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경고한 일본 재계 원로 “한·일, 지금 행동 안하면 小國 될 것”

안상현 기자 2024. 5. 25. 05: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출생 콘퍼런스 일본의 인구 해법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일본의 대응 계획' 세션에서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이 강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원로인 미무라 아키오(84) 일본제철 명예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아직도 일본과 한국 모두 저출생에 대한 위기감이 없는 것 같다”고 꾸짖듯 말했다. 일본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한 민간 전문가 그룹 ‘인구전략회의’를 이끄는 미무라 회장은 “지금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경제 규모가 축소되고 존재감 없는 ‘소국(小國)’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사례는 24일 조선일보·대한상의 저출생 콘퍼런스에서도 연구해볼 대상으로 소개됐다.

미무라 회장은 지난 1963년 후지제철(일본제철 전신)에 사원으로 입사해 40여 년 만에 회장에 오른 일본 샐러리맨의 신화다. 일본제철을 세계 3위 철강 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 경영인이다. 그가 저출생 문제에 뛰어든 계기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던 시절 받은 전화 한 통이었다. 미무라 회장은 “정부 고위 관료가 50년 후 일본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나서달라고 부탁했다”며 “50년 후 가장 확실한 문제는 인구 문제였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위기의식 없인 변화도 없어”

일본은 합계 출산율이 1.3명으로 한국(0.72명)보다 높다. 하지만 같은 초저출생(합계 출산율 1.3명 이하) 국가로 분류돼 고령화의 길을 먼저 걸은 나라다.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9%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한국은 19%다. 미무라 회장은 일본의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작심했다. 그를 중심으로 작년 7월 재계와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출범한 인구전략회의는 지난 1월 일본의 저출생 극복 마스터 플랜 보고서 ‘인구 비전 2100′을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에서 2100년 총인구 8000만명, 고령화율 30%를 목표로 청년층과 여성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하고 인구 감소 속도를 완화, 안정화하자는 전략을 담았다. 국가 성장과 사회보장제도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이다. 미무라 회장은 “지금 나서지 않으면 1억2400만명의 일본 인구는 연간 100만명씩 줄어 2100년에는 6300만명에 도달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미무라 회장이 이끄는 인구전략회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4월 열도를 술렁이게 하는 섬뜩한 보고서를 다시 발표했다. 2050년이면 20~39세 가임 여성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그에 따라 소멸 가능성이 큰 ‘블랙홀 지방자치단체’가 현존 지자체의 43%(744곳)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미무라 회장은 “부정적인 미래를 강조하고, 소멸 예상 지역을 특정해 공개하는 것에 대한 지자체들의 저항감이 컸다”고 했다. “하지만 위기의식 없이는 변화 역시 없기 때문에 도쿄도 도시마구와 도호쿠 지방의 아키타현, 혼슈 지방의 아오모리현 등 ‘소멸 도시’를 지정해 공개했다”고 말했다.

◇남성 육아 참여 부족, 저출생 첫째 원인

일본 인구전략회의는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성들의 가사·육아 동참 부족을 지목한다. 인구 비전 2100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참여한 세키네 도시타카 히토쓰바시대 국제 및 공공정책학 교수는 24일 조선일보·대한상의가 공동 주최한 저출생 콘퍼런스에 참석해 “여성들이 가사·육아에 쓰는 시간이 하루 평균 4시간이라면 일본과 한국 남성은 평균 1시간만 할애한다”며 “스웨덴(3시간)이나 독일·프랑스·영국(2시간) 남성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적다”고 지적했다.

미무라 회장 역시 “일본 남성의 육아 참여 부족이 저출생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었다”며 “지금이라도 기업과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출산을 가로막는 민간 분야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인구전략회의가 출범한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