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음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는 영화, <셀마>

선경철 2024. 5. 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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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셀마> 포스터 (사진=기고자 제공)

<셀마>는 미국의 목사이자 인권운동가였던 마틴루터킹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기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마틴루터킹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까지 순차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흑인 투표권 투쟁을 위해 1965년에 벌어진 셀마-몽고매리 행진에 집중한다. 미국 인권운동사에서도, 마틴루터킹 개인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해 말이다.

<셀마>는 비슷한 영화 몇몇을 떠올리게 한다. 흑인 인권을 다뤘다는 점에서 일단 <버틀러>나 <노예12년>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기와 주제를 보다 정교하게 제한한다면 <미시시피버닝>이 생각난다(이 영화는 1964년, 미시시피 주의 흑인 투표권 등록을 돕기 위해 남부로 향하던 청년 민권운동가 세 명이 살해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편 주인공을 크게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겟온업>(제임스브라운)이나 <레이>(레이찰스)를 소환한다. <셀마>에서 마틴루터킹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좌절도 하고 포기도 하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처럼 그려진다. 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 마틴루터킹의 여성 편력에 관해 감독은 ‘굳이’ 짚고 넘어간다.

그러나 마틴루터킹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욱 완전해진다. <셀마>는 뛰어난 영웅 한 명이 혼자 마법을 부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틴루터킹과 그의 조력자들, 더 나아가 모든 용기 있는 시민이 힘을 합쳐 세상을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이야기다. 여전히 사람들이 영웅의 출현을 갈구하는 지금, <셀마>는 묘한 울림을 안긴다.

이 영화의 주제가 ‘Glory’는 래퍼 커먼과 알앤비싱어 존레전드가 불렀다(커먼은 영화에 조연으로도 출연한다). 그리고 이 노래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 상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영화의 예고편 영상에도 음악이 흐른다. 이 음악은 퍼블릭에너미의 ‘Say It Like It Really Is’다. 힙합을 가리켜 ‘Black CNN’이라고 명명했던 왕년의 힙합 그룹 말이다.

<셀마>와 힙합의 이런 관계. 우연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힙합은 특정한 인종과 지역에 기반해 시작된 음악이다. 또한 힙합은 음악이자 문화이고 더 나아가 삶의 방식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미국 흑인의 역사/사회/정치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힙합 매거진으로 불리는 ‘소스’에서는 1965년에서 198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 흑인을 가리켜 ‘힙합제너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이 바로 ‘미국 흑인 시민권 평등 운동(1955~1968)’의 끝자락, 그리고 '블랙파워 운동‘ 중후반기에 피어나기 시작한 힙합과 함께 성장하거나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자란 ‘힙합 세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면 힙합과 무관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힙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로널드레이건이 그렇고 무하마드알리가 그렇다. 1980년대 미국을 강타했던 ‘크랙에피데믹’이 그렇고 1990년대 초반의 ‘LA폭동’이 그렇다. 마틴루터킹 역시 힙합과의 연결고리를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다. 아니, 마틴루터킹은 힙합 커뮤니티가 현재 가장 숭배하는 아이콘이다.

재미있는 것은 힙합의 초창기에는 마틴루터킹보다는 말콤엑스가 래퍼들에게 환영받았다는 사실이다. 비폭력과 평화를 논하는 마틴루터킹보다는 흑인우월주의와 무장투쟁을 외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항을 주장하는 말콤엑스가 아무래도 힙합의 공격성/저항성에 부합했기 때문일까. 

초창기 힙합 명작으로 회자되는 부기다운프로덕션의 앨범 타이틀이 [By All Means Necessary]인 이유도, 퍼블릭에너미의 노래 ‘Bring the Noise’의 인트로가 “Too Black, Too Strong”인 이유도, 이게 다 말콤엑스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래퍼들은 마틴루터킹의 정신 역시 가사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의도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힙합은 대중화/상업화의 길을 밟으면서 팝과 유행의 옷도 껴입게 되었다. 몸집도 더욱 거대해졌다. 즉 마틴루터킹과 힙합의 연결고리는 변화해온 시대의 요청에 미국 흑인과 힙합 문화가 조화롭게 응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셀마가 현재진행형임을 알리고, 마틴루터킹의 꿈을 이어갈 수 있는 음악은 역시, 아무래도 힙합이다. 

“이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 혼자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지/ 필요한 건 노인의 지혜와 젊은이의 에너지/ 우리가 부르는 승리의 이야기”(‘Glory’ 중)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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