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아시아의 금융허브, 홍콩은 되살아날 수 있을까

민서연 기자 2024. 5.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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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향력 거세진 홍콩, 美中갈등에 사업매력 감소
기업들의 엑소더스, 자본 대거 유출에 이민자도 속출
암호화폐 허브 선언하며 경기 부양에 집중

세계 자유무역 허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금융부터 산업, 문화에 이르기까지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꼽혔다. 중국의 개혁 이후 1970년대 본격적으로 금융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해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홍콩은 중화권에 속해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외환거래와 유연한 노동시장, 투자를 끌어들이는 최소한의 규제와 낮은 세율, 외국인 친화적인 환경에 전 세계 큰 손들이 몰려들면서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금의 홍콩은 수년째 인구 및 자본 유출, 증가하는 이민율과 싸우고 있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홍콩을 떠나 중국 본토로 직접 진출하거나 홍콩의 경쟁자인 싱가포르에 아시아 허브를 세우고, 중국 주요 기업 다수가 상장된 홍콩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 있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던 홍콩이 하락세를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홍콩은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홍콩의 마리나베이 샌즈 야경. /연합뉴스

◇국가보안법 통과에 혜택 주던 정책법도 폐지...홍콩은 이제 ‘또다른 중국’?

홍콩의 인구는 1961년 공식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증가해 오다가 2019년 6월 75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 조금씩 주춤하던 인구는 지난해까지 내리막세를 걸었고 낙폭도 커졌다. 감소 추이를 보면 ▲2020년 748만 명 ▲2021년 741만 명 ▲2022년 6월엔 729만 명으로 줄어들었는데, 2년 만에 홍콩 전체 인구의 2.5%가 줄어든 셈이다. 특히 지난해 감소 인원 12만 명 중 사망 등 자연 감소가 아닌 자유 의지로 홍콩을 떠난 이들이 11만 명에 달했다.

홍콩의 추락에는 중국의 개입과 홍콩판 국가보안법 ‘기본법 제23조’의 통과 영향이 크다. 이 법은 홍콩이 반역·내란 등에 대해 최고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는데, 2020년부터 중국이 홍콩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데 이어 국가보안법까지 통과하면서 자유로운 무역 허브로서의 기상이 흐려진 것이다.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달리 경제 자유 구역으로서 관세·투자·무역·비자 발급 등을 특별 대우하는 미국의 ‘홍콩정책법’ 폐지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중국이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1992년부터 실시해온 홍콩의 자유 무역 지대로서의 지위를 박탈했다.

미중 갈등에 전세계 상업용 부동산을 위협하는 미국발(發) 고금리 장기화가 맞물리면서 홍콩의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에 빠졌다. 홍콩 도심을 빽빽하게 채운 초고층 빌딩엔 공실이 넘치고 주택 가격도 급락했다. 투자 수요는 한국과 베트남, 싱가포르 등으로 옮겨갔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완공을 앞둔 41층 높이의 ‘청콩센터’는 지난 3월 기준 입주 비율이 10%에 그쳤으며 홍콩의 4대 부동산 기업인 헨더슨 부동산 개발이 관리하는 36층짜리 신축빌딩 ‘더 헨더슨’도 공실률이 40%에 달한다.

결국 홍콩은 1970년 세계 경제 자유지수가 시작된 이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싱가포르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악재가 겹치면서 짐을 싸는 기업은 빠르게 증가했다. 홍콩을 선호하던 미국 기업 수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감소해 2022년 6월 1258개를 기록했다. 2004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반면 지난해 홍콩에 지역 본부를 둔 중국 본토 기업 수는 미국 기업 수를 앞질렀다. 미국 기업들로서는 중국 당국의 단속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직원들을 홍콩에 배치하는 것도 더 힘들어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이 중국의 연장선으로 비칠 정도로 중국 본토와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WSJ는 “과거에는 글로벌 기업들이 국제적 상업 중심지인 홍콩과 중국 본토 간 관계를 ‘자산’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장애’로 본다”며 “이에 따라 기업들의 철수 속도도 가팔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홍콩에서 사업하는 데 위험이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에 물음표가 붙을 정도로 불확실해졌다는 것이다.

홍콩의 '골든 위크' 휴일의 불꽃놀이. /연합뉴스

◇금융허브에서 이제 암호화폐 허브되겠다는 홍콩, 성장여력 있는 다른 분야는

그렇다고 해서 홍콩의 미래가 비관적이라고 만은 볼 수 없다. 간편한 법인설립 절차와 낮은 법인세는 여전히 많은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이며, 지금까지 구축된 금융과 물류 인프라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홍콩 정부는 크립토허브, 세계 암호화폐 경제의 중심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암호화폐를 수단으로 삼아 싱가포르에 빼앗긴 아시아 금융 중심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인데, 당국은 빠르게 거래소 가이드라인, 개인투자 허용과 투자자 보호 강화를 통한 산업 육성 방안을 공표했다. 합법적 사업 환경이 갖춰지면서 많은 암호화폐 기업들이 홍콩을 향하고 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올해 암호화폐 상승장의 주역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에 이어 홍콩에서 출시됐다. 홍콩 비트코인 ETF의 미래에는 중국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시장에서는 리스크로만 여겨지던 중국 본토의 투자 자금이 홍콩 비트코인 ETF를 받쳐줄 거라는 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가 이더리움(ETH)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스테이킹 허용까지 검토하면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스테이킹이란 암호화폐를 블록체인 네트워크나 디파이 플랫폼에 예치하고 수수료나 이자를 챙기는 개념이다.

지난해 침체에 빠졌던 홍콩의 항셍지수는 최근 반등에 성공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 탓이다. 지난달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는 홍콩 내 주요 중국 기업의 기업공개(IPO)를 지원하고 홍콩과 본토 거래소 간 주식 거래 연결에 대한 규정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또 홍콩 증시에 위안화 표시 주식을 포함하는 것을 지원하는 등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조치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본토 대비 홍콩 시장의 소외 우려가 완화됐고, 여기에 홍콩 자본시장 지원정책 등 증시 활성화 정책도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올해 홍콩에서 열렸던 아트바젤. /로이터 연합뉴스

기관과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예술 자산 비즈니스도 홍콩이 꽃을 피우고 있는 분야다. 전통적인 동아시아권 예술금융 중심지는 싱가포르였는데, 싱가포르가 고가 미술품에 부가가치세(VAT)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미술품에 세금을 면제하는 홍콩으로 수요가 이동한 것이다. 결국 세계 2대 에술품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2000년대 초 싱가포르를 떠나 홍콩에 자리를 잡았으며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스위스 아트바젤은 아시아의 첫 발을 홍콩에 내밀었다.

또한 홍콩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지난 2월 10억홍콩달러(약 1706억6000만원)를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드론쇼나 불꽃놀이를 매월 개최하고 아트 페어나 골프 경기 등 대형 행사들을 유치한다는 것인데, 자금은 내년부터 숙박요금의 3%에 해당하는 숙박세를 부활시켜 조달한단 계획이다. 도리스 퐁 홍콩투자청 창조산업팀장은 “홍콩은 지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라며 “(정치적 이슈를 포함해) 외부의 여러가지 상황 변화가 있지만 각종 세율이 낮다는 점, 미술품과 와인을 포함한 다양한 품목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없다는 점 등은 변하지 않는 홍콩의 장점이며 홍콩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의 국적 중 세번째로 많은 수가 여전히 미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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