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夜] '꼬꼬무' 천사의 탈을 쓴 악마 장 씨, 그가 사랑한 것은 '돈'…'사랑의 집' 사건 추적

김효정 2024. 5.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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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사랑의 집은 왜 '죽음의 집'이 되었나.

23일 방송된 SBS '꼬리의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냉동 시신과 비밀의 집'이라는 부제로 천사의 탈을 쓰고 수많은 아이들을 학대한 장 씨의 그날을 추적했다.

오랜 시간 병원의 냉동고에 보관 중인 두 구의 시신이 있었다. 각각 10년째, 그리고 12년째 안치된 이 시신은 알고 보니 남매였다. 또한 이들의 보호자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해 키운다는 '천사 장 씨'였다.

목숨 바쳐 아이들을 사랑해서 스스로 자신을 장 목사라고도 불렀고, 그는 세상이 버린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으려 정관 수술까지 감행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는 왜 아이들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걸까.

SBS의 한 시사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장 씨와 함께 살았던 '사랑의 집'의 실체를 확인하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악취가 진동하는 비좁은 움막은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 또한 장 씨의 자녀들은 삭발을 한 머리에 깡마른 모습들이었다.

또한 장 씨의 자녀들의 몸에는 장 씨의 연락처와 1급 장애인이라는 문신까지 새겨져 있어 충격을 안겼다.

21명의 자녀 중 현재 그의 곁에 있는 자녀는 단 4명. 수년간 방치된 시신 2구를 제외하고 15명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이에 제작진은 장 씨에게 아이들의 행방을 추궁했다. 그러나 장 씨는 아이들이 모두 살아 있다며 입을 닫아 보는 이들까지 분노하게 만들었다.

천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장 씨는 천사가 아닌 악마였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운다는 이야기와 달리 그는 아이들에게 하루 한 끼의 식사를 내어줄 뿐이었다.

이에 아이들은 굶주림에 집 밖을 서성이기도 했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아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장 씨는 아이들을 때리고 물고문까지 하며 학대했다. 감금은 물론이거니와 탈출을 시도하면 손톱을 뽑고 바늘로 눈까지 찔렀다.

그리고 자신은 자녀들을 이중, 감 중으로 출생 신고해 온갖 지원금과 후원금을 받아 챙겼다. 그렇게 모아진 금액은 무려 5억여 원.

그는 단지 돈 때문에 아이들의, 장애인들의 인권을 유린했다.

2012년 6월 세상에 알려진 장 씨의 실체. 이에 그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천사 같은 사람이 재활을 해준다는 말에 아이들을 낫게 하고픈 마음에 장 씨게에 보낸 유환의 가족들. 아이의 적응을 위함이라며 면회를 금지한 장 씨. 하지만 가족들은 유환이 그리워 몇 번이고 사랑의 집을 찾았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고.

그리고 영실 씨는 아들 광동을 사랑의 집에 맡기고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사랑의 집은 철거된 후라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이 아들일까 봐 걱정하던 영실 씨는 DNA 검사를 의뢰하고 충격적인 소식에 또 한 번 눈물을 쏟아냈다. 냉동고에 보관된 시신은 자신의 아들 광동이가 맞았던 것.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아직 광동이는 서류상 장 씨의 자녀이기에 그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

이러한 일들로 장 씨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가족들이 장 씨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고 가족들을 침입자 취급했다. 또한 폭력까지 퍼부었다.

아이들을 장 씨에게 보냈던 엄마들이 직접 본 사랑의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믿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만 살아가고 장 씨 부부는 움막 옆의 번듯한 2층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끝까지 당당한 장 씨는 가족들이 버린 아이들을 수십 년 길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DNA 검사도 모두 가짜라며 시신에 대한 장례를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은 장 씨와 자녀들을 분리 조치시켰고, 자녀들은 밝은 얼굴이 되어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 씨가 서류상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제멋대로 자녀들의 성별과 이름을 바꾼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사랑의 집은 40여 년 간 행정기관의 조사를 받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이 밝혀졌다. 정식적으로 인가를 받은 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실 씨는 친자 확인 소송을 진행했고, 그 결과 무사히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장 씨의 악행을 밝힐 제보자도 등장했다. 9살 무렵 장 씨에게 보내진 장상진 씨.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보내졌던 그는 학대를 피해 여러 번 탈출했지만 수차례 붙잡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갖은 학대를 견뎌야 했다.

이후 완전히 탈출에 성공한 그는 장 씨를 피해 숨어 살았다. 그리고 장 씨의 실체가 밝혀진 방송을 통해 엄마를 보게 된 것. 30년 만에 만난 모자는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또한 장상진 씨는 유환이는 들어온 지 3일 만에 욕조에서 죽었다고 했다. 운다는 이유로 장 씨가 아이를 폭행하고 바늘로 찌르고 물고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장 씨 집에서 죽어나간 것은 유환이를 포함해 총 6명. 상진 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들의 시신은 쓰레기봉투에 넣어 땅에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선 구역에 매장했던 것이 드러났고, 앞서 2004년 공사 중이던 인부들에 의해 유해 7점이 발굴되었지만 당시 무연고 시신에 대한 공고에 가족들의 연락이 없어 이미 화장을 해 시신은 재가 된 후였다.

경찰이 나서 사랑의 집을 조사하고 이에 계좌로 확인된 후원금만 5억 원, 현금으로 받은 것은 얼마일지 알 수 없고 지원금도 1억 원이 넘게 받은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악행을 증명할 증거가 턱없이 부족했다.

국민들은 장 씨의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를 했고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6개월 만에 장 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되었다.

난데없이 췌장암에 걸렸다며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장 씨. 그는 감금, 폭행, 횡령, 사체 유기,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형기는 고작 징역 3년 6개월. 터무니없는 형량이었다. 하지만 살인이나 유기 치사 등은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었던 것.

생존자들은 저마다 새롭게 살아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중 성별이 바뀌어 이름을 성아로 바꾸고 새 삶을 준비하던 이는 직장암으로 2013년 1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 씨는 분리 조치된 자녀들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단체들을 고소했다. 이에 사랑의 집을 나온 자녀들은 숨어 살아야 했다. 그리고 죽어서도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호적상 여전히 장 씨의 자녀이기 때문이었다.

장 씨 출소 후 유튜브 채널 운영하며 자신이 억울하다고 호소했고, 재심 청구 활동까지 했다. 그리고 올해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그가 사망하기 2주 전까지 자녀들을 찾아다녔다는 소식이 충격을 안겼다.

피해자들을 만난 제작진은 이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들을 보고 안심했다. 하지만 먼저 떠난 이들을 평생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권 밖에 있기에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감시받지도 않았던 사랑의 집. 하지만 현재에도 제2, 제3의 사랑의 집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는 얼마나 될지 파악도 할 수 없었다.

이에 방송은 이제라도 나라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조금 더 예쁜 세상을 만들어가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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