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가와이~’ 감성이 인기의 비결

조유미 기자 2024. 5. 2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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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 인터뷰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산리오 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야마구치 유코가 키티 인형 옆에서 웃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11월 1일생, 국적은 영국, A형, 밝고 친절한 성격에 피아노 연주와 쿠키 만들기가 취미. 엄마가 만든 애플 파이를 좋아하고, 꿈은 피아니스트나 시인이 되는 것…. 누구냐고? 사람 얘기 아니다. 올해로 출시 50주년을 맞은 일본 캐릭터 ‘헬로키티’ 얘기다.

고양이 캐릭터인 주제에 애완 동물로 페르시안 품종 고양이(!) ‘차미 키티’를 키운다. 키는 사과 5개 정도 높이인 30.4㎝, 몸무게는 사과 3개 정도 무게인 0.42㎏이라는 앙큼한 설정까지. 키티 시점에서 왼쪽 귀에 있는 빨간 리본은 쌍둥이 여동생인 ‘미미’와 구분짓기 위해 엄마가 달아준 것이다. 여동생은 오른쪽 귀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지면을 전부 ‘키티 이야기’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설정이 한가득이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산리오 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야마구치 유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가 50주년 맞이 기념 키티 인형을 들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키티의 어머니’라 불리는 야마구치 유코(山口裕子) 일본 산리오 기업 캐릭터 디자이너가 지난 22~23일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양 갈래 머리. “좋은 캐릭터에는 스토리가 있다”고 말하는 야마구치 디자이너를 만났다.

-양 갈래 머리는 왜 하는 건가요?

“처음엔 일 때문에 묶었어요. 머리 기장이 가슴 정도까지 내려오는데, 안 묶으면 거추장스럽잖아요. 미대생일 때는 긴 생머리였어요. 뭔가에 꽂히면 그 스타일을 고집하는데 그게 양 갈래네요. 지금 하고 있는 머리핀도 마음에 들어 8년간 매일 쓰고 있어요.”

-늘 이런 머리인가요?

“네. 심지어 여권 사진도 이렇게 찍었어요. 담당자가 ‘평소 모습대로 다시 찍어오라’고 했는데, 이게 평소 모습이라고 했고요. 그랬더니 다른 분이 와서 승인해주며 ‘그렇다면 머리 스타일을 바꾸지 말아주세요’ 하더라고요.”

-머리 색도 독특한데요.

“‘브라이스돌’이라는 인형을 좋아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만 50개가 넘을 정도예요. 인형 머리 색상이 다양한데, 그중 좋아하는 컬러를 골라 염색하고 있어요. 미용실에 인형을 가지고 가서 ‘이 머리색으로 해 주세요’ 말하죠.”

-50개나요?

“네. 아마 일본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 걸요? 키티 35주년에는 이 인형과 컬래버 작업도 했어요. 인형에 키티 가방과 목걸이, 구두 등을 입혔죠. 생각해보니 그때의 인형 머리색과 지금 제 머리색이 같네요.”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산리오 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야마구치 유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우연히 만난 소녀

그는 키티를 최초로 탄생시킨 시미즈 유코(清水侑子), 후임인 요네쿠보 세츠코(米窪節子)에 이어 1980년부터 지금까지 키티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비닐 동전 지갑에 인쇄된 캐릭터로 1974년 첫선을 보인 키티는 초기엔 큰 호응이 없었지만, 야마구치 디자이너가 키티를 맡은 뒤인 1985년쯤부터 산리오 내 인기 1위 캐릭터가 됐다. 낳지 않고도 어머니로 불리는 이유다.

-키티를 맡기 전부터 좋아했나요?

“아뇨.저는 1978년 산리오에 입사했어요. 제가 키티를 맡게 될당시 그 전 디자이너가 퇴사하고 당장 키티를 돌볼 사람이 없었어요. 새로운 디자이너를 구하지 않으면 키티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죠. 제가 키티 디자인을 맡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럼 어떤 캐릭터를 좋아했습니까.

“산리오의 ‘리틀트윈스타’. ‘키키’와 ‘라라’라는 이름의 쌍둥이 형제 별 캐릭터예요.”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는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싸인회를 자주 연다"고 했다. 이날도 직접 키티를 그려주는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는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싸인회를 자주 연다"고 했다. 이날도 직접 키티를 그려주는 모습.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래도 키티를 맡게 된 이유라면.

“당시 3명의 디자이너가 새로운 키티 콘셉트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다른 두 명은 새 키티의 디자인 등을 그래픽으로 그려 왔고요. 하지만 전 스토리와 본질에 집중했어요. 키티의 설정 중에 꿈이 피아니스트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 전까지는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요. 왜 키티의 꿈이 피아니스트지? 궁금하더라고요.”

-거 참 궁금하네요.

“전 키티에게 선물할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 흐뭇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 모습, 그리고 키티의 피아노 실력에 대해 발표했죠. 알고 보니 엄마가 피아노를 쳤다는 설정과 함께요. 당시 일본에서는 부모님이 상사(商社)에 근무할 정도의 부잣집이 아닌 이상 비싼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집이 드물었어요. 그래서 키티 아빠도 상사에 다니는 것으로 했고요. 이 발표가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래서 키티를 맡은 건?

“행운. 키티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고, 캐릭터나 로고가 박힌 제품을 만들고, 브랜드 혹은 다른 캐릭터와 컬래버 하며 저도 많은 경험을 했어요. 참고로 당시에는 캐릭터의 컬래버라는 개념이 없었답니다. 그걸 처음 한 거예요, 키티가.”

◇아이돌로도 데뷔?

키티는 ‘입’이 없다. 다른 캐릭터와 컬래버 한 디자인에서는 간혹 입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없다. 야마구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이 쉽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요?

“입을 그리면 웃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바로 알 수 있잖아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팬이 키티에게 말을 걸었을 때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혹은 위로해 줄 수도 있어요. 좋은 캐릭터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해요.”

키티 인형들과 함께~ 활짝.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헬로키티의 어머니 야마구치 유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키티는 당신에게 어떤 말을 거나요?

“음. 매출이 아주 좋았던 때 키티가 ‘잘됐다’고 딱 한 번 말을 걸어줬어요. 하하. 근데 이후로 딱히 말을 걸어 온 적은 없네요.”

-야마구치씨에게 키티란?

“1980년대에는 내 친구였고, 1990년대에는 내 분신이었어요.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에 키티를 보냈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혔으니까요. 2000년대 이후에는 비즈니스 파트너고, 올해의 키티는 ‘아이돌’ 정도?”

-아이돌요?

“키티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춰요. 그래서 한국 아이돌처럼 데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블랙핑크’의 제니가 키티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K팝 아이돌이 키티를 사랑하고, 키티도 춤과 노래를 좋아하니까 두 관계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데뷔를 하는 건가요?

“앞으로 그럴 것 같네요. 60주년 쯤에? 누가 키티를 캐스팅해주면 좋겠어요. 한국의 소속사가 일본 아이돌 연습생을 많이 데리고 가는 만큼, 키티도 키워주면 좋겠네요.” 그는 간혹 키티를 ‘딸’처럼 표현했다. 인터뷰 내내 사람처럼 키티를 묘사했고, 비유했고, 또 불렀다. 키티의 어머니는 “키티가 블랙핑크 멤버로 합류하면 기쁠 것 같다”며 웃었다.

-키티는 고양이가 아니라 소녀라고요?

“네. 2014년에 키티를 고양이로 표현한 전시회가 있었어요. 그때 ‘키티는 고양이가 아닌 소녀’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죠. 당시에도 키티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어요. 고양이가 고양이를 키우면 이상하잖아요?”

-옷도 많아요.

“처음 키티의 디자인을 맡게 되고 팬들에게 ‘키티는 왜 매번 같은 리본에 같은 옷만 입나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 말이 제게는 ‘키티는 멋이 없다’는 말로 들렸어요. 그래서 직접 디자인해 다양한 옷을 입혔죠.”

◇각오는 체력입니다

야마구치 디자이너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묻자 “체력으로 승부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키티의 디자인을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도 아니고, 체력이라니.

-갑자기 체력?

“키티의 체력요. 키티 인기는 영원할 거예요. 키티는 올해 50주년을 맞았지만, 더 오래된 선배 캐릭터가 많아요, 미키마우스처럼. 선배들이 밟아온 길을 가려면 키티가 계속 힘을 내줘야 하니까요. 100년이 지나도 여자 아이들이 변함없이 키티를 사랑할 수 있도록.”

-100주년에 키티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땐 제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상상조차 되지 않는군요.”

-참, 나이가 비밀이라고요.

“맞아요. 밝히고 있지 않아요.”

-신비주의 콘셉트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늘 키티가 귀여운 이미지의 소녀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거든요. 그에 맞춰 저도 키티의 젊은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나이를 안 밝히는 거예요.”

-키티의 팬도 키티와 함께 나이가 들 텐데.

“물론이에요. 하지만 키티의 팬들은 ‘카와이~’(귀여움)한 걸 좋아하는 걸요.” 그는 “현재 중장년을 겨냥하거나 연령을 나눠 디자인을 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딱 한 번 있다. 그런 적이.

-언제죠?

“1980년대, 고등학생에게 편지를 받았을 때요. ‘초등학생만의 키티가 아니라 고등학생이 가지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은 키티를 디자인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흑백 무채색의 키티를 만들었어요. 디자인뿐 아니라 상품까지요. 고등학생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필통 사이즈에 맞춰 키티 상품을 출시하고 베레모나 스니커즈, 가방, 티셔츠까지 만들었어요.”

놀라지 마시라. 이 고양이 캐릭터의 몸값은 200억달러(약 27조4000억원)에 이른다. 현재 세계 70국에서 연간 5만 종류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은 800억달러(약 1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미디어 프랜차이즈 순위에서 ‘포켓몬스터’에 이어 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키티 인기의 비결은?

“시대에 맞춰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이나 컬래버, 여러모로. 휴대전화가 계속 디자인을 바꾸고 발전하는 것처럼, 캐릭터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키티도 진화합니다. 카와이~ 감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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