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사비 올려달라는 시공사의 불편한 압박

김참 부동산부장 2024. 5. 2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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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단지는 늘 시끄럽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특히나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좋지 못하면 더욱 그렇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지금은 조합도 시공사도 곳간이 비었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재건축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인상 분쟁으로 악화일로다. 공사비를 인상할 경우 조합원 분담금도 늘어나 이에 반대하는 조합과 손해보고 공사를 할 수 없다는 시공사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과거 이런 경우 서로 조금씩 양보해 합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합은 재건축아파트 준공 시점에 시세 차익을 기대하면서 시공사에 양보할 수 있었다. 시공사도 웬만하면 공사 현장이 돌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건설업은 자전거에 비유된다. 바퀴 페달이 멈추면 자전거가 넘어지듯이 수주를 멈추면 무너지는 게 건설업이다.

다만 특정 조건(공사비 증가)이 특이점을 넘어서게 되면 일은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게 된다. 건설업계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이 증가했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해 3년 전보다 공사비가 40%가량 올랐다고 토로한다. 여기에 조합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원하고, 잦은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것도 공사비 증가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반 브랜드 아파트보다 프리미엄 브랜드 아파트는 공사비가 평균 10%가량 비싸진다.

조합은 화물연대 파업, 레미콘 수급, 현장 주변 민원 해결 등 과거엔 건설사가 감당했던 비용을 조합에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시공사가 원하는 수준으로 공사비를 올려주게 되면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만 1억~2억원씩 훌쩍 뛰게 된다. 준공 이후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분담금만 추가로 내야 하니 갈등이 계속되는 셈이다.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인상 합의를 보지 못하면 결국 재건축은 중단된다. 최근 경기 성남시 은행주공 재건축조합의 경우 공사비 증액 등을 두고 시공사 측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최근 계약이 해지됐다.

사실 이 싸움에서 약자는 조합이다. 양보 없이 극한으로 치닫게 되면 대부분 시공사의 승리로 끝난다. 새 시공사를 찾지 못한 조합들은 계약을 해지했던 기존 시공사에 찾아가게 된다. 실제로 경기 남양주시 진주아파트 재건축정비조합은 기존 시공사와 다시 계약했다. 조합에 대한 압박도 과거와 달리 착공 이후에도 계속된다. 극단적으로는 공사를 중단하거나 입주를 못 하게 막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공사들의 다그치듯 조합을 압박하는 방식이 선을 넘었다는 말도 나온다. 한 건설사가 조합을 압박해 공사비를 증액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조합과 분쟁 중인 다른 건설사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한다.

내달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상당수 금융기관과 건설사에 ‘부실 낙인’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동산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계획하고 있지만, 특정 단어에 ‘질서있는’이란 수식이 붙는 경우 그 과정은 ‘혼돈’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모두 망하게 된다’며 건설업계는 과거에도 그랬듯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에 목을 맬 것이다. 지난 2008년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저축은행과 건설사들을 한차례 살린 바 있다. 당시 PF 사업장에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의 부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자, 국민 세금으로 PF 대출채권 매입에 나섰다. 당시 100대 건설사 중 24개사가 문을 닫았다.

지금 생존해 있는 건설사들은 당시 국민 세금 덕분에 살아난 곳들이 상당수다. 지금도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상품을 통해 부동산PF 부실을 청년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은 이윤추구 즉 곳간을 채우는 것이 존재 목적이다. 그렇다고 건설사가 지금처럼 이윤만 추구하다 인심을 잃으면 기댈 곳이 없어진다. 밉상 기업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정부도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건설사들이 문재인 정권 시절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해 시작된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하는 것은 맞냐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 가지 더.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원자재는 가격 사이클(cycle)을 탄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릴 때도 있다. 원자재 가격이 대폭 떨어졌던 시기, 예상보다 공사비가 덜 들어갔다고 건설사가 조합에 돈을 돌려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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