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현실의 축소판 '더 에이트 쇼', 아류 아니라 더 심오한 문제작 [스프]

2024. 5. 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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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즐레]


(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살인자ㅇ난감', '닭강정', '종말의 바보' 등 최근 공개한 오리지널 작품마다 기대 이하의 성적표로 쓴맛을 본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주말에 각 잡고 볼 만한 문제작이 나왔다. 지난 17일 8부 전편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다.

'더 에이트 쇼'는 글로벌 누적 조회수 3억 뷰를 기록한 배진수 작가의 인기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재림 감독이 각색한 드라마다. 8명의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시간이 흐르는 만큼 돈이 되는 게임에 참가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려면 100배의 물가가 적용된다는 설정 등을 웹툰에서 따왔다.

영화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관상', '더 킹' 등 시대와 소재는 다르지만 작품에 사회적 이슈를 묵직하게 담아냈던 한재림 감독은 원작 웹툰의 기발한 상상력 위에 자신만의 장점을 제대로 녹여냈다. '더 에이트 쇼', 말 그대로 여덟 인물이 보여주는 이 '쇼'에는, 그저 재미로 치부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돈이 곧 권력이 되는 계급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재미와 불편함, 양가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징어게임' 아류? 그보다 더 심오한 블랙코미디

'더 에이트 쇼'에서는 저마다 돈 앞에 무너졌던 절박한 사연을 가진 8명의 인물이 의문의 초대를 받고 한 공간에 모인다. 그리고 놀이공원처럼 화려하고 예뻐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게 가짜로 이뤄진, 허상뿐인 공간 안에서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위험한 쇼를 진행한다.

인물들이 서로 이름도 출신도 모른 채 통일된 느낌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인위적으로 만든 제한된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한 게임에 참여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 작품은 넷플릭스 최고의 흥행작 '오징어게임'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더 에이트 쇼' 초반을 보다 보면 '오징어게임'이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한 승자 독식의 서바이벌에 초점을 맞췄던 '오징어게임'과 달리, '더 에이트 쇼'는 더 심오한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8명의 참가자는 1층부터 8층까지 계단으로 연결된 각각의 방에서 생활하는데, 높은 층일수록 시간당 쌓이는 돈의 액수와 방의 퀄리티가 다르다. 1층이 1분당 1만 원을 번다면, 8층은 1분당 34만 원을 번다. 1층이 햇빛 하나 들지 않고 성인 한 명이 겨우 발 뻗고 누워 잘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방이라면, 8층은 전망 좋은 통창문이 있는 호텔 스위트룸 같은 공간이다. 처음 입소 당시 평등한 줄 알았던 인물들 간의 관계는, 이러한 돈의 차이를 알게 되며 금방 계급화된다.

부에 따라 권력이 나뉘고, 그 권력을 가진 자는 점점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며 하층 참가자들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갑'의 폭력성을 보여준다. 권력자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그 옆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도 나온다. 피지배 계급으로 전락한 이들은 순응과 자기합리화, 분노와 저항의 감정을 오가며, 결국에는 모든 걸 뒤엎는 전복을 꿈꾼다. 이런 인물들간의 관계성은 고정적이지 않고, 수차례 뒤바뀌며 극에 강력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계급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전개가 심각하게만 흘러가진 않는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유머 요소가 툭툭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특히 8명 중 '브레인'으로 여겨지는 7층(박정민 분)이 코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장면은 배꼽을 잡는다. 점잖은 지식인의 원초적인 장기자랑은 이 작품이 블랙 '코미디' 장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개성 살린 연기들, 하지만 배우 호불호는 숙제

'더 에이트 쇼'에 등장하는 8인의 캐릭터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3층(류준열 분)이 이야기를 열고 이끄는 화자로 활약하지만, 8개의 에피소드에 맞춰 각 인물을 조명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한재림 감독은 매 회 오프닝을 다른 인물들로 시작하고, 해당 회차에서 그 캐릭터의 전사를 보여준다. 또 엔딩의 크레딧 순서에도 변화를 주어 8명 모두가 주인공이란 점을 강조한다.

8명의 캐릭터를 각각 연기한 여덟 배우들은 저마다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좌절감에 한강 다리 위에 올랐다가, 통장에 100만 원씩 꽂으며 메시지를 보내는 누군가의 초대에 응해 쇼에 참가한 '3층'은 시청자가 이 극에 들어와 이입할 수 있게 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류준열은 이런 3층 역을 맡아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들, 힘 앞에 지질하고 비겁해지기도 하는 그 솔직한 감정들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연기한다. '더 에이트 쇼'의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설득력을 얻는 건, '가장 보통의 인간' 3층 류준열의 힘이 크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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