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안 잡히는 딱총나무꽃, 페어드롭, 정향을 찾아라? 제대로 된 '시음'을 배웠다 [스프]

홍지영 기자 2024. 5.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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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카세] 와인 자격증에 도전하다 ②

와인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와인을 마시겠다고 생각할 때 제일 첫 번째 기준은 가격일 겁니다. 본인의 예산이죠. 데일리 와인으로 반주처럼 먹을 것인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들과 먹을 것인지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은 무엇과 먹을까 겠죠. 그래서 화이트, 레드, 스파클링 중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해산물을 먹으면 화이트, 육류를 먹으면 레드, 이 정도가 되겠죠? 저 역시 그랬던 거 같습니다.
여기에 날씨도 고려가 되죠. 더울 때는 시원한 화이트로 시작해 볼까? 흐리고 약간 서늘할 때는 묵직한 레드를 골라볼까? 이렇게 되고요. 여기에 개인적인 선호도도 추가됩니다. 부드러운 오크 향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대륙 레드를 선호하고, 진한 오크 향보다 신맛과 텁텁한 탄닌을 좋아하는 사람은 구대륙 와인을 선호하고, 그런 정도겠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맛있는 와인과 맛없는 와인, 가성비 좋은 와인, 맛있지만 비싼 와인, 이 정도가 와인을 나누는 기준이 될 거 같습니다.
 

와인 시음의 목표와 기준은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을 시음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 와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마시는 시기는 언제가 가장 좋은지 등을 평가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서 와인의 상태와 품질에 대해서 설명하고, 가격이 적정한지 등도 평가할 수가 있게 됩니다. 와인에 대해서 이렇게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려면 체계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WSET에서는 표준화된 평가 도구를 만들었는데, 이 기준을 적용해서 와인의 색깔, 향, 맛, 풍미 등을 설명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시음용 잔도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쓰는 잔보다 작고 다리는 짧습니다. 밑은 넓고 갈수록 좁아지는 잔으로 향이 코로 집중될 수 있도록 생겼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 ISO(International Standard Organization)에서 1970년에 전문적인 와인 시음을 위해 선정한 규격대로 만들어진 잔이랍니다. 이 잔에 절반이 안 되게 따라서 와인의 색을 관찰하고 향을 맡아보는데, 잔 밑 부분을 잡고 흔들기에도 적당한 크기입니다.

출처 : WineVision 홈페이지

제대로 된 "시음"을 배우다

우리는 매번 수업 시간마다 4가지에서 6가지 정도의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이걸 다 마시면 취하죠. 그래서 거의 다 뱉어냅니다. 향을 맡고, 입안에서 굴려본 뒤 뱉어내는 겁니다. 중간중간에 생수로 입을 헹구고, 물도 마십니다. 시음한 뒤에 뱉기 때문에 탈수가 올 수 있다고 하네요. 정말 목이 마른 것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와인 시음을 마치고 집에 가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정도로 목이 말랐습니다. 안주는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와이너리 투어 때는 시음이 목적이 아니라 와인을 마시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 그런지, 빵이나 치즈 등을 내놓는데요. 빵과 치즈와 같이 마시면 와인이 더 맛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와인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한 것 같았습니다.

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먼저 와인의 색과 상태를 살피는데, 이를 위해 잔을 놓기 위한 하얀 종이와 제대로 된 조명이 필요합니다. 또한 주변에서 다른 냄새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시음 수업 때 향수나 향이 진한 화장품을 쓰고 가면 안 됩니다. 양치를 하고 난 직후에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이것도 피합니다.

와인 시음 잔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


1. 외관

먼저 눈으로 와인의 상태를 관찰합니다. 하얀 종이 위에 놓인 와인을 옆에서 보고 위에서도 보고, 그리고 나서는 와인잔을 45도 정도로 기울여 와인색이 얼마나 진한지를 봅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노란빛이 살짝 나는 연한 레몬색이 있는가 하면 황금색에 가까운 진한 노란색, 호박색, 갈색까지도 나올 수가 있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포도 주스와 가까운 자주색부터 테두리 부분으로 가면 갈색, 주황색이 나는 경우까지 단계가 나눠지고요.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이 색깔이 어느 분류에 들어가는지, 머릿속에 정리가 돼 있어야 합니다. 머릿속에 '정확한 경계선'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색깔과 함께 와인 색의 강도를 판단해야 합니다. '연한' 또는 '깊은'으로 표시됩니다. 색과 마찬가지로 옆에서도 보지만 위에서 보거나 잔을 기울여서 봐야 구별이 가능합니다. 잔을 기울였을 때 가운데 진한 부분, 이른바 '코어'가 생기면 '깊은'으로 표현하는데,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구별이 좀 힘들었습니다.

2. 후각과 미각으로 찾아내는 '향'

후각과 미각 훈련은 정말 다양한 냄새와 맛이 있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특히 서양에서 만들어진 기준이다 보니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과일이나 향신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냥 이 냄새나, 이 맛이 그거라고 외워야 했습니다.

젖은 돌, 숲속 바닥 등은 어렴풋이 알 듯합니다만, 딱총나무꽃, 구스베리, 블랙커런트, 페어드롭, 제비꽃, 삼나무, 정향, 회향, 육두구… 이런 것들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후각 연습을 위해서 아로마 키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개 정도가 있는 아로마 키트로 연습을 했는데, 특파원 시절 프랑스에서는 50개에서 100개는 되는 정도의 다양한 아로마 키트를 갖고 수업을 듣는 와인학교 학생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겨우 10개밖에 안 되는 아로마 키트를 처음 받은 날, 수업하면서 그 향을 맞춰보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거의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강사가 여러 가지 <보기>를 주고 이 중에서 향을 고르라고 하자 훨씬 쉬워졌습니다. 와인 시음이 바로 이런 원리라는 겁니다. 그 <보기>들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향을 맡으면서 그것과 맞는 향을 찾는 겁니다.

아로마 키트. 출처 : WineVision SNS


와인의 향과 풍미를 이야기할 때 먼저 큰 카테고리로 1차 향, 2차 향, 3차 향을 나눕니다. 1차 향은 포도 자체에서 나는 향이나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나는 향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과일 향과 기타 식물성 향이 대부분입니다. 과일 향을 표현할 때도 청포도의 경우 꽃이나 초록 과일 향부터 복숭아 같은 핵과류, 더 나아가 파인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까지 포도가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포도가 익은 정도에 따라 다른 과일 향이 발현됩니다. 적포도의 경우에는 딸기나 크랜베리 같은 붉은 과일부터 검은 자두 같은 검은 과일까지 풍미가 달라질 수 있고요.

2차 향은 포도가 발효된 뒤 나타나는데 비스킷이나 빵 냄새, 치즈 냄새와 오크 숙성에서 기인하는 바닐라 향 등을 찾아내는 겁니다.

숙성이 더 진행되면 과일 향은 견과류 향이나 말린 과일 향으로 발전하고, 여기에 병 숙성 과정까지 거치면 꿀 향기나, 가죽, 담배, 흙 냄새로까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향들을 찾아내면서 이 와인이 오크 숙성 과정을 거쳤는지, 병 숙성을 거쳤는지, 숙성이 얼마나 오래 진행됐는지 등을 평가합니다.

와인 아로마 휠. 출처 : aromaster.com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홍지영 기자 scarle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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