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인구라도 모여 사는 압축도시, 지방 소멸 해법이다

2024. 5. 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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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처음 인터넷이 도입되었을 때 한국은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었던 나라 중 하나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 요소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오밀조밀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넓은 들판에 드문드문 농가가 있는 지역에 인터넷을 설치한다고 하면 그 비용이 어떠할까? 일단 인터넷 케이블을 깔아야 하는데 평균적으로 농가 사이의 거리가 100m라고 한다면 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 100m의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인구 밀집한 아파트가 IT 강국 비결

도야마시는 노면전차등 공공교통망을 활성화하고 그 주변으로 도시 기능을 모으는 압축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사진 도야마시]
농가까지 아니더라도 단독 주택지역에 인터넷을 설치한다고 생각해 보자. 역시 단독주택 사이의 거리가 최소한 10m라고 하면 한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10m의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층 건물에 80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라면 세대 간의 거리가 불과 수십㎝ 벽 하나일 것이고, 이런 아파트 80가구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은 들판의 농가 한 곳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보다 적을 수 있다. 즉, 인터넷을 설치하는 비용이 아파트의 경우 현저히 낮아지기 때문에 통신회사는 큰 부담 없이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할 것이며, 아파트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경제학 원리이지만, 여전히 어떤 첨단 경제 이론보다 강력한 설명력을 현재에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수록 그 생산 원가가 내려간다는 경제학의 원칙이다. 예컨대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10대를 만들 때 한 대당 생산 비용이 1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차를 1만 대 생산하면 한 대당 생산 비용은 1000만원으로 떨어질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이 규모의 경제다. 달리 말하자면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10명뿐이라면 자동차 가격이 1억원이 넘어야 하지만, 자동차를 살 소비자가 1만 명이라면 1000만원에도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자꾸 서울이 있는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많이 빽빽이 모여 사는 수도권이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곳에 아주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 어떤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든지 구매자가 많으므로 판매량이 늘어나서 강력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게 된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모여 살고 있으니 인터넷을 설치하든, 전기를 공급하든, 가스나 수돗물을 공급하든 한 번에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 그 비용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더구나 도시의 주민들이 단독주택도 아니고 성냥갑처럼 층층이 쌓인 형태로 사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이런 규모의 경제가 더욱 극대화되어 모든 비용이 더욱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거주하면 층간 소음으로 불편을 겪게 되고, 자녀들이 뛰어놀 수 있는 개인 정원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부합하는 주거 형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도 단독주택에 비해서 아파트의 가격이 높은 이유도 이런 각종 편리한 서비스가 규모의 경제 원리에 의해서 낮은 가격에 제공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이 도난을 방지하려면 독자적으로 방범 서비스를 구매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만만치 않지만 아파트에서는 100가구 당 CCTV 한 대를 설치하고, 200가구 당 경비원 한 명 고용하면 완전한 안전이 보장되는데 이 또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CCTV 한 대와 경비원 한 명이 수백 가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의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살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이라면 엄청난 재산가 정도 돼야 CCTV와 경비원의 고용이 가능하겠지만 아파트에서는 일반 서민도 이런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도시와 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사실이 규모의 경제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비수도권 지방이 소멸해 가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큰 문제다. 규모의 경제라는 큰 장점을 지닌 서울과 수도권을 비수도권 지역이 이기기는 어렵기에 지방 소멸의 해법은 많지 않다. 하지만 지역 발전의 열쇠 또한 규모의 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 주변 10㎞ 이내에 아무도 살지 않는 외진 농촌 마을에 주민 10여 명이 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비록 주민의 숫자가 10명에 불과하지만 이 마을에는 전기, 수돗물, 전화, 인터넷이 당연히 공급돼야 한다. 또 이 마을을 담당할 경찰이 필요하고 소방관이 필요하며, 우체국도 필요하고 구급차가 단시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 마을에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인근 학교까지 스쿨버스를 운행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을까지 진입할 수 있는 도로와 다리 그리고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 서비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모든 것이 최소한 10㎞ 이상의 거리를 넘어서 제공돼야 할 것이니 경제학적으로 그 비용은 엄청나다. 현재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재정 부담이 늘어만 가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10명 미만의 수많은 마을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생각해 볼 문제다. 설사 제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에 투입되는 정부의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의 부채로 남게 되기 쉽다.

1㎞ 도로 주변 20만명 살게 해 성공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외진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의 주민을 조금이라도 도시 지역으로 모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방 도시의 발전에도 유리한 전략이다. 일본의 도야마시에서 시작해 큰 성과를 낸 ‘압축도시(compact city) 전략’이 있다. 도야마시는 서울시의 2배 면적을 가졌지만 인구는 40만 명에 불과하다. 솔직히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밀도가 아주 낮은 것이다. 그래서 도야마시에서는 40만 인구를 도심 수㎞ 이내의 지역으로 모으려는 정책을 폈다. 즉, 도야마시 전체가 도쿄처럼 번화가가 될 수는 없지만, 도야마시 인구의 태반을 하나의 거리 주변에 빽빽하게 모여 살게 함으로써 도쿄와 같은 거리 하나는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왜 이것이 필요할까? 길이가 1㎞ 정도인 도로 주변에 2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살더라도 동경 못지않은 번화가를 이룰 수 있다. 상당히 맛 좋은 식당과 세련된 옷 가게가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를 하는 식당이 들어서더라도 40만의 인구가 서울 면적의 2배가 되는 곳에 흩어져 있다면 시민들이 이 식당을 방문하기 힘들겠지만, 작은 거리 주변에 20만이 모여 산다면 그 20만의 인구가 10분 정도 걸어서 맛난 지역 식당을 매주 방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에 의해서 좋은 식당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멋진 옷 가게도 20만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 거리라면 지방 도시라도 문을 열 것이고 말이다.

빽빽이 모여 있는 20만 명의 사람들이 있는 지역이라면 작은 병원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고, 좋은 학교와 교통 통신 시설도 낮은 가격에 제공이 가능해질 것이다. 모두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 자신의 고향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 노력은 대부분 자신의 고향 지역에 수도권의 기업을 이주시키고자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잘 알다시피 기업의 경영진이 각종 혜택을 노리고 지방으로 이주하고자 하더라도 직원들이 모두 수도권의 편리함을 버리고 지방으로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지방 이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그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지방이 발전하겠지만 이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논쟁과 같다. 지방도시가 먼저 작지만 번화한 지역을 만들어서 좋은 식당, 가게, 학교, 병원이 생겨야 기업이 직원들을 설득해서 이주가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방 도시 중에는 도야마시의 압축도시 전략이 성공한 것을 보고 이 정책을 시작하는 곳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저 먼 서울과 수도권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방 도시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방의 도시들이 남은 인구를 모두 작은 지역으로 집중시켜서 스스로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수도권의 사람들이 수백㎞ 이주해서 자신의 지방도시로 오기를 바라면서 지방 도시의 사람들이 수㎞를 이주해서 도심지역에 이는 것은 거부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균형 발전은 대한민국 미래의 큰 과제이다. 하지만 이런 지역균형 발전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사람들을 흩어 놓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규모의 경제에 반하는 행동이 될 것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비수도권 지역으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방에 남은 인구를 좁은 지역으로 모아서 각종 비용도 절감시키고 번화한 거리를 하나라도 만들어서 젊은 인구에게 매력적인 각종 편의 시설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당신의 경제 IQ를 높여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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