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원 체코 원전…한국 수주전 총력

황정일 2024. 5. 2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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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전 유럽 교두보를 확보하라
박정원(左), 백정완(右)
지난 3월, 한국과 체코 원전 건설 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돌연 체코를 방문했다.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수력원자력을 필두로 한 한국의 원전 수출팀 ‘팀코리아’도 바빠졌다. 팀코리아의 일원인 두산그룹의 박정원 회장도 직접 나섰다. 박 회장은 체코로 날아가 13일(현지시간)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진행했다.

체코 정부 관계자와 현지 기업 100여 곳이 참여한 자리에서 박 회장은 한국이 수주하면 원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을 155년 전통의 체코 국민기업 두산스코다파워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회사의 터빈 관련 현지 협력업체만 30여 곳에 이른다. 원전 건설을 한국에 맡기면 개발 이익이 결국 체코 기업·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27일에는 또 다른 팀코리아 일원인 대우건설 백정완 사장이 체코로 날아가 수주 영업전 배턴을 이어받는다. 백 사장은 현지에서 ‘한·체코 원전 건설포럼’을 주관하고, 현지 건설사 등을 상대로 한국 원전의 안전·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백 사장 역시 현지에서 건설기자재를 조달하는 등 체코 업체와의 협력을 약속할 계획이다.

체코의 ‘두코바니 원전 건설 공사’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수주 총력전이 펼쳐지고 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5년 만에 한국형 원전 수출 도전이다. 이 사업은 체코 두코바니·테믈린 지역에 원전 총 4기를 새로 건설하는 것으로, 국내 원전업계 추정 사업비만 30조원에 이른다. 후속 사업 등을 고려하면 실제 사업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기술력과 경제성 면에서는 한국이 앞선다는 평가다. 현지 언론들은 특히 가격 면에서 한국이 프랑스를 압도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안보동맹이나 금융지원 등에서 한국보다 유리하다. 팀코리아가 막판까지 총력전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원전 안전성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수주 가능성은 반반”이라며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한다면 한국형 원전의 유럽 진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전 수출은 사실상 국가와 국가 간 계약이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K원전, 가격·납기 경쟁력…“대통령 외교 지원 필요한 시점”

두산그룹은 13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를 개최하고, 체코 원전 수주시 현지 업체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원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은 체코의 국민기업 두산스코다파워에 맡길 계획이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체코는 당초 수도 프라하 남부 두코바니에 1200㎿(메가와트) 이하 원전 1기를 추가 건설키로 하고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의 프랑스전력공사(EDF),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입찰서를 받았다. 하지만 경제성을 고려할 때 1기보단 4기가 유리하다고 보고 체코는 지난해 2월 두코바니에 2기, 테믈린에 2기 등 총 4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한 뒤 올해 4월 수정 입찰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입찰서를 제시하지 못해 배제되면서 체코 원전 수주전은 한수원과 EDF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4월 말 수정 입찰서를 제출한 한수원은 한국형 원자로 ‘APR 1400’을 바탕으로 체코 측의 요구에 따라 용량을 낮춘 ‘APR 1000’ 공급을 제안했다. APR 1000은 지난해 3월 유럽사업자협회로부터 ‘설계 인증(EUR Certificate)’을 취득, 원전 설계 안전성과 경제성을 객관적으로 입증받은 바 있다.

사업비, 한국 30조원 프랑스 70조원설

7월께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현지에서는 한국이 원전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에서 프랑스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언론 ‘경제저널(Ekonomicky Denik)’은 1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며 한국의 수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국내 원전업계에서는 총사업비로 한국은 30조원대를 제시했지만 프랑스는 70조원대를 제시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실제로 한국형 원전의 ‘가성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형 원전의 건설 단가는 1㎾당 3571달러로, 프랑스(7931달러)의 절반도 안 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형 원전은 원자로·터빈과 같은 주기기나 주요 부품의 공급망이 안정화돼 있고, 건설 현장 관리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며 “여기에 국내·외에서 다수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건설 효율성까지 높여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또 다른 강점은 이른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예정대로 준공)’이다. 프랑스는 세계 2위 원전 가동국(56기)이지만, 납기 준수 경쟁력은 객관적으로 한국이 앞선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일정대로 건설한 반면 프랑스가 핀란드에 지은 올킬루오토 3호기는 예정보다 14년 늦게 준공했다. EDF가 건설 중인 영국 힌클리포인트C 원전도 준공 시점이 당초 2023년에서 2028년으로 늦춰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프랑스는 사업비나 공사 기간이 계속 불어나지만, 우리는 UAE에서 기간 안에 끝낸 경험이 있다”며 체코 원전 수주를 자신했다.

그렇다고 프랑스를 만만히 볼 수는 없다. 프랑스는 유럽의 맹주로 유럽 원전시장이란 안방을 지키기 위해 체코 원전 수주에 국력을 올인하고 있다. 3월에는 유럽연합(EU) 내 원전 확대 진영 12국과 공동 성명을 내고 ‘이웃 사이 원전 동맹’을 강조하기도 했는데, 체코도 여기에 참여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체코를 찾아 수주전을 지원했다. 프랑스는 체코 인접국인 데다 육로로 이동할 수 있어 정치적인 면에서는 한국보다 유리하다는 평가다. 특히 체코는 수십조원대 개발 사업을 위해서는 EU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프랑스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같은 지리적·정치적 논리는 원전 수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2022년 폴란드 1단계 원전 수주에서 한국이 미국에 밀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는 것을 보며 원전 파트너로 미국을 택했다. 경제성 면에서는 한국이 월등히 앞섰지만, 한국은 잠재적인 러시아 공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X(트위터)를 통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장관과도 이야기를 나눴다”며 “폴란드·미국의 강력한 동맹은 우리 계획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적었다. 정치적 판단이 사업자 선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22년 폴란드 원전 수주전 땐 미국에 밀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체코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증기터빈 생산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이처럼 원전 수출은 기술이나 경제성보다는 양국 정부 간 거래인 예가 많아 국내 민간 업체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승재 두산에너지빌리티 상무는 “13일 체코 현지에서 33개 언론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한국이 유리하다고 보는 매체가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수주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체코 원전 수주는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는 계획인데, 체코 원전이 향후 판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지난달 안덕근 장관이 체코를 찾아 수주전에 나섰다.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역시 마지막까지 국가 차원에서 총력을 다한 영향이 컸다. 2009년 12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 수출을 담판 짓기 위해 UAE로 날아가기도 했다. 이와 관련 당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한국은 한국전력 건물에 전시상황실(war room)을 설치하고 이 대통령이 직접 수주전을 지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범진 교수는 “체코 원전 수주와 관련해 한수원이나 민간 기업, 산업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본다”며 “한국이 핵심 승부처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대통령의 외교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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