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방중 먼저’ 리창이 시진핑 메시지 들고 온다면…

유상철 2024. 5. 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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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나 워치] 한·일·중 정상회의 관전포인트
곧 열린다, 열린다 말만 무성하던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마침내 26~27일 서울에서 열린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제8차 회의가 열린 지 4년 반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총리가 참석한다. 중국의 1인자 시진핑 국가주석이 오는 건 아니지만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동북아 최고위급 협의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올해 주목할 건 뭔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6대 의제(인적교류, 지속가능한 발전, 경제통상, 보건 및 고령화 대응, 과학기술과 디지털 전환, 재난 및 안전)를 꼽았다. 대만해협과 북핵 등 민감한 안보 이슈가 빠진 걸로 봐 3국 정상회의 성사 자체에 공을 들인 모양새다. 어찌 보면 3국 정상 간의 대화채널을 복원했다는 게 이번 9차 회의의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2008년 일본에서 열린 1차 한·일·중 정상회의에는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참석했다(맨 위). 2015년 서울에서 열린 6차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리커창 총리가 손을 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가운데). 2019년 중국에서 열린 8차 회의엔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 아베 신조 총리가 참석했다. [중앙포토]
특히 근년 들어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중 간에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한·일·중은 3국 정상회의 기간 한·일과 한·중 등 양자 정상회담도 갖는다. 한·일 관계는 상당 수준 개선된 상태라 현재 초미의 관심은 리창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중 관계가 과연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당초 지난해 개최 예정이던 회의가 열리지 못한 것 또한 불편한 한·중 관계로 인해 중국이 소극적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결국 최근 조태열 외교장관이 중국을 다녀오는 성의를 보인 끝에 이번 회의가 최종적으로 성사됐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올해 가장 중요한 건 3국 정상회의를 빙자해 이뤄지는 윤석열-리창 회담이다. 이게 바로 이번 회의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과연 윤-리 만남이 한·중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리창 총리가 들고 올 메시지에 윤 대통령이 어떻게 답하느냐가 향후 한중 관계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리창, 최대한 몸 낮추며 동선 최소화

리창은 이번 방한을 준비하며 동선을 최소화했다는 말을 듣는다. 시진핑 주석의 과거 비서실장 출신 답게 역대 중국의 여느 총리와는 달리 최대한 몸을 낮추는 모습이다. 한편으론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윤-리 회담에선 우선 상호 안보 문제가 도마에 오를 예정이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하고, 중국은 대만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신중한 태도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리창이 윤 대통령에게 시진핑 주석의 특별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게 뭘까? 윤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초청이다. 현재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과 관련해선 시 주석이 한국에 올 차례라는 이야기가 많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고 이듬해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갔으니 이제는 시 주석이 올 차례라는 논리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문 대통령은 2019년 3국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재차 방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국내 여론은 시 주석이 와야 한다고 본다. 윤 정부 또한 중국과의 당당한 외교를 주창해온 터다. 중국도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초청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걸까? 이제까지 시 주석의 두 번째 방한이 이뤄지지 않은 건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제 배치를 결정한 ‘사드 사태’ 이후 한·중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로나 사태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러나 내년엔 한국에서 APEC(아시아태평영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다. APEC엔 시 주석이 참석해왔다. 결국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은 내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마치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는 형태로 말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윤 대통령의 방중을 먼저 성사시키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 주석의 내년 방한 길을 닦는 모양새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는 중국 당국의 시 주석 위상 높이기 작업과 관련이 깊다. 시 주석은 2022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며 중국 인민의 영수(領袖)를 넘어 세계 만민의 지도자로 비상하고 싶어한다. 중국이 근년 들어 국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국 방안이나 중국 지혜를 제공하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하는 게 다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한한령 풀리면 한·중 모두에게 이익

기시다 후미오, 윤석열, 리창(왼쪽부터 순서대로)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중국은 그런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자, 그렇다면 시 주석이 정중하게 리창 총리를 통해 초청장을 보내오면 윤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노, 댕큐”라고 딱 자르면 되나?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한·중 관계가 한층 더 경색되는 상황은 감내해야 한다. 내년 APEC 때 시 주석이 꼭 참석한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넙죽 초청장을 받기도 어렵다. 국민 감정도 고려해야 하고, 그 동안 외쳐온 ‘당당한 외교’와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찬반 양론이 거세게 부닥칠 텐데 이에 대한 답으로 조건부 수용은 어떨까 싶다. 초청에 응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확실하게 얻어내는 것이다. 우선 내년 APEC 때 시 주석의 참석을 확약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사드 보복 중 이제까지 풀리지 않은 나머지 하나를 마저 푸는 것이다. 중국은 물론 사드 보복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한한령(限韓令)과 금한령(禁韓令) 등 크게 두 가지 보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금한령은 한국으로의 중국 단체관광 금지인데 이는 지난해 8월 해제됐다. 이제 남은 건 한류의 중국 진출을 막고 있는 한한령이다.

제조업에선 여기저기서 중국에 추월당해 대중 적자가 구조적으로 쌓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한국이 우위다. 대중 적자를 만회할 좋은 기회다. 특히 한류의 중국 진출은 화장품 등 한국의 여러 업계에 매우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광범위하게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한류 스타가 중국에 진출해 100만 위안을 벌 때 이를 주선하는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체는 900만 위안을 챙긴다고 한다.

중국이 역점을 기울이는 내수 진작에도 좋다. 또 한한령이 풀리면 한·중 인적교류가 비약적으로 확대돼 양국 모두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세상만사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한·중 관계에 햇살을 드리울 다양한 묘안이 속출하기를 기대한다. 기회란 잡으라고 있는 게 아니겠나.

■ 아세안+3이 계기, 2008년 정례화…과거사·사드 문제로 중단도

「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함께 한 시기다. 1997년 12월 아세안이 창설 30주년을 맞아 금융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일·중 3국 정상을 동시에 초청한 게 계기다. 아세안+3로 불렸다. 99년 아세안+3 정상회의 때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제안으로 한·일·중 3국 정상들만의 조찬 회동이 처음 열렸다. 2001년까지는 조찬 모임에서 경제협력만 이야기하는 비공식 회의였으나 2002년 4차 회의 때 공식회의로 바뀌며 북핵 등 안보 문제도 논의 대상이 됐다.

그러다 2008년 두 번째 단계로의 큰 전환이 이뤄졌다. 아세안과는 별개로 한·일·중 3국만의 정상회의가 처음 개최된 것이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아세안+3 회의로는 의제 설정 등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일본에서 새롭게 제1회 한·일·중정상회의를 열고 3국 내 정상회의 정례화에 합의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대화채널이 구축됐다. 2011년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으로 서울에 ‘한중일3국협력사무국(TCS)’이 설립됐다. 그러나 2012년 5차 회의 이후 온갖 풍파에 시달렸다. 한·일 간 과거사와 독도 문제, 중·일 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한·중 간 사드 갈등 등이 터지면서 회의는 열렸다가 중단되기를 반복했다.

2013년과 2014년, 2016년과 2017년을 건너 뛰었고 2019년 중국에서 8차 회의가 열린 뒤엔 한·일 마찰과 코로나 사태 등으로 지금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는 3국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협력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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