식 참석한 사진을 보도했는데, 혁명사적관 외벽에 김정은 위원장의 초상화가 김일성 주석·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초상화와 나란히 배치된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김정은 초상화가 선대 지도자와 나란히 걸린 모습이 북한 매체에 포착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울러 학교 교실 칠판 위에도 김씨 일가 3명의 초상화는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자신이 선대 수령들과 동등한 반열에 올랐음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혁명사적관 외벽에 걸린 3대의 초상화 위엔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목숨으로 옹호 보위하자"라는, 김정은을 단순한 지도자를 넘어 정치 사상적 리더로 추앙하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지난 21일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지난 21일 평양 금수산지구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그런데 김정은이 선대와 초상화를 나란히 건 시기는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훨씬 늦었습니다.

2011년 탈북한 최설 북한학 박사는 '김정일 초상화'는 김정일이 집권하기도 전인 1974년부터 아버지 김일성 초상화 옆에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1974년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정된 해이자 김 씨 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조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반면 김정은은 집권한 지 10년이 넘어서야 자신의 초상화를 선대와 나란히 세웠습니다. 아버지 김정일과 비교하면 매우 늦은 겁니다. 김정은이 권력 장악을 서둘러 끝냈음에도 그동안 선대와 동등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본격 집권한 2012년부터 주민들에게 자신이 어떤 인물인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리고,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면서 자신의 성과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이 워낙 튼튼하고 강력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후계 구도를 밟았지만, 김정은은 후계자로 낙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해 후계자로의 입지를 다져갈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20대 지도자를 바로 우상화 하는 게 주민들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 본격화된 '김정은 우상화' … 효과는 '글쎄'

김정은 우상화는 최근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에 충성 선서 행사를 개최했고, 본인을 '친근한 어버이'로 찬양하는 노래까지 발표했습니다. 아직까지 각 가정에 자신의 초상화를 배급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곧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북한의 '김정은 우상화'는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최설 북한학 박사는 "요즘엔 일반적으로 김씨 일가 초상화를 닦아야 한다 이런 인식도 없어졌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발길이 닿는 곳에 전부 장마당이 들어섰기 때문에 초상화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고 내가 번 돈이 나를 먹여 살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수령이 달러에 밀려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의 생산가능 인구들은 기본적으로 시장 중심의 생활을 영유하는 세대이고 국가의 의존도가 낮다"며 "이들이 과거처럼 초상화를 사실상 거의 실물적으로 존재하는 지도차처럼 여기는 그런 방식의 추앙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배급 체제가 무너져 국민을 먹여 살리지도 못 하는 데다, 최근 환율 급등과 물가 불안으로 북한 내부 경제까지 어려워지면서 국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긴 한층 더 어려워진 것이 지금 북한의 현 주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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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윤 기자 (l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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