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주사로만 6년간 1.2억 타내···과잉진료에 보험금 줄줄 샌다

박성호 기자 2024. 5. 25. 05: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보험, 인구절벽을 넘어라]
<중> 비정상적 치료에 보험산업 기반 '휘청'
도수치료·줄기세포 주사치료 급증
작년 실손 지급액 9.3조●11%↑
車사고 경상환자 진단서 강화하자
되레 뇌진탕 등 꼼수환자 늘어나
공학 분석결과 보상과정 활용 시급
[서울경제]

60대 부부인 A 씨와 B 씨는 2015년 구내염 진단을 받은 뒤 처음 영양제 주사를 맞았다. 이후 구내염은 물론 이명·섬유근통 등이 발생하면 별다른 치료 없이 영양 주사제만 맞아왔다. 6년 동안 A 씨는 7400만 원, 부인인 B 씨는 5100만 원어치의 주사제 처방을 받아 보험금을 타갔다. 부부가 처방한 주사제는 세포 면역 주사제로 1회 비용이 23만 원에 달했다. 보험회사가 병원에 주사제 성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실손·자동차보험 가입자들에 대한 과잉 진료가 저출산·고령화로 가뜩이나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보험 산업에 위협이 되고 있다.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진료에 따른 보험금 지급으로 보험사의 재무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사의 손실이 커지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보험 계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4일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개 대형 손보사에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9조 3460억 원으로 전년(8조 4265억 원)보다 10.9% 급증했다. 5개 손보사에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매년 늘어 최근 5년간 2조 6566억 원이나 증가했다.

실손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주변 병원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도수 치료와 비급여 주사 치료가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금 지급액의 57.5%가 비급여 주사료와 도수 치료에 사용됐다. 교정 치료(3.1%), 치료재(2.0%), 하지정맥류(1.6%)가 뒤를 이었다. 다른 항목과 비교하면 비급여 주사료와 도수 치료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메리츠화재 등 4대 손보사의 경우 지난해 비급여 주사료로 지급된 보험금은 3123억 원에 달해 5년 사이 2.5배나 늘었다. 도수 치료 보험금 역시 1조 375억 원으로 같은 기간 65%나 늘었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2022년까지만 해도 보험금 지급 항목 2~3위에 백내장 다초점 렌즈 삽입술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보험금 지급이 깐깐해지자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이 있음에도 비급여 치료를 우선적으로 실시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도수 치료, 비급여 주사제와 함께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가 실손보험 재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자 의료기관들이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를 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골수 줄기세포 주사 치료로 4개 손보사가 지급한 보험금은 9000만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2월에는 34억 원으로 38배나 급증했다.

자동차보험 분야에서도 과잉 진료는 만연해 있다. 특히 타박상·염좌 등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에 따라 치료 기간을 설정하는 경상 환자(상해 등급 12~14급)들의 장기 치료가 보험금 누수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경상 환자의 병·의원 진료 기간은 2018년 26.4일에서 2022년 35.8일로 늘었다. 지난해 정부가 경상 환자 과잉 진료를 방지하기 위해 경상 환자가 4주를 넘어서는 장기 치료를 받을 때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자동차보험 종합 개선 방안’을 시행했지만 일부 병원 등에서 추가 진단서 발급 등을 통해 개선된 제도를 무력화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경상 환자에 대한 문턱을 높였더니 오히려 더 높은 등급으로 진단서를 발급해 규제를 벗어나는 ‘꼼수’ 또한 발생하고 있다. 뇌진탕이 대표적이다. 4개 손보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보·DB손보)에서 상해 등급 11급인 뇌진탕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2022년 3만 7100명에서 지난해 5만 2200명으로 40.7%나 급증했다. 4개 손보사의 전체 환자 수가 3.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인 증가세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험료를 납부했으니 계약자가 질병이 생겼을 때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은 당연한 만큼 지급액이 늘어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굳이 필요 없는 치료인데 과잉 치료를 조장하거나 유도해 수익을 내려는 의료기관과 일부 이용자가 악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잉 진료에 따른 보험금 누수는 보험사들의 재무적 기반을 약화시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선량한 가입자 보호를 위해 과잉 진료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손보험의 경우 비급여 치료비 가격 비교 서비스 등을 제공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의료기관이 비급여 진료 비용을 환자에게 사전에 고지하도록 해 추가 진료비 청구를 막는 방안이 거론된다. 자동차보험 경상 환자 치료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보상을 위해 사고와 부상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상해 위험 분석 결과 등 공학적 분석 결과를 보상 과정에 활용하고 사고 정보도 진료비 심사 때 참고 자료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사고와 상병의 인과관계 판단 시 공학적 분석 결과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인체상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고로 확인된 경우 지급보증을 중단하는 등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 junpark@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