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조선인 음악회의 聖地,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2024. 5.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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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 홍난파 첫 리사이틀, 베토벤 탄생 기념 음악회 등 열려
1908년 12월 완공된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1910년대~1930년대 각종 음악회와 강연회가 열린 근대 문화의 성지였다. 해삼위학생음악단과 하와이학생고국방문단이 공연한 곳도 회관 대강당이었다. 1911년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저 양악의 반도 유입은 교회를 통하여 점진한 것이로되, 그 일반적 보급은 오히려 지지(遲遲)한 점이 있더니, 기독교청년회를 말미암아 성악, 기악, 관현악의 독주, 2중주, 3중주, 4중주 등이 누누(屢屢) 실연함을 따라 양악 취미 및 양악 지식이 일반화하는 기운을 만났다. 특별히 동양을 내방하는 세계 일류의 악인 가수가 청년회의 소개로써 한국인의 이목에 그 신기를 고동한 예가 허다하여 이것이 반도에 있는 양악 발전에 큰 자극이 되었음은 물론이다.’(‘육당최남선육필원고’, 김은영(2022) 75쪽 재인용)

육당 최남선은 조선 YMCA(기독교청년회)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로 서양 음악의 보급에 기여했다는 점을 꼽았다. 국내 첫 피아니스트 김영환, 첫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홍난파가 YMCA학관(學館)출신이라거나 김인식, 김형준, 이상준 등 1세대 음악인들이 YMCA에서 서양 음악을 가르쳤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1908년 12월 건립된 종로 YMCA회관은 ‘음악회’의 성지(聖地)였다. 특히 조선인들이 활약한 북촌의 중심 종로에 자리잡은 덕분에 경성공회당(1920년), 부민관(1935년)이 건립되기 전은 물론 1920년대와 1930년대 내내 조선인 음악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홍난파는 1918년 동경음악학교에 유학하다 3.1운동으로 귀국했다. 1924년 1월18일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첫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가졌다. 조선일보 1924년1월18일자

◇김영환, 홍난파 등 YMCA 학관 졸업

종로 YMCA회관은 벽돌양옥 600평 건물이었다. 회관내엔 강당, 운동실, 교실, 도서실, 식당, 목욕장, 사진부 등을 갖추고 있었다. 기독교청년회는 1906년 10월 캐나다인 그레그를 청빙, 실업교육 위주의 학관(學館)을 개관했다. 이 학관에 1912년 11월 음악과가 신설돼 1914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김영환이 1회 졸업생이었다. 같은 해 홍난파도 중학부를 5회로 졸업했다.

◇베를린 유학파 피아니스트 오구라 리사이틀

YMCA에서 열린 첫 음악회는 1909년 2월1일 오후7시 YMCA 월례회로 보인다. 학관 책임자였던 그레그(具禮九)가 월례회 순서중 하나로 ‘환등회’(영화)를 열었는데, 여흥으로 음악과 ‘창가’를 연주한다는 보도(’靑館例會', 대한매일신보 1909년1월31일)가 나왔다. 전문 음악가가 나선 음악회로는 베를린 뮤직호흐슐레에서 유학한 피아니스트 오구라 스에코(小倉 末子·1891~1944)와 성악가 야나기 가네코(柳兼子·1892~1984) 리사이틀을 꼽을 수있다.

도쿄음악학교에서 수학한 오구라는 1912년~1914년 베를린 뮤직호흐슐레에서 수학한 후, 미국에 건너가 시카고 메트로폴리탄 음악원 교수로 가르쳤다. 1916년 귀국해 이듬해부터 도쿄음악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20세기 전반 일본의 대표적 여성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오구라 연주는 단연 화제를 모았다. 12월19일 오후8시 조선호텔 대식당에 이어 21일 오후8시 기독교청년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오구라는 22일 오후2시 창덕궁 인정전에서 순종 부부를 관객으로 한 어전연주회(매일신보 1916년 12월24일)까지 치렀다.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아내인 야나기 가네코(柳兼子) 리사이틀은 1920년 5월4일 밤 열렸다. 가네코는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를 나와 훗날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다.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으로 채운 음악회는 비제 ‘카르멘’중 ‘하바네라’로 마무리됐다. ‘청춘예찬’으로 이름난 작가 민태원(1894~1935)은 야나기 가네코 음악회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음악회’)까지 발표할 만큼 파급효과가 컸다.

기독교청년회관은 종로 거리의 상징이었다. 북촌과 이어지는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은 1910년대부터 조선인 중심의 음악회가 열린 곳이다. 홍난파 리사이틀도 1924년 1월 이곳서 열렸다.

◇해삼위 학생음악단의 경성 연주

1920년대 초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음악회 중 주목할 만한 것은 1921년 해삼위 조선학생음악단과 1923년 하와이학생음악단의 고국방문 음악회다. 1921년 해삼위조선학생음악단의 내한공연은 ‘서양 음악이나 무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920년대 제일 큰 사건’(‘박용구: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77쪽~87쪽)으로 꼽혔다. 전국 15개도시 23회 순회공연중, 경성에서 6차례 공연했는데, 기독교청년회관에서만 4차례 열렸다.

◇조선인 첫 바이올린 리사이틀

조선인 첫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열린 곳도 기독교청년회관이었다.’종로 중앙기독교 청년회의 주최로 내일 오후7시반부터 홍영후씨의 ‘바이오링’독주회를 청년회관안에서 개최할 터인데 입장권은 50전, 1원, 2원의 3종으로 할 터이오, 그날 연주할 곡조는 가장 유명한 작품을 선택하여 하리라더라.’(‘바이올린 홍난파 독주회’, 조선일보 1924년1월18일) 홍난파는 김영환의 피아노 반주로 베토벤의 ‘미뉴에트’ G 장조를 비롯, 그리그 소나타 F 장조, 부르흐의 협주곡 G단조, 쇼팽의 ‘녹턴’, 하이든의 ‘미뉴에트’ F 장조,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루빈스타인의 ‘멜로디’ F장조, 암브로시오의 ‘판타지’ 등을 연주했다.

◇베토벤 탄생 기념음악회

베토벤 탄생 기념 음악회도 이곳에서 열렸다.’세계음악역사상 가장 이름이 높은 악성 ‘뼈-토벤’은 150년전 12월16일에 독일 본이란 곳에서 탄생하였음으로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경음악학교 동창회의 주최로 명 17일밤에 종로중앙청년회관에서 기념음악회를 개최한다는데….’(‘악성탄생기념 대연주회’,조선일보 1923년12월16일)

1923년 12월17일 오후7시30분에서 열린 이 음악회 출연자로는 김영환, 윤심덕, 윤기성, 한기주, 홍난파와 함께 이화학당의 김합라, 윤성덕도 출연이 예고됐다. 입장료는 1원, 50전 두 종류였다. 베토벤 사진과 역사를 실은 프로그램을 증정한다는 예고도 함께 나갔다.

베토벤 탄생일(1770년 12월17일)을 전후한 기념음악회는 3년 연속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렸다.’독일 악상 베토벤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연악회 주최로 금 18일밤 7시부터 종로청년회관에서 세계명곡대연주회를 개최한다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경성안에 있는 일류 음악가제씨의 지난 1년동안에 연주하던 곡조중에서 가장 많이 환영을 받은 것과 가장 자신있게 잘하던 것으로….’(베토벤 기념 명곡 대연주회’, 조선일보 1924년12월18일) 이날 연주회에서도 관객들에게 베토벤 사진을 1장씩 나눠줘 서양음악 홍보 기회로 삼았다. 입장료는 2원, 1원, 50전으로 당시 물가를 헤아리면 상당히 비쌌다.

◇모던 보이의 정신적 고향

조윤영의 조사에 따르면, 1920년~1935년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린 음악회는 196회다. 음악회 붐이 일어난 1920년 20회를 시작으로 1924년, 1925년 25회를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지만 조선인 음악가 중심의 활동 무대가 됐다. 3·1운동 직후 경성을 방문한 미 의원방문단 환영회(1920년8월25일)와 좌우합작 민족통일전선인 신간회 창립대회(1927년 2월15일)가 이곳에서 열리는 등 정치·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언론인 김을한(1906~1992)은 ‘기미 3·1운동을 전후해서 당시 중학교 초년생이던 필자는 학교가 파하기만 하면 의례히 청년회관에 들러서 놀았었다’면서 ‘그 시대의 청년회는 신문화의 중개처였으니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탁구, 농구, 야구, 축구, 기계체조 등의 온갖 운동경기를 맨 처음 소개한 것을 비롯해서 근대식 음악회나 연설회를 시작한 것도 청년회’였다고 회고했다. 김을한은 스스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처음으로 듣고 소프라노나 테너의 성악을 듣게 된 것’또한 청년회 덕분이라고 했다.(’한국문화와 YMCA’,동아일보 1956년2월22일)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은 서구 문명을 선망하던 학생들과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정신적 고향같은 곳이었다.

◇참고자료

김은영, 1910~1920년대 YMCA 음악회에서 상상한 ‘민족’, ‘경성의 소리문화와 음악공간’, 서울역사편찬원,2022

조윤영, 경성의 음악회(1920~1935): 식민지 일상과 근대의 경험, 그 다양한 시각에 대하여, 이화여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8

조윤영, 식민지에서의 베토벤 수용: 음악활동에 대한 사회문화적 접근, 역사연구 제40호, 역사학연구소, 2021

김창욱, 홍난파 음악연구, 동아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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