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의 ‘먼로’ 존스의 ‘성조기’…찐 팝아트가 왔다
아메리칸 팝아트 거장전
전시는 1960년대 미국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활발히 교류한 미술가 8인의 작품 180여 점을 선보인다. 이들 8인은 워홀, 리히텐슈타인, 존스 외에 일상의 오브제를 이용해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작업을 한 로버트 라우셴버그(1925~2008), 공산품 같은 느낌의 여성 누드로 유명한 톰 웨셀만(1931~2008), ‘LOVE’ 이미지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로버트 인디애나(1928~2018), 광고판 같은 이미지들을 기이하게 결합한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 하트와 공구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로 알려진 짐 다인(88)이다.
씨앤블루 강민혁 오디오 가이드 참여
이 전시는 몇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 팝아트 작품들을 더욱 통통 튀어보이게 하는 벽면 구성과 명랑하고 산뜻한 벽면 색채들이 인스타그램 사진을 무척 잘 받는 전시 전경을 만든다. “전시 디자인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컨텐츠로드의 전재성 본부장은 밝혔다. 둘째, 그렇다고 단순히 사진 찍기 좋은 전시로 전락하지 않도록 팝아트와 각 작가들의 특성 및 활동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충실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팝아트가 먼저 출현한) 영국의 팝아트는 소비주의와 대중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미국 팝아트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미국의 팝아트가 당시까지 미술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팝아트는 기존의 미술 개념을 거부한다는 점과 일상의 사물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역설·풍자·유머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20세기 초의 다다이즘까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팝아트는 대중매체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이들의 생산방식을 미술에 도입했다.” 같은 서문의 설명은 매우 잘 된 요약이라 미술사 입문자들의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전시 작품은 유일본이 아닌 실크스크린과 석판화 등의 판화 및 오리지널 포스터가 대다수를 이루는데, 팝아트 자체가 이러한 복제 가능한 예술의 형식을 취한 경우가 많았음을 감안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작품들 중에 워홀이 록밴드 롤링스톤스, 가수 다이애나 로스 등의 음반 커버를 위해 제작한 9점의 판화들이 흥미롭다. 또한 리히텐슈타인이 실험적인 정치풍자소설 『장정에 오른 마오의 모험』의 표지를 위해 제작한 마오쩌둥의 초상 석판화, 재스퍼 존스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反戰)운동 ‘모라토리엄’을 위해 디자인한 오렌지색과 녹색의 성조기 포스터 등이 인상적이다.
전시의 또다른 하이라이트는 ‘원 센트 라이프’ 시집의 삽화 판화들이다. 이 시집은 중국계 미국인 시인 겸 화가 왈라스 팅이 그의 시집을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의 삽화와 함께 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추진해 만들어진 것이다. 워홀, 리히텐슈타인, 웨셀만 등의 판화 작품이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196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자폐스펙트럼 화가 특별전도 마련
한편에는 자폐스펙트럼 화가들의 특별전도 마련되어 있는데,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러한 작품들 중에는 윤진석 작가의 시계 그림들이 있다. 화폭에 다양한 벽시계가 각각의 특징을 잘 요약한 형태와 독특한 색채로 그려져 있고 그 시계를 관찰한 장소(병원·가게·음식점 등)가 그림 옆에 글로 쓰여 있다. 4살 때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작가는 다른 사람을 대면하고 눈을 맞추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대신 낯선 장소에서 그곳에 걸린 벽시계에 집중하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샤프로 평면적으로 그린 로봇 군상이 마치 고대 상형문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김경두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이 오티즘(자폐스펙트럼) 작가 특별전은 후원의 차원이다. 퀄리티가 뛰어나 작품 판매도 하는데 판매대금은 고스란히 작가들에게 돌아간다”라고 ㈜컨텐츠로드의 임정규 CEO는 설명했다.
‘아메리칸 팝아트 거장전’은 9월 18일까지 계속된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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