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문화전쟁’에 무지한 보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4. 5. 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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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공화·민주 양 진영의 가치관 충돌을 가리켜 문화전쟁이라는 말을 쓰지만, 여기선 문화전쟁을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문화 분야에서의 정치적 싸움"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로 하자.

한국에서 흥미로운 건 물적 기반에선 유리한 보수가 문화전쟁에선 압도적 열세임에도 그런 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보수 몰락'이라는 신세타령을 즐겨 한다는 점이다.

문화전쟁에 대해 갖는 관심이 진보는 과잉인 반면 보수는 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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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미국에선 공화·민주 양 진영의 가치관 충돌을 가리켜 문화전쟁이라는 말을 쓰지만, 여기선 문화전쟁을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문화 분야에서의 정치적 싸움"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로 하자. 한국에서 흥미로운 건 물적 기반에선 유리한 보수가 문화전쟁에선 압도적 열세임에도 그런 불균형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보수 몰락'이라는 신세타령을 즐겨 한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참여했던 가수 김흥국은 "좌파 연예인들은 (선거 지지에) 앞장서는데 우파(연예인)들은 겁먹고 못 나오고 있다"며 "왜냐? 우파 연예인들 목숨 걸어도 누구 하나 보장됐나"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국 할리우드 연예인 중엔 민주당 지지자가 훨씬 많다. 대중 예술인들이 중시하는 진보적 가치 추구에서 민주당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한국의 경우엔 진보적인 사람들이 미디어를 포함한 대중문화 소비와 참여를 더 많이 한다는 설이 있다. 소비자 파워가 진보 우위라면 진보적 연예인들이 비교적 더 자유롭게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즉 정치적 대의를 위해 수고한 연예인에 대한 '보장'이 시장 논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수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출판 시장은 어떤가. 보수가 너무 책을 읽지 않아 독서 시장이 진보 편향적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유명 저자들의 베스트셀러 판매부수만 대충 비교해 보더라도 수긍할 수 있는 문제다. 진보진영엔 정치 베스트셀러를 양산해 내는 유명 저자가 많지만, 보수진영엔 "누가 있더라?"라고 한참 생각해야 할 정도로 양 진영의 격차가 크다.

최근 주간경향이 22대 총선 당선자들의 유튜브 채널을 전수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300명 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사람은 235명이었는데,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당선자 171명 중 164명이 유튜브를 개설했지만, 국민의힘 당선자 108명 중 개설자는 66명이었다. 구독자 수 기준으론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약 5.2배였다.

공영방송은 어떤가. 나는 지난해 8월 "'공영방송 독립'을 윤석열의 업적으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내부적인 충성 경쟁으로 인한 무리수가 저질러지면 정권이 흔들거릴 수 있을 정도의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송 분야에서조차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려는 윤 정권의 거친 행태는 경악스럽다.

시민운동은 어떤가. 월간조선 5월호에 실린 "우파, 장기적 헌신 없이 '반짝 운동'으로 공천·공직 얻으려 해: 25년 시민운동가가 본 좌우파 시민운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보라. 시민운동에서도 진보 쪽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 기사는 "지금부터라도 우파는 사람에게, 시민단체에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보수파는 탁현민이 주도한 문재인의 이미지 정치가 '사기'였다는 비판은 잘하지만, "왜 보수진영엔 탁현민처럼 그렇게 '사기'를 잘 치는 인재가 없는가"라는 의문을 갖진 않는다. 오랜 세월 관변문화의 전통에 길들여진 탓일까? 최소한의 투자조차 하지 않은 채 거저 먹으려 드는 공짜 근성이 농후하다.

문화전쟁에 대해 갖는 관심이 진보는 과잉인 반면 보수는 과소다. 아니 아예 씨가 말랐다. 문화전쟁은 민심을 읽어내고 이용하는 문화적 감각을 겨루는 싸움이기도 하다. 윤 정권의 비극은 그 감각이 결여된 윤석열이 모든 걸 다 아는 척 강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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