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신약·색감 바꾸는 OLED, 계산화학으로 가능해진다

이채린 기자,박정연 기자 2024. 5. 2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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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자협회-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미디어아카데미
발표 중인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백무현 부연구단장. IBS 제공

"화학 반응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계산화학'을 적용하면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해 약값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색감과 디자인이 혁신적으로 바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전자기기 모습 자체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24일 서울역 인근에서 '화학에도 계산이 필요해-컴퓨터로 화학 연구 레시피 찾는다'를 주제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백무현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부연구단장은 계산화학이 앞으로 가져올 획기적인 변화에 대해 소개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는 계산화학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를 가려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산화학이란 이론화학의 문제를 컴퓨터를 활용해 다루는 화학의 한 분야다. 과거에는 원하는 물질을 생성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수만 번이 넘는 실험으로 확인해야 했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며 화학 반응의 중간체 형성, 전환 상태 특성, 반응 속도 등을 분석해 특정 화합물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최적화하고 새로운 반응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슈퍼컴퓨터의 성능 향상으로 연구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서 계산화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디스플레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계산화학을 이용해 OLED 최적 소재를 찾고 있다. OLED는 전기를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로 만든다. 특정한 색깔을 내는 발광층과 전자가 이동하는 수송층의 유기물질이 빛을 내는 최적의 조건을 찾는 설계가 디스플레이 성능을 좌우한다. 최근 OELD에 쓰이는 청색 소자의 안정성을 높이는 유기물질을 찾는 연구가 활발한데 여기에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등 계산화학을 활용한다. 

백 부연구단장은 "계산화학을 통해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자 안의 전자 구조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자끼리 부딪치면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등의 규칙을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도 2018년 계산화학을 이용해 새로운 치료제 탄생의 길을 열었다.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탄화수소'로 신약이나 화학소재의 원료가 되는 '감마-락탐' 화합물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논문을 사이언스에 실었다. 

감마-락탐은 뇌전증 치료제인 '레비티라세탐'이나 혈관형성 억제제인 '아자스파이렌'과 같이 복잡한 유기화학물의 구성성분으로 의약품·합성화학·소재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감마-락탐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상온에서 반응도가 낮아 합성이 어려웠다. 연구팀은 합성에 쓸 최적화된 촉매를 계산화학으로 분석해 예측했다. 

백 부연구단장은 연구 과정에서 대표적인 계산화학 프로그램인 '밀도 범함수 이론'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밀도 범함수 이론은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모두 고려하는 대신 밀도로 전자의 분포를 계산해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계산 화학에서 분자와 고체의 전자 구조를 계산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결국 반응 효율이 높은 금속 기반 촉매 '이리듐 촉매'를 개발해 쉽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백 부연구단장은 "계산화학을 이용해 분자 단위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이 합성이 안 되는 이유라는 점을 파악했고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백 부연구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전극에 가하는 전압의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 '작용기'의 화학반응 특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작용기는 유기화학에서 분자들의 특징적인 화학 반응을 담당하는 부분이다. 이전까지는 하나의 작용기가 정해진 특정 화학반응만을 줄 수 있었지만 이번 연구로 전압 조절만으로 다양한 작용기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계산화학은 안전한 화합물을 만드는 데도 필수적이라며 백 부연구단장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언급하며 강조했다. 화합물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 말 서독에서 처방없이 살 수 있는 입덧약이었다. 당시 이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가 없거나 기형적으로 짧은 신생아가 태어나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백 부연구단장은 "시간이 흘러 입체화학 측면에서 탈리노마이드의 분자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계산화학이 발달하면 이같은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화학의 하위 학문인 입체화학은 분자의 구조를 형성하는 원자들의 상대적인 공간적 배열과 그들의 조작에 대한 연구를 가리킨다. 

백 부연구단장은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계산화학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겠지만 화학 연구에 넣어야 할 데이터양이 너무 많다"면서 "실험 데이터와 계산 데이터를 적절히 활용해 양질의 데이터를 AI에 넣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IBS는 로봇을 이용해 실험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모처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IBS 과학미디어아카데미 '화학에도 계산이 필요해-컴퓨터로 화학 연구 레시피 찾는다'. IBS 제공

다음은 일문일답. 

Q. 계산화학은 알파폴드와 같은 단백질 구조 분석 도구에도 적용 가능한가.

"단백질 구조 규명을 다루는 학계에선 예전부터 논쟁이 있었다. 한쪽은 분자레벨에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해 단백질 접힘과 같은 중요한 이론을 규명하자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론은 단백질 전체의 정보를 바탕으로 통계적으로 구조를 분석하자는 것이었다. 이 때 구글 알파고를 만든 팀이 계산화학에 기반한 단백질 구조 모델을 만들었다. 삼성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계산화학 모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양질의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데이터 자체는 제법 축적됐지만 문제는 데이터의 질이다. (계산화학이) 단백질 구조 규명에 활용되기 위해선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Q. 그간 한국이 계산화학 모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지금까지는 계산화학이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만 가능했다. IBS처럼 연구단이 형성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연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앞으로 계산화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이러한 연구단 모델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

Q. 계산화학 연구가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는.

"고성능을 지닌 슈퍼컴퓨터다. 다다익선이다. 예전 미국에서 연수를 받았을 때 좋은 성능을 가진 수퍼컴퓨터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 현재 연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도 중앙처리장치(CPU) 파워 등 성능이 예정보다 획기적으로 향상됐지만 미국은 이보다 앞서나가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성능의 5배 정도 되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

[이채린 기자,박정연 기자 rini113@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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