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복보다 양복 선호하는 김정은, 그의 로망은 '서구형 지도자'?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5. 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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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서구와 대립하면서도 서구형 이미지는 바라는가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김기남 전 노동당 비서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습니다. 전날(7일) 사망한 김기남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고위 간부들과 함께 빈소를 찾은 것입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보면, 김정은 일행이 빈소를 찾은 시간은 새벽 2시였습니다. 김정은이야 야행성이어서 새벽 조문을 했다고 하지만, 김정은을 수행하는 고위 간부들도 덩달아 밤잠을 설치고 새벽 조문을 한 셈이니 나름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조문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또 있었습니다. 김정은 주변으로 정치국 상무위원들인 김덕훈 내각 총리, 조용원 조직 비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병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모두 인민복을 입었는데, 김정은만 양복을 입은 것입니다. 김정은은 인민복을 입은 간부들 가운데서 홀로 넥타이 정장을 한 채 김기남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습니다.

김정은은 인민복을 입은 정치국 상무위원들 가운데서 홀로 양복을 입은 채 조문했다.


다음날인 9일 열린 김기남의 장례식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김정은은 김기남의 장례식에도 고위 간부들과 함께 참석했는데, 김덕훈, 조용원, 최룡해, 리병철 4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박정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리일환 선전 비서, 김재룡 당중앙검사위원장 등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인민복 차림이었던 반면, 김정은은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김기남의 장례식에서도 대부분의 고위 간부들은 인민복을 입은 반면 김정은은 양복을 입었다.

김정은의 복장을 살펴보기 위해 최근에 있었던 김정은의 공개 활동 영상을 검색해 봤습니다. 올해 4월부터 있었던 공개 활동 가운데 잠바를 입었던 사례를 제외하고 김정은이 어떤 복장을 했는지 살펴봤습니다. 4월 1일부터 5월 23일까지 공개된 김정은의 공개 활동 영상을 보니, 김정은은 양복을 7번, 인민복은 2번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을 방문한 중국 대표단을 접견하는 외교행사뿐 아니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 방문이나 평양의 뉴타운인 '전위거리' 준공식 같은 대내 행사에서도 김정은은 양복을 즐겨 입었습니다.
 

집권 초만 해도 주로 인민복 입어

양복을 입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정은이 양복을 입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권 초만 하더라도 김정은은 주로 인민복을 입었습니다.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공개 활동을 한 것이 대외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2016년 7차 노동당 대회가 처음이었습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2012년부터 본격적인 집권을 시작했지만, 김정은이 양복을 입고 공개 활동을 하는 데 4년여가 걸렸던 것입니다.
그 뒤로 간간이 양복을 입은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김정은의 주요 활동복장은 그래도 인민복이었습니다. 단적으로 2018년 수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모두 인민복을 입었습니다. 김정은이 정상회담에서 양복을 입은 것은 지난해 9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북러 정상회담이 처음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 상징처럼 돼 있는 인민복

인민복은 중국의 '국부'라 일컬어지는 쑨원에게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산주의자들의 상징처럼 돼 있는 옷입니다. 중국 국민당 시절에도 이 옷을 입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공산주의자들의 옷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공산화된 뒤 중국인 대부분이 인민복을 입었고 공산당이 인민복 착용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들면서 공산주의자들의 옷처럼 인식된 것입니다.
북한도 많은 간부들이 양복보다는 인민복을 즐겨 입고 있습니다. 일선 간부들뿐 아니라 고위 간부들도 야외 행사는 물론 실내 정치행사에서도 주로 인민복을 착용합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인민복을 입는 분위기이다 보니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양복을 입을 이유가 없고, 넥타이를 매야 하는 양복에 비해 인민복이 보다 활동적이라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전 북한 외교관)은 "북한에서 인민복은 전투복 같은 느낌,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느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정은도 인민복 착용을 통해 '일하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주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구형 지도자 이미지 선호?

그동안 인민복을 즐겨 입어왔던 김정은이 최근 들어 양복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양복이 서구의 정식 복장이라는 점에서 서구형 지도자의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핵 문제로 서구와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은 서구형 지도자처럼 인식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전용기를 타고 가서 레드카펫을 밟으며 인민군 사열을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해외 정상들이 여기저기 순방을 하며 국가 정상으로 예우를 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의 입장에서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서구형 지도자가 훨씬 세련됐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양복 입었던 김일성 따라하기?

김일성도 젊은 시절에는 인민복을 주로 입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양복을 입었던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김일성의 이미지를 따라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호감이 큰 지도자는 여전히 김일성인데 지금의 북한 주민들에게 남아있는 김일성의 이미지는 인민복보다는 양복을 입은 김일성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나이가 들면서 양복을 자주 입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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