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신랄하게 ‘까는’ 이야기 <19년 뽀삐>, <엄마들> 마영신

한겨레21 2024. 5. 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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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마영신① ―주류 만화에 없는 ‘진짜 현실’ 그리는 작가
마영신 작가가 그려서 보내온 본인의 캐리커처. 마영신 제공

2024년 3월21일 목요일 오후 마영신 작가에게 받은 주소로 찾아갔다. 서울 마포구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 가까운 서교동 건물 4층에 작업실이 있었다. 책장에 <엄마들>로 받은 ‘만화계의 오스카상’ 하비상 상패가 있었고, 책상 옆에는 전기기타가 있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웹툰 작가의 필수품인 신티크(태블릿)가 없었다. 대신 펜과 지우개, 종이가 있었다. 하비상 상패, 전기기타, 신티크 없는 책상. 이 풍경이 작가 마영신을 설명하는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영신 작가의 화구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마영신이 웹툰 하고 싶지 않다니

“최근 쇼츠에 연재할 16화짜리 ‘록 만화’ 끝내서 쉬고 있습니다.” 쇼츠는 정기 구독으로 운영되는 중단편 웹툰 플랫폼으로 2024년 4월22일 앱 출시와 함께 정식 출범한 신생 플랫폼이다. 마영신은 5월2일 <(락)이>를 오픈했다. 여름에는 카카오웹툰에서 <러브 스트리밍>을 함께 했던 권다희 작가와 24화짜리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당분간 만화를 안 그리지 않을까…, 출판만화로는 하고 싶은데 지금은 좀 지친 것 같아요. 조금 쉬면 이야기는 나올 텐데, 지금은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특히 포털에 연재하는 웹툰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털어놓았다.

근황을 물어보며 자연스럽게 끌어가려던 대화가 롤러코스터를 타버렸다. 한국 웹툰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성적인 작품을 왕성하게 연재하던 작가가 지쳐서 쉬고 싶고, 특히 웹툰은 연재할 생각이 없다니. 의아했다.

마영신은 2007년 <씨네21>에서 펴내던 만화잡지 <팝툰>에 단편 만화 <뭐 없나?>를 발표하며 데뷔한 뒤 주로 대안만화 신에서 꾸준히 활동했지만, 2015년 <19년 뽀삐>를 카카오웹툰(당시 다음웹툰)에 연재하며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대안만화 혹은 독립만화를 상징하는 작가지만 10년 넘게 웹툰 연재를 한 웹툰 작가이기도 하다.

마영신 작가가 <엄마들>로 받은 2021년 하비상 ‘최고의 국제도서’ 트로피를 손에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웹툰 다양성 확보 위한 프로젝트 했지만

2018년 6월26일 연재를 시작한 <아티스트>를 2020년 4월28일 외전 <곽경수의 길>까지 완결한 이후 2021년 ‘즐겨찾기’라는 작품 레이블을 만들기도 했다. 즐겨찾기 레이블은 웹툰 신을 넘어 다양한 만화를 하는 작가를 발굴해 웹툰 연재로 연계하려는 시도였다. 플랫폼의 제안을 받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다양한 작가들을 데뷔시켰고, 상업성이 그나마 있는 작가인데도 수익배분(고료만 9:1)만 가지고 진행하기 힘들어서 몇 작품 진행하다 못하겠다고 했더니 다른 지원 방식을 제안받았어요.” 작품별 수익배분은 없애고 사무실 월세보다 더 큰 금액을 지원받기로 약속하고 본격적인 개인 작가 프로듀싱에 나섰다. 웹툰 플랫폼에서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가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고, 채색 어시스턴트 같은 시스템도 구상했다. 애초 상업성을 기대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마영신의 시선을 믿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모든 부담이 온전히 마영신에게 돌아왔다. 보통 회사 규모에서 하는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맡을 때는 빨리빨리 콘티도 주고받으면서 언더그라운드, 인디 쪽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어요. 성과도 있었죠.” 박세가, 심대섭, 이현중, 잇선, 최성민 등 즐겨찾기 레이블로 작가들의 작품을 프로듀싱해 연재시켰다. 그 과정을 혼자 감당하다 포기했다. 팬데믹 기간 웹툰 시장이 크게 성장하며 주로 웹소설 원작 웹툰에 자본이 모였다. 많은 사람이 한국 웹툰이 다양성이 더 확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영신의 새로운 시도가 좌절된 건 아쉬운 일이다. 좌절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자면 지면을 꽉 채워도 모자랄 것이다.

마영신 웹툰 <엄마들> 한 장면. 마영신 제공

다들 무관심했던 엄마들 이야기로 하비상 수상

가장 최근에 마감한 중편 <(락)이>에 대해 물었다.(인터뷰 당시에는 작품을 공개하기 전이었다.) 작업실 한쪽에 거치돼 있던 전자기타가 록 만화를 그리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록에 진심인 몇몇 작가처럼 기타를 직접 연주하는 줄 알았더니 만화를 그리기 위한 소품이었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 빛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라서 이게 정확히 록을 표현하지만 록은 아니에요. 전 록만 얘기했는데 다 보고 나면 이게 뭘 전달하는지 정확히 전해지면 좋겠어요. 살짝 실험적인 것도 있는데 그것도 다 해석이 될 거예요.”

록 이야기인데, 사실은 사람의 이야기. 늘 그랬다. 마영신은 삶의 어느 순간을 붙잡아 치열하게 드러낸다. 특히 일상의 순간에서 감춰놓은 인간의 본질을 꺼낸다. 웹툰 <아티스트> 15화에 달린 “친구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드네”(2018년 9월25일)라는 감상이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구가 들려주는 욕망, 좌절, 실패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만화를 보고 나면 여운이 남는다. 작품의 절대적 분량이 길지 않은데도 말이다. 데뷔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단편, 중편을 많이 창작하고 있다. 2024년 4월에도 32쪽 분량의 단편 만화 <아날로그의 힘>을 출간했다. 한국에서 중·단편은 돈이 되지 않고 연재처도 얻기 쉽지 않다. 그런데 왜 중단편을?

“그 정도면 충분히 다 표현되니까요. 저도 편하고 여기 이 정도로 하는 게 편하겠다. 조금 더 늘리면 캐릭터가 풍성해지긴 하지만 그렇게 안 해도 되지 않나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했으니까.”

마영신 작가의 <(락)이>의 한 장면.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일상의 경험을 미세하게 잘라내 친구가 해주는 이야기 같은 마영신의 만화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매우 빠르게 다가온다. 매번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세계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여기, 우리 이야기니까. 마영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로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 온전히 자신의 성장 경험을 녹여 넣은 단편 묶음 <뭐 없나?>(2008)나 병역특례로 다니던 공장 이야기를 그린 <남동공단>(2012)이 대표적이다. 2011년 <한겨레> 인터넷 서비스 ‘훅’(hook)에 연재된 <벨트 위 벨트 아래>의 경우 주인공은 새롭게 창조됐지만 시대도, 공간도, 인물들의 욕망도 <뭐 없나?>의 연장이다.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2014년 월간 만화잡지 <보고>에 연재된 뒤 2015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들>은 마영신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의 이야기다. 심지어 어머니가 원안을 썼다.

“엄마가 남자친구 얘기하면 짜증 냈는데, 재미있겠다 싶은 거예요. 엄마를 어떻게 끄집어낼까 하다가 글로 써달라고 했어요.” <엄마들>은 스무 살 때 선봐서 결혼한 노름에 빠진 남편과 이혼하고 음악하는 아들과 함께 사는 미화노동자 이소연이 주인공이다. 관광나이트 웨이터 이종석과 연애 중이다.

 1화에서 애인 이종석을 놓고 꽃집 여자와 새벽 1시에 머리 붙잡고 난투극을 벌이며 만화가 시작된다. 주인공 엄마 이소연이 바람기 많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짠순이로 살며 돈을 모으고, 이사 5번째 만에 방 세 개 있는 29평짜리 집을 사고, 방 두 개는 전세를 주고 안방 하나에 애들 셋을 데리고 살았지만, 습관적으로 노름을 하는 남편 빚을 갚으며 살다 술집을 할 때 이종석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빠른 필름을 돌리듯 지나간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기 바빴던 중년 여성, 아니 엄마들의 욕망이 미화노동자의 삶과 노동, 성인 나이트클럽 같은 생생한 공간 속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영신 어머니의 이야기에 허구를 더해 만든 <엄마들>은 한국뿐 아니라 국외에 번역돼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0년 북미 지역에 번역됐고, 2021년 미국을 대표하는 만화상인 하비상에서 ‘2021년 최고의 국제도서’에 선정됐다.

팁박스-주류 만화에 나오지 않는 현실 세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작가의 예전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다. 그중 가장 강렬한 문장 하나를 고르면 “산동네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가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인 이슈를 작품 소재로 이용할 땐 조심해야 한다. 작가로서 내가 이걸 이용한다는 걸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 여기서 갈린다. 실제로 살아보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웹진 <유어마나>에 수록된 인터뷰의 문장이다.

작가는 주류 만화에 나오지 않는 세계를 그린다. 그 세계는 현실이고, 그 안에 사람이 있다. 가난한 산동네의 청소년, 병역특례업체에 근무하는 젊은이, 트랜스젠더, 장애인 어린이, 중년 여성 미화노동자, 전임이 되고 싶은 시간강사 예술가…. 별거 아닌 사건에 핏대를 세우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좌절한다. 무작정 아름답게 표현하려 하지 않고 실제로 작가가 살아본 대로, 만나본 대로 그려낸 사람들을 통해 문제가 드러난다. 임지영 기자는 <시사인> 2019년 1월29일치에 실린 인터뷰 제목을 “이토록 신랄한 마영신 작가의 만화 세계”라고 했다. 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글에 쓰지 않았지만 “깐다, 까는, 까서, 까고” 같은 단어다. 이토록 신랄하게 까는 이야기 속에서 진실함이 나온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

◆ <엄마들> <아티스트> <남동공단> 작가 마영신의 인터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지금 웹툰은 불씨 없는 화염방사기, 작가 본인의 불씨가 소중하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43.html

작품 목록

마영신 작가의 작품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남동공단>(2022, 송송책방) 2012년 경향 블로그에 연재해 2013년 새만화책에서 첫 단행본이 나왔다가 2022년 송송책방에서 재출간. 2002년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병역특례로 일하며 겪은 공장의 일상을 1인칭 내레이션으로 기록한다.

<아티스트>(2019, 송송책방)2018년 6월26일 연재를 시작해 2020년 4월28일 외전 <곽경수의 길>까지 완결. 오락실이란 예술가 모임에서 함께하는 화가 곽경수, 소설가 신득녕, 뮤지션 천종섭이 보여주는 욕망과 권력과 찌질함.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연결과 흐름>(2018, 송송책방)두 번째 단편 모음집. 2008년 단편집 <뭐 없나?>가 청소년기 작가의 이야기라면, <연결과 흐름>에는 만화가 마영신의 이야기로 보이는 <긴겨울>과 <길상>이 있다. 단편 만화책으로 출간됐던 <빅맨>과 <욕계>도 수록됐다.

<엄마들>(2015, 휴머니스트)욕망하는 중년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 북미에 번역돼 2021년 하비상을 받은 작품으로 이후 언론에서 마영신을 주목하게 됐다.

<삐꾸 래봉>(2015, 창비)새끼손가락이 옆으로 휘어 친구들이 ‘삐구’라고 부르는 키도 작고 싸움도 못하는 5학년 래봉이의 삶. 이 우울한 이야기는 보는 내내 힘들고,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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