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일생은 한국 근현대사 핵심적 일부” [민중의 삶 품은 ‘백기완 마당집’]

2024. 5. 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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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 1일 노동절 개관…작고 3년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신학철 이사장·최갑수 후원회장 인터뷰
재야 원로 넘어 ‘장산곶매 이야기-한글운동’ 민중문화 상징으로
“‘민중예술의 보고’ 故백기완의 인문학, 미래세대에 전할 것”
“한국 근현대사 살아냈다”…대규모 아카이빙 작업 계획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왼쪽)과 최갑수 재단공동후원회장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저기 함경북도에 구월산이라고 있는데, 그 절벽 아래 해안가에 ‘장산곶매’가 산대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의 천적이래요. 독수리보다 덩치는 작아도 한번 물면 절대 안 놓는대. 어느 날에는 온 동네가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 정도로 밤새 부리질를 하는 거야. 둥지를 다 부수고 아침에 떠나요. 어디로, 사냥하러 대륙으로.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부리질을 할 때마다 밤하늘에 별이 생겨요. ‘딱’ 치면 별이 하나, ‘딱’ 치면 별이 또 하나….”

장산곶매는 고(故) 백기완(1933~2021)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소재다. 백 소장은 1993년 저서 ‘장산곶매 이야기’를 통해 관련 설화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이야기 속 독수리는 ‘중국 매’나 ‘구렁이’ 등 외세나 기득권을 상징하는 여러 동물로 달라졌다. 그렇게 장산곶매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독립성, 근현대사 굽이마다 비주류의 상징이 됐다. 책에는 백 소장이 다섯 살 때부터 열세 살까지 어머니에게서 직접 들었던 옛 이야기들이 담겼다. 어떤 역경에도 목숨을 이어나가는 무지렁이, 즉 민중의 강인한 삶을 잊히지 않도록 기록했다.

백 소장과 그가 보고, 듣고, 만난 민중의 삶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관 ‘백기완 마당집’이 노동자의 날(1일) 서울 한복판에 문을 열었다.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은 21일 종로구 대학로 마당집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그 수많은 상상력과 문학적 감성을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최갑수 재단 후원회장은 “선생님이 바랐던 ‘노나메기 세상’에 대한 꿈과 예술적·인문학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특히 중·고등학생들 같은 미래세대가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2021년 2월 89세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백 소장은 통일운동가이자, 1987년과 1992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재야 원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노나메기 세상은 운동권과 노동계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1979년 ‘YW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투옥돼 감옥에서 쓴 장편 시 ‘묏비나리’ 구절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로 쓰였다. 오늘날 마당집 자리에 있었던 그의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은 보수 지지층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삶이 사망 이후 민중 문화 자산으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장산곶매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등 민족 구전 설화를 알린 집필 활동 뿐만 아니라 ‘새내기’, ‘동아리’, ‘달동네’, ‘손뼉’, ‘새참’과 같은 순수 우리 말 단어 사용을 장려한 한글사랑 운동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남에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궤를 같이 한 농민운동, 빈민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 행적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정부 시절 반유신운동을 전개하던 백 소장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자, 장준하 선생이 “백기완은 민중예술·민족문화의 보고(寶庫)다. 죽이면 안 된다”고 부탁했다는 일화도 있다.

신학철(왼쪽부터) 백기완 노나메기 재단 이사장, 최갑수 재단공동후원회장, 채원희 사무처장, 양기환 전 기획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백기완 마당집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세준 기자

서양사학자이기도 한 최 후원회장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부터 따지면 우리 역사는 불과 100년도 안 됐다. 하지만 변화의 크기는 서양사로 따지면 200년 정도”라며 “그 변화의 깊이와 넓이를 한 개인이 감당하기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백 선생님은 그것을 감당해 왔고, 그 중요한 힘은 이 분의 특정 사상이 아닌 한글이든, 미학이든 어떤 얘기든 풀어가는 능력, 일종의 인문학적인 능력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이사장은 “한글에 대한 남다른 사랑, 할머니와 어머님한테 들었던 구전 문학과 설화는 우리의 소설과 영화로 태어날 자원이고, 이야깃거리인데 사라지고 있다”며 “그런 이야기들을 다시 되새기고,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미래세대에 공공적 가치로 전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백 소장 사망 3년여 만에 개관한 마당집은 재단이 그린 청사진의 1단계에 불과하다. 2단계는 ‘아카이빙’ 작업이다. 재단과 전문가,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백 소장의 삶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디지털화까지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재단은 아카이빙이 완료되면 평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모든 단계의 자금은 월 1만원, 오로지 재단 회원의 후원금이다. 신 이사장은 “백 선생님과 함께 했던 분들을 기억하고, 선생님이 가진 ‘토종의 옳곧음’을 알리고 싶다”며 “함께 했던 분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고 있어 시간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최 후원회장은 “그 삶은 본인의 삶인 동시에,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적 일부”라며 “10년 후, 20년 후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 것인지 전하는 토대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oho09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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