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뽑기냐"…마을조례 폐지 시동에 '뿔난' 시민사회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2024. 5. 25. 0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원 마을만들기 조례 폐지 추진 논란
시민단체, 주민자치회와 역할 차이 강조
공론화 부재…폐지 의도 관련 의문 제기
시의원 "일원화 필요…폐지 여론 대변"
"정치적 해석은 악의적 프레임" 반박도
전문가 "행안부가 도입한 별개의 제도"
"역할 다른데 폐지부터? 납득 어려워"
수원시 마을만들기 조례 폐지안 발의 추진에 대해 수원지역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시민단체 측 제공


경기 수원시의회 한 의원이 수원시 마을만들기 조례 폐지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풀뿌리 자치의 모범사례에 대한 탄압'이라며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

해당 의원은 '민주적 의정활동'이라며 맞선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론수렴과 객관적 분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폐지 여부부터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견해에 무게가 실린다.

소규모+사각지대 '공동체' 초점…주체·사업 성격 달라

2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민의힘 소속 배지환(매탄1·2·3·4동) 수원시의원이 주민자치회와의 기능 중복 등을 이유로 마을만들기 조례를 없애는 안건 발의를 추진하자 관련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먼저 지난 20일 수원시민사회단체협의회, 수원민주시민교육협의회(빛길), 수원민주시민교육협의회 등은 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배 의원이 폐지하려는 조례는 '주민자치와 지방분권화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근거'라는 취지로 결사반대를 외쳤다.

핵심은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회 활동의 차이다. 두 제도가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지역 현안에 대한 자치역량을 키운다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운영 주체의 규모나 사업 성격 등은 다르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주민자치회가 동 단위의 자치사업을 기획하고 자체 예산 심의까지 진행하며 행정업무를 위임받아 활동하는 반면, 마을만들기는 소규모 모임 위주로 주민자치회에서 일부 다뤄지지 않는 취약계층 지원과 동네 생활·환경 개선 등을 통한 공동체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수원시 산하 수원도시재단은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회의 마을사업을 구분해 지원해오고 있으며, 마을만들기는 5~10명 안팎의 아파트 입주민이나 활동가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인복지주택 내 정리수납을 통한 공동체 형성(원천동 시니어 말끔히 정리왕) △방탈출·시간여행 테마를 통한 주민 소통(파장동 라온제나) △마을 통합놀이터 제안을 위한 공동육아(조원1동 조원 꿈벤저스) △공동주택 의제 도출 워크숍(화서1동 민영루이스봉사단) 등 올해 22개 동에서 31개 공동체가 활동 중이다.

이 같은 마을만들기의 특성상 큰 예산이 들기보다는 시와 재단의 기초적인 행정지원만으로 운영되는 사업이 많아, 설령 주민자치회 일부 사업과 형태가 중복되더라도 재정과 행정적 비효율성 문제를 들어 조례 폐지의 명분으로 삼을 순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판단이다.

오히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소단위 역할을 맡아온 소규모 공동체의 명맥을 잇기 위해, 유일한 제도적 근거로서 조례를 보완·유지해야 주민자치회의 빈틈을 메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사전 '공론화' 부재 논란도…폐지 반대 목소리 전국 확산

 
수원시의회 본회의장. 수원특례시의회 제공

다음은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졌느냐다. 시민단체들은 기존 운영 주체와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들과의 사전 논의조차 없는 일방통행식 조례 폐지 시도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시민단체의 거센 반감에도 조례 폐지를 앞세운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 때 만들어진 제도에 대한 '흔적 지우기' 아니냐는 의문도 더해진다.

배 의원은 마을만들기 조례 외에도 △수원시 공정무역 지원 및 육성에 관한 조례 △수원시 시민배심 법정 운영 조례 △수원시 참여와 소통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조례 폐지안도 발의를 준비 중이다. 모두 민주 진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담은 조례들이다.

지난 2010년 12월 제정된 수원시 마을만들기 조례가 전국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던 만큼, 시민단체들은 자칫 폐지될 경우 타 지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전국 연대로 반대 활동에 나서고 있다. 현재 전국 기초지자체 228곳 중 195곳에서 마을만들기 관련 조례가 제정돼 운영 중이다.

한국마을연합과 경기도 시·군 마을네트워크(마을넷), 전국마을만들기네트워크 등은 성명에서 "수원시 마을만들기 조례가 무너지면 도미노 효과가 우려된다"며 "민주주의 토대를 이루기 위한 조례들을 현장조직과 대화 자리도 없이 일방 폐지하려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수원시 역시 마을만들기 사업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면서도, 전국적인 선사례로서 꾸준한 성과를 내온 조례를 성급하게 폐지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마을만들기가 초기보다 축소되고 주민자치회가 모든 동으로 확대되면서 마을만들기와 합쳐진 부분도 있어 재정비에 대한 인식은 생길 수 있다"면서도 "마을 공동체를 통해 노력한 역사와 성과들이 있고 지금도 독립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서둘러 폐지 여부부터 논의하자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 의원 "기능 비슷, 일원화 필요…폐지 여론 대신해 발의"

 
배지환 수원시의원. 수원특례시의회 제공

하지만 배지환 의원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배 의원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시민단체들이 되레 법으로 보장된 민주적 의정활동을 막고 있다'며 조례 폐지안 발의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입장문에서 조례 폐지 이유에 대해 "주민자치회와 마을만들기 조례상의 목적과 기능이 거의 같아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다"며 "44개 동 중 24개 동에서는 마을만들기 단체가 주민자치회로 편입돼 예산 배정의 일원화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주민자치회는 일정 예산을 받아 자율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나, 마을공동체 사업은 재단에서 공모사업으로 계획을 받아 선정하는 방식이므로 자율성 측면에서 주민자치회가 훨씬 바람직한 모델이다"라며 "제도적인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폐지를 막으려면 존치 이유를 말하면 되는데 풀뿌리 민주주의라며 (저에게)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을 멈춰주길 바란다"며 "조례 발의를 통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논의 자체를 막으려는 민주주의 파괴행위이다"라고 반박했다.

'정치적 의도 아니냐'는 의혹 제기에 관해서는 "근거 없는 당리당략이라는 식으로 프레임을 씌우려는 행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는 상황에서 시의원으로서 입장을 대신해 폐지안 발의를 준비 중인 것"이라며 "조례 폐지안들은 재적의원들 서명을 받아 오는 27일 발의돼 의장에게 제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원시의회 김기정 의장이 지난해 마을만들기 공모사업 성과공유회에서 "앞으로도 시대에 맞춰 활성화되길 바라고, 더 큰 성취를 이루도록 의회에서도 노력하겠다"는 축사를 남겼다. 수원특례시의회 제공


현재 수원시의회는 다수당인 국민의힘 소속 김기정 의장이 이끌고 있고, 조례 폐지안을 심의할 시의회 문화체육교육위원회도 국힘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배 의원은 지난해 경기국제공항유치시민협의회 임원진을 비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의정 발언을 해 시민단체들과 충돌한 바 있다. 당시 배 의원은 "시정에 대한 정당한 비판 과정에서 제기된 의정발언"이라고 일축했다.

전문가들 "별개 제도인데…폐지 여부부터 논의 부적절"

 
지난해 9월 수원시의회와 수원시정연구원 등이 주민자치회와 마을만들기협의회 운영의 개선점과 시너지 방안 등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수원특례시 제공

전문가는 애초 지방자치 강화를 위해 정부에서 각각 도입한 별개 제도인데, 효과가 비슷하다고 해서 역할이 중복된다고 단정하고 폐지부터 논의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금창호 한국정책분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회는 행정안전부에서 도입한 서로 전혀 다른 제도다"라며 "주민자치 선진화라는 목적과 효과는 같지만 주민자치회는 동의 행정권 일부를 위임받은 기구로서 역할이 핵심이고, 마을만들기는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해 주민들이 동네 시책을 발굴해 주민자치의 근간인 공동체를 다각화하는 개념이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능 중복 레벨이 높았다면 왜 정부가 십수년간 (마을만들기를) 전국적으로 확대했겠느냐"며 "상호 보완하는 성격이 강한 제도를 보완해가면 될 일이지 조례의 존폐 여부부터 논하자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들의 강경한 반대를 무릅쓰고 안건 발의를 시도하는 데 대해, 추진 배경에 의문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서울시에서도 비슷한 조례 폐지가 이뤄졌다. (보수정당에) 도움이 안 된다는 관점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풀뿌리 자치는 좌파 진영이 중요하게 여겨 온 분야이기 때문에 관련 여러 조례들을 폐지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물음표가 붙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