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했다 꺼질라 가슴 철렁… 전국이 출렁인다

장근욱 기자 2024. 5. 25.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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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전국 출렁다리 9곳
직접 현장 가보니
지난 19일 경북 김천 부항댐출렁다리가 한산한 모습. 밤 10시까지 야간 개장을 위해 조명을 밝힌다. 95억원을 들여 지은 2018년엔 전국 최장 길이(235m)였다. 이후 출렁다리 경쟁이 이어지며 현재 최장 기록은 600m(충남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로 뛰었다. /장근욱 기자

지금도 어디선가 출렁다리를 짓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출렁다리 숫자는 작년 말 기준 238곳. 2014년 말(114곳)과 비교하면 10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지자체들은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며 출렁다리를 설치한다. ‘잘되는 다리’와 ‘안 되는 다리’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무튼, 주말’이 2박 3일 동안 전국 출렁다리 9곳을 직접 관찰했다. 관광객을 만나 보니 인기 비결은 간단했다. 더 길면 주목을 받는다. 더 무서우면 입소문을 탄다. 주변 관광지와 맛집, 접근성도 중요한 요소다.

◇출렁다리도 양극화

지난 19일 오후 3시 전남 곡성군 대황강 출렁다리. 30분 만에 나타난 부부 한 쌍이 출렁다리를 건너더니 곧장 돌아왔다.남편 윤서진(47·충남 서산)씨는 “곡성군 장미축제에 왔다가 들렀는데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출렁거리지도 않네”라고 아내가 중얼거릴 때 ‘휘이잉’ 바람이 힘없이 불었다. 부부는 도착 5분 만에 차를 타고 떠났다. 2016년 개통 당시 국내 하천에서 최장 길이(185m)였다는 표지판을 볼 새도 없었다.

반면 지난 21일 오후 3시 충북 진천군 초평저수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주차장에는 고속버스 15대, 승용차 약 250대가 있었다. 지난달 새로 생긴 출렁다리 ‘초평호 미르309′를 찾아온 인파다. 이 출렁다리는 다리를 중간에서 받치는 기둥이 없는 ‘무주탑’ 구조 중에서는 국내 최장 길이(309m)라며 홍보하고 있다. 다리에 올라가봤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비틀거리며 건너고 나서도 한참 동안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송정임(74·경기 군포)씨는 “지금껏 건너본 출렁다리 중 가장 많이 흔들려서 ‘스릴’ 있고 재밌었다”며 “주위에 소개할 것”이라고 했다.

초평호 미르309 국내 최장 출렁다리 /뉴스1

◇반짝 인기는 출렁출렁 떠나가고

출렁다리의 인기는 세월의 물결에 금세 밀려난다. 곡성군에서 100㎞ 떨어진 전남 장성군 장성호. 이곳엔 출렁다리 2개가 모여있다. 지난 19일 백기선(60·충남 천안)씨는 앞선 부부와 마찬가지로 곡성군 장미축제에 방문했지만 여기로 왔다고 했다. 곡성군은 관광객을 뺏긴 셈이다. 장성군 출렁다리는 2018년과 2020년에 각각 지어졌다. 더 젊지만 콤플렉스가 있다. 둘 다 길이가 154m로 인근 지역보다 짧다. 장성군은 호수를 길게 가로지르는 세 번째 출렁다리를 기획 중이다.

경쟁은 끝도 없고 다리 짓는 비용은 점점 더 비싸진다. 북쪽으로 100㎞ 떨어진 충남 논산시. 2021년 국내에서 가장 긴 600m짜리 탑정호 출렁다리가 들어섰다. 158억원이 투입됐는데 덜 흔들리는 게 약점이다. 길게 짓기 위해 다리 중간에 탑을 2개 세워 밧줄로 잡아당기는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 이런 탑이 없는 진천의 새 출렁다리는 더 흔들린다. 20일 논산 탑정호에서 만난 김순옥(64)씨는 “(별로 흔들리지 않아서) 출렁다리도 아니다”라고 했다. 논산은 결국 지난 1월 출렁다리 입장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나타난다. 같은 출렁다리여도 올라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으면 더 무섭고 더 재미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신 다리일수록 ‘묘수’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다리 바닥에 작은 구멍들을 뚫어 놓거나 투명한 유리를 덧댄다. 아래쪽 허공이 훤히 보이니 공포는 배가 된다. 곡성 대황강(2016년)은 다리 바닥이 막혀있다. 논산 탑정호(2021년)는 바닥 일부만 뚫려 있다. 진천 초평저수지(2023년)는 다리 전체를 ‘철제 배수구’처럼 촘촘하게 뚫어뒀다.

세월에 흔들리지 않는 출렁다리를 만들 순 없을까. 충남 예산군의 예당호 출렁다리(길이 402m)는 2019년 지어졌지만 지난 20일 오후에도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부산에서 여자 친구와 함께 방문한 박건우(24)씨는 “예산시장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다가 랜드마크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예산시장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맛집이 여럿 들어서면서 소문을 탔다. 반면 2009년 충남 청양군에서 ‘원조 출렁다리’ 격이었던 천장호 출렁다리는 20일 오후 한산한 모습이었다. 조윤경(27·경기 안산)씨는 “다른 관광지와 동떨어져 있어서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나친 경쟁은 안전 위협”

결국 출렁다리는 잠시 눈길을 끌 뿐이다. 관광지 자체의 다른 매력이 뒷받침돼야 계속 관광객을 모을 수 있다. 지자체 간 출렁다리 경쟁은 안전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더 출렁이려면 다리를 튼튼하게 잡아끄는 힘인 ‘장력’을 줄이면 된다”며 “경쟁적으로 장력을 줄이다 시공 불량 등 변수가 생기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1일 오후 4시 진천의 한 막국수 식당. 잔뜩 쌓인 그릇을 씻던 사장 임종세(60)씨가 입이 귀에 걸릴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식당 차리고 5년 동안 가장 장사가 잘된다”며 “매출이 70~80% 늘었다”고 했다. 올해도 또 다른 출렁다리가 태어난다. 경기 여주시는 남한강에 515m짜리 새 출렁다리를 짓는 중이다. 강원 춘천시도 의암호에 출렁다리를 짓는다. 전남 광양시는 세계 최장 770m 출렁다리를 기획 중이다. 임씨의 웃음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그리고 그다음 지역의 반짝 웃음에는 또 얼마나 많은 세금이 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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