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 “양육비 선지급제 성공 여부는 국민의 관심과 지지에 달렸다”

정세영 기자 2024. 5. 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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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 독박 육아 등 아이를 키우며 겪는 고충에서 벗어나 부모, 아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장관 대행)에게 물었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
최근 이혼한 뒤 양육비 지급이 확정됐음에도 미지급하는 비양육 부모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가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으며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육비 문제가 아이들의 생존권이냐, 개인 간의 채권 혹은 채무냐를 두고 혼선이 있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판결에 많은 이가 복잡한 마음을 쓸어내렸다.

이혼은 어른들의 문제다. 이혼으로 아이들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건 당연한 얘기. 모든 아이는 따뜻한 돌봄과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 양육비는 아동이 비양육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법익을 최소한으로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또 비양육 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결단이다. 이를 위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정에 미지급된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지급해주고, 추후 비양육 부모에게 받아내는 제도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5일 민생토론회에서 양육비 선지급제를 언급하며 "조속히 도입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현안을 현실화해야 하는 주무 부처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준비 과정을 거쳐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난해 12월취임한 신영숙 차관이 있다. 신 차관은 충청남도 당진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1993년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공직 초중반에는 행정안전부 계열 부처에 재직했으며 이후 행정안전부에서 정보문화과장, 연금복지과장, 성과급여기획과장 등을 지내고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실에 행정관으로 파견 갔다. 복귀 직전인 2014년에 새롭게 출범한 인사혁신처행을 선택해 2015년 6월 인사혁신처 인사조직과장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공무원노사협력관, 인사혁신처 인사관리국장,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30여 년간 일과 육아를 병행해온 워킹 맘이다. 누구보다 현시대 워킹 맘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부모와 여성의 권리, 이익을 위해 행정 업무 현장에서 묵묵하게 일해왔다.

최근 양육비 선지급제의 속도화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영숙 차관을 동아일보 충정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꾸준히 이슈가 되고 있는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는 "국회의 논의가 순탄치 않아 미뤄지고 있다"며 "취약계층 보호, 돌봄 업무 등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수행해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근거를 마련하는 '양육비 이행법’ 개정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한 부모의 월평균 소득은 통계적으로 굉장히 적어요. 한부모가족은 2022년 기준 149만4000가구로 전체의 6.9%에 해당합니다. '2021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통계를 살펴보면 한부모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245만여 원으로, 전체 가구 소득 416만여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요.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면 부모는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 영향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또 이혼한 뒤 아이를 기르는 양육 부모의 72.1%가 비양육 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해요. 한부모가족과 아이들이 좀 더 원활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국가가 나서 도와주기 위해 양육비 선지급제를 도입하게 됐습니다.

도입 전 준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선지급 대상과 방법, 회수 등 체계적인 절차를 마련한 뒤 모니터링까지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철저히 준비하려면 예산이 필요하고요. 먼저 재정 당국, 정부 부처 등과 협의를 거쳐 예산을 논의해야 합니다. 또 오는 9월 양육비 선지급제의 실무를 수행하는 기관인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독립 법인화됩니다. 저희는 이행관리원이 전담 기관으로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게 잘 지원해줘야 하죠.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후에는 3년 후에 집행 효과 및 진행 속도, 방향 등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이 제도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이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어요. 뿌듯하시겠어요.
사실 깜짝 놀랐어요. 제도를 도입하면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이 제도는 꼭 성사돼야 한다"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아 힘이 났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고,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안전한 공간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거든요. 응원하고 지지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양육비 선지급제의 '회수율’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양육비 선지급제를 먼저 시행 한 독일의 경우 회수율이 17%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2029년까지 회수율 40%가 목표라고 들었는데,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양육비 선지급제는 일방적으로 지급하는 복지비용과는 다른 개념이니까요. 사실 그동안은 양육비 채권이 있어도 비양육 부모에게 양육비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돈을 보내달라고 연락하고 재산을 조회하고 법원에 강제집행 신청을 하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럽고, 시간과 돈이 드니까요. 또 이러한 이유로 전 배우자를 마주하는 자체가 심적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양육비 선지급제는 이와 같은 불편함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때문에 징수 체계 효율화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먼저 국가가 양육비를 선지급한 경우 채무자의 동의 없이 금융 정보를 포함한 소득, 재산을 조회할 수 있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을 계획입니다. 현재는 한시적 양육비 지급 대상을 제외하고 대부분 양육비 채무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재산을 조회할 수 있거든요. 이를 승낙하는 채무자도 극히 드물고요.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국회의 개정안 통과 시기가 관건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캠페인, 양육비이행관리원, 늘봄학교 일일교사(위쪽부터) 현장을 찾은 신영숙 차관.
압류 명령 등을 하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데 2~4년 정도 걸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양육비 채무자는 재산 처분이나 명의 이동을 할 수 있지 않나요.
지난 2월 양육비 채무자 대상 신상 공개, 운전면허 정지, 형사처벌 요건을 '감치 명령(교도소·구치소·유치장 등에 구속)’ 결정에서 '이행 명령’으로 간소화하는 법이 개정됐습니다. 그간 감치 명령을 거쳐 제재 조치 결정이 나오기까지 무려 2~4년 정도가 걸렸어요. 올해 9월 27일부터는 감치 명령 없이도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 조치가 가능해집니다. 통상 2~4년 정도 소요되는 제재 조치 결정 기간이 6개월~1년가량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고요. 또 악의적인 채무자 관리 및 징수를 위해 이행관리원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악의적인 채무자들을 끝까지 쫓아서 조회하고, 체납을 독촉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겁니다.

양육비 선지급 비용이 20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어요.
매달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받게 되면 아이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뒀으면 합니다. 비용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달 아이 앞으로 들어오는 확실한 돈이 있으면 생활과 활동 등에 대한 설계를 할 수 있잖아요. 이는 불확실한 양육에 대한 여러 가지 여건을 개선할 기회가 될 겁니다. 또 금액을 떠나 홀로 육아하는 부모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든든한 힘이 돼주는 차원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고요.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 총지급비 중 20만 원이 선입금되는 건가요. 아니면 총지급비를 제외한 20만 원이 지원되나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비를 지원하는 기준은 중위 소득 63% 이하입니다. 이에 속하는 한 부모의 경우 아동 양육비를 21만 원씩 지원하고 있어요. 이 비용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양육비 선지급 비용 20만 원은, 만약 채무자에게 받아야 할 돈이 50만 원일 경우 국가가 20만 원을 미리 입금해드리는 겁니다. 나머지 30만 원은 채권 추심, 소송 등을 통해 본인이 직접 받아내야 하고요. 총양육비 중 20만 원을 선지급하는 거죠.

채무자가 나중에 회수 청구 들어가면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 있나요.
양육 부모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차단하는 겁니다. 악의적인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는 거죠. 통장에 돈이 있음에도 양육비를 납부하지 않는 미납자 명단을 공개하고, 당장 운전면허를 정지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많은 사람에게 비난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공고히 할 예정입니다.

양육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지급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양육비는 단순히 돈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아이의 부모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이에요. 직접 만난 한부모가정 중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아이 케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 이들이 많았어요. 심각해지면 아동 학대, 방임으로 이어지고요. 양육비는 아이를 더욱 잘 보살필 수 있는 기본 조건입니다. 지급자들은 양육비는 내 소중한 아이가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으로 책임감 있게 지급해야 해요.

양육비 선지급제 관련해서 가장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아 조속히 법 시행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담당자들이 국회 보좌관과 의원님들을 만나 설득하며 법 시행을 촉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되는 제도예요.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 시스템 구축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 부모의 경제적 변화 등을 잘 파악해 선지급비가 악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이 밖에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있지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 차근차근 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윤 대통령으로부터 여가부 차관으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차관급인 인재개발원장 퇴임 후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였기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공직을 통해 정무직 정점까지 찍고 모두의 축하 속에 퇴임했기 때문에 여한이 없었어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임 후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려던 시기에 여가부 차관 제안을 받았죠. 다시 공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뻤고, 차관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민생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어요. '정말 후회 없이 해야겠다’ '인생 2회차를 사는 기분으로 내 모든 걸 쏟아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차관 업무를 해보니 어떤가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저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유연해요. '끝’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사실 이전에는 업무 스트레스와 사람으로 받는 상처 때문에 절망스럽고 힘든 적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조직의 쓴맛이 언제 끝나나’ 생각하며 견뎠습니다. 퇴임하니 매일을 괴롭혔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때 정말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지금도 당연히 힘든 순간들이 있지만 언젠가는 끝난다는 걸 알기에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이 높아진 거죠.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뭔가요.
업무 역량이죠. 중앙 부처 차관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예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마주하면 '내가 이 정도밖에 못 하나’ 자책하게 되죠. 중압감도 굉장히 많이 느끼고요. 가끔 동료 차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의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더라고요. 좀 더 빠른 진행과 좋은 소식들만 국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워하죠. 중앙 부처에서 일하는 차관들 모두 자리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남편분은 공교롭게도 여가부와 통합 대상인 보건복지부 이기일 제1차관입니다. 조언을 많이 해주시나요.
오늘 아침에도 조언을 받고 왔습니다(웃음). '여성동아’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했더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진정성 있게 임하라는 의미겠죠. 업무 조언은 많이 듣는 편이에요. 업무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고민될 때 남편에게 의견을 묻는 편이죠. 물론 모든 조언이 다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하하). 하지만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부서의 사정이나 업무의 강도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해주는 편이에요. 집에서는 업무 이야기를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이기일 차관님과 함께 경기도 과천의 네쌍둥이 돌잔치에 방문해 화제가 됐어요. '잉꼬 차관 부부’라는 애칭도 얻었습니다.
잉꼬 차관 부부라니···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네요(웃음). 사실 저는 우연히 동행했어요. 어느 토요일 아침 남편이 "과천에 난임부부가 네쌍둥이를 낳아서 오늘 돌잔치 하는데 같이 갈래?" 하고 묻더라고요. 위치를 물어보니 저희 집과 가까워서 "그럼 한번 가볼까?"라며 가볍게 따라갔어요. 저는 그저 옆 동네 귀여운 아가들을 보러 간 것뿐인데, 너무 많이 보도돼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로 인해 네쌍둥이가 관심을 받고, 나아가 출산과 아이가 주는 행복, 기쁨에 대해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에요.

30년째 일과 육아 병행, 워킹 맘 고충 100% 이해해

슬하에 아드님 한 명이 있는데, 워킹 맘으로서 고충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육아 관련 책을 쓰려면 한 권으로는 부족할 정도예요. 저희 아이가 1999년생인데, 당시 출산휴가가 60일이었어요. 그때는 출산휴가를 다 못 쓰는 분위기였고 지금처럼 보육 서비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죠. 또 주위에 육아를 도와줄 가족도 없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정말 미안해요. 거의 방치하면서 키웠거든요.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신경을 많이 못 써준 것 같아요. 아이가 지금 스물다섯 살인데, 퇴근 시간이 되면 아직도 마음이 불안해요. 항상 오후 5~6시쯤 아이가 하원 했는데, 야근으로 직접 데리러 가지 못할 때가 많아 전전긍긍 했던 두려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여가부 차관직을 맡게 되면서 가장 잘하고 싶었던 부분이 돌봄 서비스예요. 저도 허둥지둥 힘들게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누구보다 워킹 맘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현실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정말 잘 지원하고 싶습니다.

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하루는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받았는데, 제 아이가 머리를 다쳤다는 거예요. 지나가던 행인이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어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당시 직장에서 집까지 거리가 있어 당장 아이에게 갈 수는 없었고, 온 동네를 뒤져 아이를 픽업해줄 사람을 찾아서 병원에 가게 한 적이 있어요. 죄책감이 정말 컸죠. 모든 워킹 맘이 공감하시겠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하게 됩니다. 저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늦게까지 아이를 봐주지만 학교는 그렇지 않잖아요. 지금처럼 방과 후 돌봄도 없던 시절이라 공동 육아를 어렵게 수소문해 간신히 아이를 키웠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냈나요.
아이를 보면 힘듦이 싹 사라졌어요. 일과 육아로 매일이 전쟁 같지만, 저에게 안기고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힘이 나고 엔도르핀이 솟았던 것 같아요. 만약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힘든 건 분명하지만 당시 아이가 줬던 기쁨과 행복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거든요. 아이로 인해 조건 없는 사랑이 뭔지, 삶의 진정한 보람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행복입니다.

일과 양육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 방안으로 가장 효과적인 건 무엇일까요.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정책입니다. 3040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자녀 양육의 어려움입니다. 또 경력 단절의 두려움은 저출생 현상과 관련이 깊어요. 악순환의 반복이죠. 여가부에서는 워킹 맘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가족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위해 2008년부터 가족친화인증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육아 휴직,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등 출산, 양육 지원과 탄력 근무 등을 도입하는 제도로, 현재 5911개의 기업이 인증돼 있어요. 사실 가족친화인증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은 업무나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부분들이 있어요. 여가부에서는 기업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센티브 지급 등 다양한 혜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논의가 잘되고 있습니다.

워킹 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방과 후 아이 돌봄 등 이와 관련된 정책도 존재하지만,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을 원합니다.
현재 방과 후 아이 돌봄 서비스는 여가부가 직접 진행하고 있어요. 다자녀 추가 지원, 긴급 단시간 돌봄에 대한 설계 등 무늬만 정책이 아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현재 진행하는 정책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개선하고 개편하기 위한 논의와 고민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정책이나 시스템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직접 찾고 있어요. 현장에서 홍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육아 선배로서 워킹 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허둥지둥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워킹 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공감하니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조금만 인내하면 좋은 시기는 분명히 온다’입니다. 저 역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아이가 주는 사랑과 행복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에 여유가 생겼고요. 이 시간들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덜고, 아이와 엄마 모두의 행복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믿고 응원해주세요.

#여가부 #양육비선지급제 #신영숙차관 #여성동아

사진 김승환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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