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와 지속가능한 삶 [1인칭 책읽기: 녹색평론]

이민우 기자 2024. 5. 2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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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다시 돌아온 「녹색평론」 1주년
기존의 틀을 깨자는 과감한 주장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30년 전 녹색평론은 포기하기 어려운 것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며 창간했다.[사진=펙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년이나 삼십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 1991년 11월 1일, 녹색평론 창간호 창간사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김종철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창간사에 담은 이 이야기는 30년이 지나고도 3년이 더 지났다. 우리는 아직 그럭저럭 살고 있다. 물론 5월 15일에는 강원 북부에 대설주의보가 발효했고, 그 사이 팬데믹을 돌파해야 했다. 이제 환경 문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피부 질환으로, 누군가에게는 집을 덮치는 수해로 실질적인 위협이지만, 어찌저찌 살고 있다. 잘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고는 있다.

벽에 붙이는 수직형 화분을 사서 발코니에 청포도, 상추, 토마토, 수박, 새싹식물을 심었다. 자주 먹고, 기르는 것을 직접 재배하고 싶다. 식물들은 이제 제법 많이 자라 베란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다.

물론 야채와 과일 가격이 많이 올라서 그런 것도 있고, 시간이 덜 드는 취미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삶을 산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기대이기도 하다. 꼭 거대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몇개월 뒤면 토마토 몇알을 따서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녹색평론의 발간사는 일종의 '요한의 묵시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은 예언서처럼 보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위한 방법론처럼도 읽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문명의 종말론까지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건 1990년대 이후 우리 삶을 뒤흔드는 담론은 생태주의와 신자본주의였다는 점이다. 녹색평론의 창간사가 아직까지 유효한 이유다.

[사진=녹색평론 제공]

녹색평론이 스스로 밝히듯, 녹색평론은 환경운동 잡지에 머물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녹색당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며 경제성장의 논리를 거부하는 운동, 지속가능한 삶,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교본으로 사용했다. 또한, 기본소득, 지역화폐, 지방자치 등의 정치 현안을 의제화하며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제를 제시해 왔다.

나에게 녹색평론의 의제는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일정 부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산업혁명과 경제혁명 시기의 발전의 과실을 누렸던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누릴 것을 모두 얻고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후손들에게는 수행자 같은 삶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녹색평론을 읽는다. 녹색평론에서 나오는 담론들에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우리의 삶이 뒤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알고 있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면서 단순히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로 바꾸고, 분리수거 따위를 잘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구조 자체를 깨자는 이야기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삶에 한 걸음 걷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이런 외침이 얼마나 덧없이 들릴 것인지도 나는 알고 있다.

김종철 발행인은 2021년에 사망했다. 이후 녹색평론은 1년간 잠시 휴간에 들어갔다가 2023년 계간지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올해는 녹색평론의 복간 1주년이 되는 해이자 김종철 발행인이 세상을 떠난 3주기다. 그리고 나에게는 청포도와 상추, 수박을 기르고 수확할 해이기도 하다.

녹색평론은 커다란 질문이다. 녹색평론은 과감하게 지금의 신자본주의와 세계화를 그만두자고 한다. 어쩌면 노동, 생태, 사회적 갈등 모두 애초에 기존의 룰에서 벗어나자는 이들의 말이 해답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 없고 그들에게 있는 것은 작은 믿음이다.

녹색평론을 이끌어 왔던 건 믿음이다.[사진=펙셀]

생태주의적 삶을 국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 인근 국가인 중국과 일본은 선택할까. 전 인류적으로 설득이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누려왔던 이 자본적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설득이 가능한가. 이미 망가진 시스템을 가져온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포기하라고 요청하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수많은 의심은 모두 믿음의 문제다.

다시 돌아온 녹색평론의 1주년을 축하한다. 녹색평론도 우리도 살아남았다. 모두가 잘 사는 삶을 꿈꾸는 2024년. 우리에겐 아주 작은 미래를 위한 믿음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일단 난 청포도 나무를 심었다. 올해 포도가 나길 기대한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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