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이슬람 신정체제…절대권력 최고지도자 세습되나

2024. 5. 25.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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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사망, 향후 정국
23일 이란 마슈하드 지역의 주민들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애도하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중동 정세의 혼미 보다는 이란 내부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지난 19일,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과 외무장관을 포함한 이란 고위 관리들이 악천후로 인한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란은 5일간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장례가 치러진 21일 테헤란에는 20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대통령과 고위 관료의 죽음에 울부짖었다. 이란 최고지도부는 그들의 죽음을 순교로 규정하면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도자의 은둔과 암살, 죽음을 신화화함으로써 소수 종파로서의 결속과 존재의 영속성을 유지해 온 시아파 특유의 애도 문화다.

이란 헌법 131조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 시에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하게 되고 50일 이내에 보궐대선을 치르게 된다. 이에 따라 모함마드 모크베르 부통령이 즉각 대통령 대행으로 취임했고, 6월 28일 대선투표가 치러진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누가 이란의 새 대통령이 될 것인가, 실권을 가진 최고지도자의 후계구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란 내부의 여론 향방과 개혁과 민주화를 바라는 젊은 세대들의 요구가 어떤 형태로 표출될 것인가 등으로 좁혀지고 있다.

하메네이
우선 이란 내부 권력 승계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다. 이란은 민주적으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과 의회가 헌법기구로 기능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가진 종교 최고지도자가 상위 기구로 존재하는 독특한 시아파 이슬람식 신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임면권은 물론 국회 해산권을 휘두른다. 단순한 정신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강력한 신정정치의 실현을 위해 정부와 의회를 통제하고 정부군과는 별도로 자신의 예하에 혁명수비대라는 특수부대를 거느리고 있다. 정보와 사법권도 최고지도자에 속해 있다. 고(故) 라이시 대통령은 가장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물망에 올라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은 현재 85세의 고령인 아야툴라 하메네이의 후계구도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이번에도 차기 대통령은 보수파가 집권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로써는 대통령 대행을 맡고 있는 모함마드 모크베르와 국회의장인 모함마드 바게르 칼리바프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모크베르는 금융 대기업 경영자 출신의 경제통 부통령으로 젊은 층의 뉴리더십 욕구에 적합한 측면이 있고, 테헤란 시장 출신의 칼리바프는 행정 경험과 함께 경찰청장과 혁명수비대 공군 사령관을 맡아 주류 보수층의 단단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전직 개혁 대통령 로하니 정부 당시 제1 부통령을 지낸 에스하그 자항기리의 출마설도 나온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혁적 인사의 출마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최고지도자 산하의 후보검증위원회에서 이슬람 성향이나 도덕성, 혁명정부와의 관계 등을 정밀 심사하여 개혁파는 대거 탈락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모즈타바(가운데).
하메네이 이후의 최고지도자 후계구도는 이란의 새로운 변화와 맞물려있기 때문에 대통령 선출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현재 후보로는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55) 하메네이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는 혁명수비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기득권 혁명 세력들의 안정적 국정 장악을 위한 포석으로 최적의 인물로 평가된다. 또 다른 후보로는 알리레자 아라피가 있다. 그는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위원회’의 핵심 멤버로 있으면서 오랫동안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거론되어 왔다. 라이시 대통령의 장인 아흐마드 호다도 유력 후보다. 이란 동부 도시 마슈하드의 대표 성직자로 활동해 왔다. 최고지도자 선발위원회의 또 다른 핵심 멤버인 아흐마드 카타미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과 사형집행의 주창자로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사다.

헌법 111조에 따라 최고지도자 선출의 명실상부한 기구는 ‘전문가위원회’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성직 계통의 가장 명망 있는 88명의 위원들이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

급작스러운 변고에도 이란의 이슬람 신정체제의 붕괴를 예상하는 전문가는 아직 극소수다. 아이러니하게도 강경 보수세력들의 권력 붕괴를 가장 바라지 않는 나라가 미국일지도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온건 아랍 산유국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호 전략적 경제·군사 협력체를 만들어 놓고 중동에서의 국익 극대화를 꾀하는 것이 미국 외교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이란이라는 강력한 적대세력이 당분간 건재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란 내부에서는 45년 이슬람 신정 체제에 대한 실망과 염증, 가혹한 경제제재로 인한 극심한 민생파탄 문제로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적 상황의 호전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절대적이다. 당분간 신정체제가 유지되더라도 정부만은 개혁적 정권이 등장해 미국과의 화해와 핵 협상을 통한 경제 제재의 완화를 시작으로 점진적인 개혁, 개방을 이루어가는 것이 지금 이란에 꼭 필요한 과제이고 희망이란 생각이다.

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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