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연애, 학교가 도와드립니다 ‘연애의 첫 단추’

백미선 2024. 5. 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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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같은 일이 저에게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수강신청을 했죠."
순천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00 군. '연애의 첫 단추' 수강을 위해 전남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대학생들의 연애를 강의로 다룬다는 교양 수업 '연애의 첫 단추'. 가르치는 이는 누구이며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수강신청 1순위 ' 연애의 첫 단추'

문제(?)의 강의 '연애의 첫 단추'는 '제1회 전남대학교 교양교과목 개발 제안서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입니다. 학생들의 제안을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소속 교수들이 교과목으로 개발했습니다. '연애'를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의 열망에 교수님들이 응답하면서 만들어진. 첫 단추부터 남다른 강의입니다.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애의 첫 단추’ 강의


이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입니다. 학생들에게 물으니 실전 데이트 매칭이 이뤄지는 수업이라고 말했습니다. 80명 조금 넘는 수강생 모집에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분반 요청까지 쇄도하고 있다는데, 그도 그럴것이 첫 학기 수업이 마무리된 지난 겨울, 데이트 과제를 수행한 학생들 중 실제로 한 커플이 탄생하는 서사를 갖추고 말았다는 후문입니다.

강의를 설계·진행 중인 인문학연구원 한의숭, 한우리 교수를 만나, 어떤 수업인지, 정확히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물었습니다. 한우리 교수는 "이성애적인 연애에 방점이 있다기보다는 타자와의 만남에 방점을 찍고 있는 과목 "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인기의 비결에 대해 묻자 한의숭 교수는 "수업 목표가 계획서 상에 제시되어 있으나, 실제 학생들이 이를 꼼꼼하게 숙지하고 들어오지는 않는 것 같다." 라고 답했습니다. 데이트 커플을 강의 시간에 공식적으로 매칭시킨다는 점이 솔깃하겠지만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하는데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애의 첫 단추’ 조별 과제 발표 모습


수업 계획서를 들여다봤습니다. 애착이론, 역사적 관점, 사회학, 문학으로 바라본 연애와 결혼, 대화법 익히기 등등…. 이론 수업과 토론으로 문을 연 강의는 미디어 연예 프로그램 모니터와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조별 발표로 이어집니다. 끝으로 학기 초에 매칭된 데이트 커플이 3번의 데이트 과제를 수행한 뒤 결과 보고서를 전체 수강생 앞에서 발표하면서 한 학기가 마무리됩니다.

■연애 귀찮다는데… 수업은 인기?

초식남녀, 모태 솔로, 연애세포 사망 …연애하지 않는 20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연애에 흥미가 없다 못해 귀찮다고까지 말하는 20대를 다루는 각종 통계들은 이미 홍수를 이룬지 오래입니다.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결혼에 부정적인 젊은 층이 늘어나고, 연장선에 있는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어색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선 정작 연애를 (사실은 만남과 관계를) 다룬 수업의 인기가 이렇게나 높다니. 20대들의 생각과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교수님들이 느끼는 20대들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대학생들이 연애하지 않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한우리 교수는 SNS와 노출, 타인의 시선 의식 그리고 부족한 자원을 꼽았습니다. "SNS 같은 것이 많이 발달하고 서로 남을 관찰하고 나도 관찰 당한다라는 인식이 굉장히 크고…. 연애를 할 때 남한테 보여줘야 하는 그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많이 신경 쓰는데 그런 부분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호텔에서 외식을 해야 될 것 같고 오마카세를 먹어야 될 것 같고 이런 식의… 그런데 물질적인 시간적인 자원이나 여유가 부족하고, 취업에 대한 압박 이런 것도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자신을 계발하는데 몰두하는 편이 낫다 이런 식의 인식이 있다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굉장히 관계에 대한 그런 욕구가 강하고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인간의 되게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 중에 하나인데 그런 것들이 이제 조금 꼭 연애라는 특정한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서 대학에서 더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전남대학교 인문학연구원 한우리 교수


한의숭 교수의 분석도 비슷했습니다. "각종 미디어 소셜 매체를 이용한 비대면 소통을 즐기는 성향이 강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면 소통을 비롯한 사회화 방식에 부담을 느끼고, 타자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부담, 자신감 부족, 불안 등이 생겨 야기된 현상" 이라는 겁니다. 교수님 두 분의 긴 답변을 기자는 "팍팍한 삶 속에서 귀찮음을 강요받았다 " 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매체 발달로 원하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정작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소통과 만남을 포기하는 현실이라고 할까요.

■ 연애의 '기능' 주목해야

'연애하지 않는 사회'가 왜 문제인지도 물었습니다. 한의숭 교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없음'은 '소통부재'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곧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혐오,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애를 한다고해서 갈등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호 존중과 이해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젠더갈등을 비롯해 점점 깊어지는 우리 사회의 골을 조금은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한 교수는 20대가 마음껏 연애할 수 있도록 물질·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일자리 등 20대를 위한 사회적 지원에 세심해야하는 이유는, 이들의 만남과 연애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연애의 첫 단추를 잘 끼워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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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선 기자 (b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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