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통해 발만 동동대지 않도록… 병원서 통역해요”

지건태 기자 2024. 5. 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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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의사와 대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인천 남동구가족센터에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의료 통·번역사 일을 하는 나라(45·러시아)·마날(35·모로코)·채림(34·베트남) 씨는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우리 사회에 정착한 결혼이민자다.

33개월 된 아이를 둔 채림 씨 역시 이런 이유에서 의료전문 통·번역 일을 자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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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남동구가족센터 의료 통·번역사 채림·나라·마날 씨
36시간 교육·심리상담 수료
같은 처지 이주외국인가족 도와
병원 꺼리는 이슬람여성 설득도
인천시, 전국 유일 양성사업추진
결혼이민자 16만명 매년 증가세
인천 남동구가족센터에서 의료전문 통·번역사로 일하는 결혼이민자 채림(왼쪽부터)·나라·마날 씨.

인천=글·사진 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의사와 대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인천 남동구가족센터에서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의료 통·번역사 일을 하는 나라(45·러시아)·마날(35·모로코)·채림(34·베트남) 씨는 한국인 배우자를 만나 우리 사회에 정착한 결혼이민자다. 이들 중 채림 씨는 3년 전 귀화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둘은 아직 합법적 체류 가능한 결혼이민(F-6) 자격만 있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는 나라 씨는 ‘부부의 날’이었던 지난 21일 문화일보와 만나 “아이가 아픈데, 말이 통하는 남편이 집에 없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나라 씨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같은 경험을 했다. 단순 통역이 아니라 아이의 고통과 부모의 절박함 등 세세한 감정까지 의사에게 전달하고 싶어 부름에 기꺼이 응한다고 전했다.

33개월 된 아이를 둔 채림 씨 역시 이런 이유에서 의료전문 통·번역 일을 자원했다. 지난해 이곳 센터에서 36시간의 정규 교육과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메디미(심리상담) 과정을 수료했다. 병원에서 하루 최대 4시간 결혼이주민을 대상으로 통·번역 일을 하면 8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채림 씨가 병원에 머물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주 여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은 이보다 훨씬 많다. 최근에는 단백질을 섭취하면 뇌가 손상되는 희귀병(대사이상 질환) 판정을 받은 한 이주 여성의 아이를 위해 식이요법에 필요한 식단도 짜주면서 의료 파업으로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병원을 같이 다니고 있다.

센터에서 유일하게 아랍어 통역이 가능한 마날 씨는 최근까지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다 이 일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문화권의 이주 여성은 병원 가기를 꺼린다. 언어적인 문제보다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지 않으려는 문화 탓이다. 이 때문에 주위에서 진료 시기를 놓쳐 유산한 친구도 여럿 봤다. 그는 히잡을 쓴 아이 엄마를 보면 먼저 다가가 아랍어로 표기된 필수예방접종 카드를 건넨다. 마날 씨는 “아이를 키우는 아랍계 부모 말고도 주위 다수 아랍인들이 도움을 청한다”며 “친인척이 가까이 없는 결혼이민자에게 같은 언어를 쓰는 자국의 동료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결혼이민자는 16만7522명으로 10년 전보다 2만여 명 늘었다. 매년 꾸준한 증가세다. 인천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의료전문 통·번역사 양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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