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대생 또 맨 앞에 세워…의료계·정부 반성해야"

강승지 기자 2024. 5.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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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전 고대안암병원장 인터뷰…"지속 가능한 미래 의료 논할 때"
"정부, 의료계 납득 수준 증원 제시했어야…의료계, 현실 안주"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학교실 교수(박종훈 교수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 한 달 전, 의료계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의한 적 있어요. 또 한 번 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이때 의대생과 전공의를 앞세우지 말아달라고요. 결론적으로 의대생과 전공의가 맨 앞에 서는 일이 또 벌어졌죠. 안 좋은 선례가 됐어요. 의료계와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해요."

내년도 의대정원을 1509명 늘리기로 한 정부 계획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의정 갈등이 더욱 악화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전공의 복귀가 사태 해결의 시작이라며 의료계를 압박하고 있고, 의료계는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올 길을 막아버렸다며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작금의 답답한 상황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자 뉴스1이 의료계 원로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학교실 교수(60)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지속 가능한 미래 의료를 논의할 시점이 됐다. (의료계와 정부 모두) 단기간에 결실을 보려고 하지 말고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며 지혜를 모을 때"라고 언급했다.

박 교수는 한국원자력의학원장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장,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장, 대한골연부조직이식학회장 등을 역임한 근골격계 종양학 권위자다.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로서 뼈에 발생하는 암인 '골육종' 환자를 돌보고 있다.

2020년 의대증원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고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날 당시, 고려대 안암병원장으로 사태를 수습한 적도 있다. 지난해 9월 15명의 의료계 인사와 '건강한 미래와 지속 가능한 의료환경을 위한 포럼'(건미포럼)을 만들어 현재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박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료계도 문재인 정부 때 곤욕을 겪어 400~500명의 증원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면서 "적정 의사 수 문제를 포함해 의료정책을 되돌아볼 계기를 정부가 '절대 바꿀 수 없는 2000명'으로 강조해 전공의들의 복귀 여지도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병원장을 지낸 박 교수는 "(당시에) 환자도 많고 경영수익이 높을 때인데도 무너지겠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확립된 건강보험의 저보험료, 저수가, 저급여가 의료 공급자의 박리다매와 의료 이용자의 남용을 불러왔다"며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10년 걸릴 걸로 봤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죽는다. 정부는 지속 가능한 의료의 청사진을 그리지 않았다"면서 "현상만 보고 얘기하고 있다. 지역의료가 정말 무너졌는지, 지역의 환자가 지역의료를 믿지 않는 건지 따져볼 때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진단과 처방 자체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가 부족한지 따져야 한다. '배가 아픈데 우리 동네 내과의사도 1명도 없다'라면 지역 필수의료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내 '군' 단위에도 의사는 다 있다"며 "저빈도 중증 질환을 치료 의사가 적다는 일부 사례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정부의 '의료개혁 완수' 광고가 송출되고 있다. 2024.3.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박 교수는 "지역 의료기관을 외면하는 지역민의 이용 행태도 전환하는 한편, 정부는 '2000명' 고수보다는 증원하되 의료계가 납득할 수준의 증원을 제시했어야 한다"며 "전공의들은 원점 재논의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사태 해결은 이 방법 뿐"이라고 제언했다.

일부 의료계 원로들이 '정부도, 의료계도 조금씩 양보해 대안을 찾자'고 당부하는 점에 대해 그는 "공허하다. 정부도 2000명을 고수하는데 의료계가 어떻게 양보할까"라고 반문했다. 또 정치권을 겨냥해 "유령공항 만들어 놓는 듯, 지역 의료기관을 외면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의료계 역시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에 지속 가능한 의료 정책을 먼저 제안해 본 적 있는지 따져보라는 취지다. 그는 "매번 현실에 안주했고 국민에게 의료계의 고민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의료계가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에 가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와 의사는 국민 신뢰 없이 존재하기 어렵다"며 "맨 앞에서 이런 고민을 할 사람이 전공의는 아니었다. 기성세대의 선배 의사들, 대한의사협회에서 해결할 문제를 전공의들이 총대를 맨 게 아쉽다. 이건 의료계의 분명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 리더들에게 '의대생과 전공의를 앞세우지 말자'고 부탁했으나 일이 또 벌어졌다. 굉장히 안 좋은 관례가 됐다"며 "정부와 의사들 간 문제에 중증 환자가 불이익을 겪고 있어 의료계도 반성할 때"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정부는) 2000명 못 박으며 의료계를 코너로 몰지 말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의료를 논의할 때인 건 맞다"며 "단기간 결실을 보려 하지 말고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고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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