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령 논란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허점 [질문+]

류호진 노무사ㆍ김다린 기자 2024. 5. 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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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류호진 노무사의 질의응답
만연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생계와 맞물린 심각한 문제
다행히 금지법 제정했지만
괴롭힘 상사 처벌하기 어려워
대표나 혈족ㆍ인척일 때만 가능
금지법 지금보다 실효성 높여야

소소하게는 회식을 강요하거나 뒷담화를 합니다. 악질일 경우엔 욕설을 쏟거나 손찌검을 하기도 하죠. 최근엔 '개통령'으로 널리 알려진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를 둘러싼 폭로가 이어지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향한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직장에서 사람 괴롭히지 말라고 법을 만들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습니다. 과연 이 법은 날 괴롭힌 '몹쓸 상사'를 처벌할 수 있을까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금지법이 시행됐다.[사진=뉴시스]

질문 : "툭하면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너무 괘씸합니다. 본인은 업무 처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사소한 일로 욕설하고 인격모독도 합니다. 혹시 몰라서 그 상사가 했던 말을 증거로 모아두고 있던 참에, 우리나라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생긴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는데, 과연 이 법으로 날 괴롭히는 상사에 과태료나 벌금을 물릴 수 있는 걸까요."

응답 : "불가능합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괴롭힌 상사가 회사 대표이거나 대표의 4촌 이내 혈족ㆍ인척일 때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신문 사회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최근엔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씨가 직원들을 상대로 한 '갑질 의혹'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만큼 일상에 만연해 있는 비극이란 겁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 갈등을 풍자한 SNL코리아의 'MZ오피스'가 인기를 끄는 비결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과장된 코미디이긴 하지만 몇몇 장면은 고소해도 무방할 만한 수위 높은 갈등을 연출하기도 하죠. 누구나 이런 식의 갈등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겪어본 적이 있어서는 아닐까요.

당장 주변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이들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조명하는 사건은 더 심각합니다. 괴롭힘의 정도가 심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입니다.

혹자는 "회사 다니는 게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나, 고작 그런 일로…"라고 마뜩잖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만약 필자의 가족이 그런 비극을 겪었다고 상상하면 '사적 복수'를 고려할 만큼 억울함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상담 사례만 봐도 독자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악질적인 상사 근로자가 많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수준이 꽤 높다는 겁니다. 촘촘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죠.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16일부터 시행한 것만 봐도 그렇죠. 이 법은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2021년 10월 추가로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실효성이 부족하단 지적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법의 예방 효과는 그리 좋지 않은가 봅니다.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1만2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처음으로 1만건을 넘었습니다. 법 시행 첫해인 2019년 7~12월 2130건에 이어 2020년엔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요. 안타깝게도 숫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실효성 논란을 안고 있긴 합니다. 신고해도 처벌받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입니다. 가령 지난해 1만28건의 신고 중 검찰에 송치된 건은 153건이었습니다. 이중 57건만 기소됐습니다(4월 7일 기준). 비중으로 따지면 0.6%. 신고 건수 절반가량은 '법 위반 없음'으로 종결했거나 신고인이 취하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이렇게 만연한데, 왜 처벌 횟수는 적은 걸까요. 이 법의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유일한 타깃이 사용자, 이를테면 회사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처벌 조건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자와 피해를 입었거나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할 때(76조3 6항)'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를 괴롭힌 상사가 일반 직원이라면 처벌 대상이 아니란 겁니다.

가해 근로자가 회사 내규에 근거해 징계를 받거나 다른 부서로의 인사 발령을 받는 게 현실적인 처벌책입니다. 가해 근로자가 법에 따라 과태료를 내거나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는 건 현행법 체계에선 불가능하죠.

애초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결과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사용자에게만 쏠려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사업주 본인인 경우에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 범위엔 사용자의 배우자나 4촌 이내 혈족ㆍ인척도 포함합니다. 다만 대표에게 직접 괴롭힘을 당하거나 대표의 가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는 전체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선 아쉬운 점입니다.

괴롭힘 피해자가 가해자를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개별적으로 폭행, 모욕, 협박 등 형사 고소를 통해 형사법 체계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합니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점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괴롭힘을 직접 실행한 가해자를 향한 처벌이 없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몇년 새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의 모욕죄를 처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한 건 아니지만, 향후 법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춘천지법에선 의미 있는 판결문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게 폭행과 협박, 정보통신망법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직장 내 괴롭힘의 극단적인 사례'란 표현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바라보는 사법부의 경각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류호진 노무사 | 더스쿠프
rhj0984@daum.net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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