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의대증원 '결실' 봤지만…'전공의 없는 병원'은 해결과제

김병규 2024. 5. 2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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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심있게 밀어붙인 정부, 집단사직으로 저항한 의료계…'숙의'는 없었다
'의대교수 참전·총선 정국·법원 결정' 등 변곡점…의정 강대강 대치
'전공의 과잉의존' 폐부 드러나…'전문의 중심 병원' 등 의료개혁 과제
'항상 함께...'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24일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승인하면서 의대 증원 계획 발표 후 100여일 만에 증원이 확정됐다.

정부는 의료계의 반대에도 뚝심 있게 밀어붙여 1998년 이후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라는 결실을 이루게 됐지만, 의료개혁의 당사자 중 하나인 의료계와 함께 '숙의'를 통한 증원을 추진하지는 못했다.

의사들은 전공의 집단사직과 이탈,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 등으로 거세게 반발했으나, '증원 백지화' 주장만 반복하면서 정부와 논의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의정(醫政)이 강대강 대치를 계속하는 가운데 전공의에 대한 과잉 의존이나 부실한 공공의료 같은 의료시스템의 폐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증원 확정으로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더 낮아진 가운데, 정부는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 연착륙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가운 벗은 의사들 (익산=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의료계 "1명도 못늘린다" vs 정부 "흔들림없는 의료개혁"

정부는 지난 2월 6일 2025학년도 입시부터 5년간 의대정원을 2천명 증원해 5천38명씩 뽑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증원 추진을 언급한 지 1년 4개월 만이었다.

당초 작년 10월 증원 규모를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의료계의 반말을 고려해 의대가 있는 대학들을 대상으로 증원 수요조사를 한 뒤 증원 계획을 구체화했다.

정부 발표 이후 의료계는 요동쳤고, 전공의들은 증원 계획에 항의하며 2월 20일부터 사직서 제출과 함께 의료현장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90%가 넘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이탈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의대생들도 '동맹휴학'을 시작했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 40개 의대의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1만626건에 달한다.

후배인 전공의와 제자인 의대생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의정 대치에 '참전'했다. '후배 보호'나 전공의 없는 병원에서의 누적된 피로도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반발 성격이 컸다.

3월 25일부터 각 의대에서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행렬이 이어졌고, 주 1회 외래진료 휴진과 수술 중단 등 '셧다운'도 실시됐다.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졌지만, 정부는 '기계적 법집행'이라는 원칙 대응을 강조하며 강경했다.

전공의 등에게 업무개시(복귀)명령, 진료유지 명령 등을 내렸고 이탈 전공의에 대해 3개월 면허정지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처분 절차에 돌입했다. 의협 비대위 간부 등을 전공의 집단사직을 교사한 혐의로 고발했고, 일부에 대해서는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의정이 각자 내는 목소리는 컸지만, 대화는 좀처럼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질 때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강조했고, 의사들은 대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커져도 '증원 백지화'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의료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와 증원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했다고 주장하는 정부에 대해, 의사들은 의사들과 제대로 된 협의를 하지 않은 졸속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애치환의 마음으로'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대화 여지 있었지만 결국 '평행선'…각자 목소리 내기 바빴던 정부·의료계

대화 시도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27년 만의 증원'이라는 무게에 걸맞은 숙의도 없었다.

정부와 의사 단체들은 전공의 집단행동 시작을 전후해 2월 말 여러 차례 TV토론에서 마주했지만, 각자 주장만 앵무새처럼 얘기하는 데 그쳤다.

정부는 2월 29일까지 복귀하는 이탈 전공의는 정상 참작하겠다며 마지노선을 제시했지만, 복귀 전공의가 늘기는커녕 이탈자만 늘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전공의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제안했지만, 만남의 자리에 얼굴을 비춘 전공의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와 정부 사이 중재자로 나서며 주목받기도 했으나,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휴진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하면서 중재자보다는 '당사자'로서 증원 백지화 주장을 하는 데 집중했다.

3월 말에는 4·10 총선을 앞두고 대화 모드가 잠시 조성되기도 했다. 여당이 선거 판세에서 밀리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교수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와 만난 것이다. 이어 정부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며 의료계를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본격적인 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대화의 전제조건에 대한 생각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하겠다면서도 '의료계가 통일된 목소리로 근거있고 합리적인 안을 가져온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고, 의료계는 '증원 백지화'가 통일된 안이라고 맞섰다.

4월 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비대위원장 사이의 면담이 성사돼 기대를 모았지만, 면담 후 박 위원장이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적으며 파국으로 끝이 났다.

정부는 지난달 말에는 증원분의 50~100% 범위에서 대학에 '자율 모집'을 허용하며 한발짝 물러나기도 했는데, 의정 갈등 상황에서 증원 규모와 관련한 정부의 유일한 양보였다.

대화와 숙의가 실종됐던 의대 증원 추진의 매듭을 지은 것은 사실상 법원의 결정이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6일 의료계가 의대 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각하·기각 결정을 내렸다.

원고의 적격성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던 이전의 비슷한 집행정지 신청 건과 달리 재판부는 정부에게서 받은 의대 증원 근거자료를 살펴봤고, 결국 '의대 증원에 제동을 걸 경우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이 중대하다'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 지켜보는 내원객들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대부분 전공의 복귀 안할 듯…정부, '의료개혁' 박차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서 그동안 '증원 백지화'를 일관되게 주장해온 전공의들의 상당수가 병원에 결국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증원 확정을 계기로 다음 주 중 전공의 복귀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강경책과 회유책을 함께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강경책으로는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개시, 유화책으로는 일정 시점까지 돌아오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감경 등이 거론된다.

정부가 전공의들이 대부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이런 대책에 고심하고 있는 것은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만큼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의도다.

수련생 신분인 전공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는 것은 정부의 의료개혁과 일치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의사 중 전공의의 비중은 빅5 대형병원의 경우 40%가량에 달할 정도로 큰데, 정부는 이를 2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의대 교수 등 남은 의료진에 대한 과부하 상태가 해소되지 않아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정부는 이미 전공의들을 대체할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현장에 투입하고 합법화에 서두르고 있는데, 전공의 이탈로 인한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울 것으로 기대한다.

과도한 근무시간이 전공의들의 불만 중 하나였던 만큼, 전공의들의 과도한 근무 부담을 줄이는 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을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단축하는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을 다음 주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장기적으로 연속근무 시간을 24시간으로 낮추고 주당 근로시간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필수의료 수가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으며, 비급여 관리 강화, 대형병원 쏠림 해소를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 증원은 정부 의료개혁의 시작이다. 시간이 지나서 2024년을 돌아보면 전공의들이 이탈한 해가 아닌 의료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뀐 해로 기억될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의료개혁 완수에 역량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기다리는 환자들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2024.5.7 ksm7976@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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