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아름다움 샤스타데이지 만발한 제주 돌문화공원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4. 5.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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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돌문화공원 정원 샤스타데이지 만발/꽃말은 ‘사랑스러움’ ‘겸손한 아름다움’/제주탄생설화 설문대할망·오백장군 테마로 30만평 곶자왈 대지 꾸며/‘인생샷’ 얻는 람사르습지 물영아리오름 삼나무숲길 연인들에 인기

제주돌문화공원 샤스타데이지.
시원한 제주 봄바람 분다. 한낮의 열기를 초록 닮은 싱그러움으로 바꾸며. 넓은 들판 사이로 바람 한 줄기 지나자 살포시 고개 돌리며 살랑거리는 하얀 꽃물결은 순정 만화의 한 페이지다. 순수한 사랑.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5월의 신부’ 닮은 샤스타데이지가 수줍게 손짓하는 제주 돌문화공원 꽃밭을 걷는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5월의 신부’ 닮은 샤스타데이지

돌문화공원이라니. 뭐 볼 것 있을까. 기껏해야 돌뿐일 텐데. 별 기대 없이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으로 들어섰는데 눈동자가 무한대로 커진다. 운치 있는 돌탑을 둘러싸고 펼쳐진 광활한 하얀 꽃밭 때문이다. 드디어 샤스타데이지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제대로 즐길 틈도 없이 진달래꽃, 벚꽃, 사과꽃, 철쭉, 이팝나무까지 순식간에 피고 지어 마음이 좀 쓸쓸했는데 이렇게 예쁜 샤스타데이지가 지천으로 핀 풍경을 보니 허전하던 가슴이 다시 핑크빛으로 채워진다. 샤스타데이지가 7월까지는 피어 있을 테니 올봄에 제대로 꽃놀이할 겨를도 없던 이들에게 태양처럼 빛나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선사하겠지.

제주돌문화공원 샤스타데이지.
제주돌문화공원 샤스타데이지.
샤스타데이지는 데이지꽃의 여러 종류 중 하나. 꽃 이름 데이지(Daisy)는 태양의 눈이란 뜻의 ‘데이스 아이(Day’s eye)’에서 유래됐다. 꽃 모양이 태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순진, 평화, 인내 등 많은 꽃말을 지녔다. 실제 샤스타데이지는 혹독한 추위에 노출될수록 더 많은 꽃눈을 맺는다니 인내는 참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또 사랑스러움, 숨겨진 사랑, 겸손한 아름다움이란 꽃말도 지녀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연인들이 이런 샤스타데이지의 계절을 놓칠 리 없다. 눈부시게 하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5월의 신부’ 여러 명이 꽃밭 속에서 웨딩 화보 촬영을 하느라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예비신랑은 꽃구경에는 전혀 관심 없다. 마냥 아름답기만 한 예비신부 얼굴에서 초점을 거두지 못하고 흐뭇한 미소만 짓는다.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석상과 샤스타데이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석상과 샤스타데이지.
며칠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뜬 사진을 보고 달려왔다는 소녀는 귀에 샤스타데이지 꽃 하나 꽂고 꽃밭 속에 파묻혀 인생샷이 나올 때까지 좀 제대로 찍어 보라며 친구를 괴롭힌다.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를 어깨에 무겁게 짊어진 아저씨가 좀 믿음직스러웠나 보다. 갑자기 소녀가 달려와 다짜고짜 스마트폰을 건넨다. 실력을 좀 발휘해서 아웃포커싱으로 둘의 다정한 사진을 찍어 건네자 “이거 제 스마트폰으로 찍은 거 맞아요?”라며 샤스타데이지 닮은 얼굴로 깔깔거리며 웃는다.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석상.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샤스타데이지 꽃밭 둘레에는 돌문화공원답게 사람 닮은 거대한 석상들이 에워싸고 있다. 돌문화공원을 상징하는 오백장군 군상으로 전설 속 오백장군으로 불리는 한라산 서남쪽 영실 기암절벽 이미지를 형상화해 설치한 석상이다. 돌문화공원은 30만평의 넓은 곶자왈 대지 위에 다양한 돌문화 유물 등을 활용해 제주도 탄생 설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테마로 꾸몄다. 1코스 돌박물관 가는 길, 2코스 돌문화 역사 산책길, 3코스 제주전통초가마을 가는 길로 구성됐고 코스마다 1시간 걸릴 정도로 넓어 충분히 시간을 두고 둘러보길.

설문대할망을 테마로 꾸민 제주돌문화공원 어머니의 방.
오백장군 설화로 꾸민 제주돌문화공원 전설의 길.
설문대할망의 설화가 재미있다. 이승과 저승이 갈라지던 먼 옛날, 설문대할망은 치마폭 가득 화산재와 돌덩이들을 담아 바다 가운데 섬을 만들었고 은하수에 닿는 한라산도 조각했다. 하지만 봉우리가 하늘에 닿는 것이 마음에 걸린 설문대할망은 꼭대기를 꺾어 내던졌는데 지금의 안덕면 사계리에 떨어져 산방산이 됐다. 그때 치마폭 해진 틈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여기저기 쌓여 360개 오름이 생겨났다. 얼마나 키가 컸던지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두 다리는 4.9㎞ 떨어진 관탈섬에 걸쳐 낮잠을 잤단다. 계산해 보면 설문대할망의 키는 한라산 높이 25배에 달하니 제주 사람들의 상상력과 스케일이 참 대단하다. 
제주돌문화공원 선돌.
제주돌문화공원 돌하르방.
하지만 오백장군 얘기는 애틋하다. 설문대할망의 아들 오백형제는 지독한 흉년이 들자 양식을 구하러 나갔고 어미는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 그만 발을 헛디뎌 죽솥에 빠져 죽었다. 오백형제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 맛있게 먹었고 가장 늦게 도착한 막내는 죽을 먹으러 솥을 젓다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미가 솥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형제들을 원망한 막내는 어머니를 외치며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됐고 형들도 어미를 부르며 통탄하다 바위로 굳어 한라산 영실의 오백장군이 됐단다. 5월 한라산에 흐드러지게 피는 붉은 철쭉꽃이 오백형제의 눈물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제주돌문화공원 연자방아돌.
제주돌문화공원 하늘연못,
1코스를 따라 오백장군이 사열하는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기암거석들을 만나는 전설의 통로를 지나면 돌문화공원 산책이 시작된다. 길 끝의 하늘 연못도 인기가 높다. 제주돌박물관 옥상을 거대한 연못으로 꾸몄는데 무료로 대여하는 장화를 신고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재미있는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하늘연못 잔디 광장 나무 그늘엔 엄마 손 잡고 소풍 나온 아이들이 돗자리에서 맛있는 김밥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곡물을 찧던 거대한 연자방아돌이 수북하게 쌓인 오솔길을 걸으면 모양과 크기도 제각각인 돌하르방이 도열해 제주의 문화를 전한다.
제주마 방목지.
◆삼나무숲에서 건져 올린 인생샷

돌문화공원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제주축산진흥원 제주마 방목지가 있어 함께 묶어 여행하기 좋다. 제주 여행을 하다 보면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풍경이 비슷하지만 좀 특별하다. 1986년 천연기념물 347호로 지정돼 보호되는 제주 혈통 조랑말들을 사육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만 즐길 수 있지만 성질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 조랑말들이 펜스 너머 초원에서 한가로이 뛰어노는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제주마 방목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수망리 물영아리오름에서는 드넓은 초지에서 낮잠을 즐기는 소들을 만난다. 순이와 철수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담긴 영화 ‘늑대소년’의 촬영 장소다. 순이와 동네 꼬마 친구들이 철수와 함께 야구를 하며 놀던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물영아리오름 소 방목지.
물영아리오름은 2006년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 해발 508m 높이의 물영아리오름에는 물의 수호신이 산다는 얘기가 전해져 ‘수령산’ ‘수령악’으로도 불린다.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수망리에서 소를 방목하던 한 젊은이가 소를 잃어버리자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는 없었다. 소를 찾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오름 정상까지 갔고 허기로 기진맥진한 청년은 앉은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청년이 비몽사몽에 빠져 있을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잃어버린 소 값으로 오름 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눈을 뜨자 갑자기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더니 눈앞에 큰 못이 생겼고 못가에는 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물영아리오름 삼나무숲길.
물영아리오름 잣성.
실제 산 정상에는 둘레 약 1㎞, 깊이 40여m의 분화구가 있는데 퇴적층의 깊이 최대 10m에 이르는 습지오름이다. 야생동물 202종과 으름난초, 백운란, 팔색조, 삼광조, 말똥가리 등 멸종위기종 6종이 서식해 생태계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이곳은 요즘 SNS에서 뜨면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예쁜 삼나무 숲길 덕분이다.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좁은 산책로 양옆에는 우람한 삼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갔다. 삼나무가 둘만의 은밀한 공간을 제공하는 산책로에서 연인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로 마주 보는 모습을 촬영하면 달콤한 러브스토리 영화 속 한 장면을 완성한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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