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들은 무엇을 할까[서중해의 경제 망원경](29)

2024. 5. 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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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모습. 연합뉴스



총선 이후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에 대한 인사가 대거 진행될 예정이다. 언론에서는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보은 낙하산’을 우려한다. “주요 공공기관의 경영 실적이 누적된 채무 등으로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 없는 정치권 인사를 기용할 경우 공공기관 경쟁력을 깎아 먹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낙하산 인사는 정치적 임명을 넘어 관료 출신의 임명도 포괄해 지칭한다. 낙하산 인사는 현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정부는 정권 말기에 ‘알박기 인사’로 비판을 받았다. 오랜 기간 여러 정부에서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주요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대상과 역할, 기간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도 연구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 2022년 9월 나온 강혜진 경남대 교수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김진 박사의 논문을 보자. ‘지방공기업 기관장 특성과 다차원적 성과에 관한 연구’를 보면, 정치적으로 임용된 기관장은 조직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료 출신 기관장의 경우는 경영평가의 결과가 임명 전보다 오히려 낮게 나왔다. 둘 다 성과를 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미선 연세대 박사의 ‘공공기관 감사의 경력 유형에 따른 성과 차이 분석: 정피아와 관피아 유형별 내부통제 성과 차이를 중심으로’(2019년 12월)에서는 감사 직무에 필수적인 정치적 중립성이 (정치적으로 임명된) ‘정피아’와 (전직 관료 출신) ‘관피아’ 모두에서 훼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학계, 낙하산 인사 조직 성과에 부정적

어떤 유형의 기관장이 조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반디에라 런던정경대 교수 연구팀의 최근 연구가 참고된다. 연구팀은 브라질과 프랑스, 독일, 인도, 영국, 미국 등 6개국 최고 경영자 1114명의 활동을 매일 기록하고 이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최고 경영자들을 관리자형과 지도자형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관리자형은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를 관리하고 실행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경영자이며, 지도자형은 다양한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에 상당한 투자를 하면서 조직 전반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들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는 지도자형 경영자를 고용한 기업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두지만, 새로운 지도자가 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평균적으로 3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뛰어난 지도자가 경영해도 조직 규모가 클수록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한국의 경우 낙하산으로 내려온 기관장은 대략 임기 3년 동안 머물다가 떠난다. 능력이 있는 기관장이라 해도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갖고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어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 제약이 매우 크다. 반면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일반 직원들에게 직장은 삶의 기반이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주어진 일에 분투한다. 기관의 성과를 내는 임무는 오롯이 직원들의 몫으로 남는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과 학계의 부정적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사 관행은 왜 지속할까. 낙하산 인사가 계속 논란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 기관장을 선출하고 관리하는 인사시스템이 정비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과 자본의 관계 변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조직의 수장을 부르는 말에는 기관장과 대표자, 최고경영자 등이 있다. 이들을 총칭하는 보스라는 말은 학술용어로는 경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조직의 상층부에서 다른 구성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지칭할 때는 매우 직관적이다. 어떤 조직이든 대표자가 필요하고 완전히 평등한 조직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위계는 필요하다. 보스라는 말은 특히 위계를 전제하며, 위계는 곧 어느 정도이든 지배를 내포한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면 보스의 본질은 지배와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출현하면서 산업화 전에는 가능하지 않던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졌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생산성을 발휘했다. 여기에는 분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산 공정을 세분화하고 나누어진 공정에 노동을 반복해 투입함으로써 생산성을 아주 크게 높일 수 있다. 세분화된 공정을 관리할 누군가가 필요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산업 관계가 등장했다. 자본이 노동을 고용하면서 발생하는 지배 관계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보스의 역할은 노동을 지배하게 됐다.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이었다.

■ 기관장 인사시스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복잡해졌다. 의복과 같은 단순한 제품 생산에는 기계를 활용한 공장 관리가 중요하고 노동을 규율하는 보스의 지배적 역할이 필요하다. 반면 컴퓨터 같은 복합 제품은 외부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설계하는 등 생산 과정이 복잡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우회생산 과정이 늘어난다고 한다. 보스의 역할은 노동 지배에 머무르지 않고 내외부의 생산 과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노동의 역할 또한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산과정에서의 투입 요소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이제 노동의 역량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노동의 역량 향상에는 시간이 걸린다.

최근 기술발전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장에서 유형의 생산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수집해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 디지털 경제가 그것이다. 이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더 복잡해졌고, 보스의 역할도 지배와 관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정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직원의 역량 강화를 통해 성과를 이루어내는 조직혁신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공장에 기반을 둔 생산 경제의 수직적 지배 방식이 디지털 경제에서는 수평적 조직 관리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러한 전환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인사 시스템이다. 철새 기관장이 텃새 직원들을 잠시 지배하고 떠나는 형국이다. 단기적인 목표에 치중하게 되고 직원의 역량 강화 같은 장기적 과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이런 상황에서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지속해서 추진해야 이룰 수 있는 경영 혁신이 어떻게 가능할까?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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