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몰이해

박준 시인 2024. 5. 2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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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박준의 마음 쓰기] (4)

잘 모르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입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고 출판사 편집자로 작가들의 책을 만들며 살아왔지만 제게도 시는 어렵기만 합니다. 어려워도 아주 희한하게 어렵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평범한 낱말로 이뤄져 있는데 심오한 철학 용어가 담긴 문장도 아닌데 죽 읽고 나면 내용과 의미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아 벙벙해집니다.

시와 문학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예술 장르를 접할 때도 그렇습니다. 한 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한 폭의 회화를 바라보며 저는 자주 머리를 긁적입니다. 생각해보면 세상 중요한 것들 앞에서 늘 같은 방식의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먼저 사람이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가족이나 친구라고 해서 혹은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서 서로의 전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숱한 시간을 넘어 지금에 이르는 동안 어떤 환한 순간과 멍든 기억을 담아두었는지 익히 알고 있지만 막상 상대방이 툭툭 내보이는 말과 행동 앞에서 고개를 내젓습니다. 이럴 때면 상대는 여느 행인보다 더 멀고 낯설게 다가옵니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리고 사랑도 그렇습니다. 분명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인데 연유와 기원을 찾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어떤 면모는 나와 비슷해서 좋고 또 어떤 면모는 나와 반대여서 좋습니다. 예고나 기색도 없이 정연한 논리나 근거도 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한 시절 전부처럼 품었던 사랑의 마음은 어느새 기울고 스러집니다. 어떤 면모는 나와 비슷해서 싫고 또 어떤 면모는 나와 반대여서 싫습니다. 그토록 뜨거웠던 애정이 한순간 식어버리는 일, 차라리 상대가 먼저 큰 실언이나 잘못을 해온 경우라면 다행입니다. 당장은 슬프고 고통스럽겠지만 이는 내 마음 밖에서 들이닥친 것이니 당분간 굳게 걸어 잠그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혹은 나의 잘못으로 사랑이 멀어질 때가 더 많습니다. 이는 내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이니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괴로움이 사라질 때까지 나 자신을 마냥 미워해야 합니다.

한 편의 시나 예술 작품 앞에서 사람이 보이는 낯빛과 태도는 타인은 물론 자신을 마주할 때도 이어집니다. 잘 모르는 것들 앞에서 굳은 얼굴로 돌아설 수도 있고 잘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을 알고 정직하게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예술과 사람과 사랑은 지식의 영역이 아닙니다. 한번 알았다고 해서 외우거나 익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대상을 무시하거나 멀리 치워둘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를 계속 가져보는 것. 곁에 두고 종종 들여다보는 것. 그러다 보면 눈앞이 넓어지고 환해지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바로 관점(觀點)이 생긴 것입니다. 예술 작품과 타인과 사랑의 마음이 그러하듯이 세상에서 내가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유일해지는 순간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백석 시 ‘흰 바람벽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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