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1기 신도시 정비, 목표와 현실의 '간극'
27년부터 착공? 실상은 '이주'
이주대책은 다음에…또 숫자놀음 될까?
'이주', '철거', '착공'
세 가지 용어의 뜻을 아시나요? 부동산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이 정도 뜻은 구분할 수 있을 텐데요. 오히려 국토교통부가 이 개념들을 혼용해서 쓰는 게 희한합니다. 지난 22일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선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애매모호한 목표 시기 얘기입니다.
국토부는 연말 시범지구를 선정해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3년 만에 건물을 올리는 것도 빠듯할 텐데요. 이주와 철거부터 착공으로 보겠다는 새로운 정의(?)를 내놓으면서 그 숨은 뜻에 관심이 쏠립니다.
2027년에 착공? 이주? 철거?
국토부는 경기 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등기 1기 신도시 5곳에서 총 '2만6000가구+α'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정비 선도지구로 선정하겠다고 밝혔죠. '플러스 알파(α·기준 물량의 50% 범위)'를 포함하면 3만9000가구까지 선정 가능합니다.
분당의 경우 기준 물량 8000가구에 알파(α)까지 더하면 1만2000가구가 선도지구로 우선 지정될 수 있습니다. 통합 재건축 단지 규모로 따지면 4~5개 정도로 예상됩니다. 일산은 6000가구, 평촌·중동·산본은 각각 4000가구 등으로 최대 9000가구, 6000가구까지 지정 가능하고요.
이렇게 하면 총 4만여 가구가 정비 첫 출발을 하게 되는 거죠. 규모가 상당합니다. 더군다나 목표만 보면 사업 추진도 '초스피드'로 진행될 듯합니다. 정부는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에 대해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예고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빠른 거냐면요. 지자체들이 올해 11월 선도지구를 지정하면요. 특별정비계획 수립, 조합 설립, 시행자 선정 등을 거친 뒤 이주, 철거, 착공 순으로 진행되는데요. 이 모든 걸 약 3년 만에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그럼 적어도 2년 내 설계, 영향 평가 등 각종 행정절차가 마무리돼야 하고요. 이어 통상 6개월씩 걸리는 이주, 철거도 순조롭게 진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불가능한 계획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죠.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토부는 "이주 시작을 착공으로 본다"며 엉뚱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22일 1기 신도시 시범지구 선정 계획 발표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했던 백브리핑에서 "2027년 착공이라고 한 건 이주 시작해서 철거하는 것까지 다 착공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비사업에서 하나하나 까다로운 절차인 이주, 철거, 착공을 하나로 묶어버린 거죠.
이렇게 되면 2027년 말에 겨우 이주를 시작해도 착공에 들어갔다고 봐야 하는 '기적의 해석(?)'이 나오게 생겼습니다. 만약에 일부 주민이 이주시기를 맞출 수 없고, 철거도 그만큼 더뎌진다면 터를 다지고 건물을 올리는 실제 재건축 공사기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죠. 입주 예정 시기를 맞추려면요.
결국 사업 추진을 빨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무리하게 목표를 잡다 보니 이 같은 사업에 드는 시간을 압축하는 '숫자놀음'이 돼버린 겁니다.
입주 목표도 터무니없이 빨라 보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사 기간(입주까지의 기간)을 3년으로 잡을 때 1년은 이주·철거, 2년은 공기로 잡은 것"이라며 "2027년 이주·철거 시점부터 착공으로 보고 공사기간을 3년으로 잡으면 2030년 입주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국토부는 그러면서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이주 지연 요인 중 하나인 '알박기 조합원'을 사전 차단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향후 배포할 '표준 정관'에 의도적으로 이주하지 않고 버티는 조합원에겐 사업 지연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을 포함하겠다는 거죠.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원베일리는 6개 단지를 통합해 재건축 한 단지지만 조합 정관에 관련한 내용을 담으면서 이주 지연 없이 원활하게 사업이 진행됐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단지나 동별로 버티기를 하면서 이주가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표준 정관을 배포할 때 이주 지연 발생 원인을 유발하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넣어서 지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고의 여부 판단 기준 등이 애매하죠. 사업 추진 속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로 보입니다.
4만 가구 '우르르' 이주 하면…
전속력으로 달려서 '이주' 단계에 진입한다고 해도 거기서부턴 속도를 내기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1기 신도시는 최대 기준으로 총 4만여 가구가 정비를 시작하게 되는 건데요. 이를 수용할 만한 이주 주택을 마련할 수 있을가 관건이죠.
정부는 이번 시범지구 선정 계획 발표 때는 이주 대책의 방향만 제시하고 오는 8월 세부 대책을 내놓기로 했는데요. 주민들이 가까운 곳 이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소규모 신규 개발 사업을 통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게 큰 줄기입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주민들이 이사 갈 수 있는 물리적인 권역, 생활권역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택의 수급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해당 지역 내 충분한 신규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쪽으로 가도록 유도하겠다"고 했고요.
이어 "만약 충분하지 않다면 소규모 신규 개발을 사전에 준비해서 이주가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재건축 수요도 많고 집값도 높은 분당의 경우만 봐도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인근에서 임대 물량이 나오지 않는다면 소규모로 개발할 만한 땅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가오는 입주 물량 감소도 불안 요소입니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전국 입주 물량은 올해 35만3000여 가구에서 내년 24만 가구로 30% 넘게 급감하는데요. 향후 1기 신도시에서 멸실이 발생하고 그 이주 수요까지 더해지면 공급 부족이 확 심해질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불안 요소들이 맞물리면 '전세난'까지 우려되는데요.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셋째 주(20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0.07%로 전주(0.03%) 보다 커졌고요. 서울은 전주 대비 0.10% 오르며 53주 연속 상승세입니다.
국토부는 이주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신도시 주변 개발 등을 원활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기 신도시 및 연접 지역 인허가 물량 27만4000가구, 착공 물량 24만3000가구에 달하고요. 지자체장들도 전셋값 안정 등을 위한 공급 시기 조정 등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러 보입니다. 시범지구 정비 이후도 문제거든요. 국토부는 '연도별 정비사업 선정 기준물량(안)'을 보면요. 시범 지구 2만6000가구에 이어 매년 2~3만 가구가량을 정비사업 지구로 선정할 예정입니다.
계획을 보면 △2025년 2만1000가구 △2026년 1만8000가구 △2027년 2만 가구 △2028년 2만7000가구 △2029년 2만8000가구 △2030년 2만9000가구 △2031년 3만 가구 △2032년 3만4000가구 △2033년 3만4000가구 등이죠. 10년 동안 총 26만7000가구, 최대 40만500가구를 말이죠.
이를 두고 시장에선 결국 전셋값 상승을 통해 매맷값을 올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여러모로 애매한 대책과 무리한 목표 설정이 정책의 신뢰도를 더 떨어트린 듯합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의 목표대로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긴 어려워 보인다"며 "특히 이주 대책이 관건인데 임대 물량도 신규 입주 물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세 대책도 나오기 전이라 전세난 등이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추후 전셋값이 폭등하면 매맷값을 밀어올리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그렇다고 이주 대책 등에서 지나치게 특혜를 지원하면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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